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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와다 하루끼 지음, 서동만.남기정 옮김 / 돌베개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라는 부제가 잘 보여주듯이 유격대국가라는 모델로 북한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만주에서 벌였던 항일무장투쟁을 원형으로 삼아 국가가 운영되고 재생산되었고 이것이 바로 유격대국가라고 명명된다. 북한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적, 인맥적 구성은 만주항일무장투쟁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김일성의 개인숭배체제를 이해하는 열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 김일성과 만주파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가는 정치사의 관점에서 쓰여지고 있다. 북한 사회의 정치적 전개과정이 통사적으로 설명되고 있으면서도, 이론모델과 개념들을 이용해 분석적으로도 쓰여져 역자들의 말대로 북한사회에 대한 통사이자 교과서의 역할을 한다.
하루키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이미지인 지상낙원과 지옥이라는 수수께끼를 벗기고자 한다. 여기서 쓰여지고 있는 김일성과 북한은 신화적 존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며, 식민지해방투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계와 작용들에 의해 형성된 역사적 존재이다.
먼저 김일성은 개명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흔치않은 중등교육을 받고, 민족해방에 눈을 뜬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신화적 존재는 아니었지만 유능한 무장투쟁지도자였고, 해방 후 토지개혁과 국유화 등의 개혁을 주도하고, 여타의 정치세력의 우위에 올라서는 과정은 그의 정치력이기도 했다.
유격대국가는 여러 민족해방투쟁 세력의 한 분파였던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만주파가 득세하는 과정에 기인한다. 하루키는 북한체제건설과정을 소련을 비롯한 일반적인 국가사회주의 체제위에 1967년부터 이차적으로 유일사상체계가 구성되면서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내부의 권력투쟁의 과정이기도 했고, 중소분쟁과 사회주의진영의 균열, 베트남전쟁과 경제발전의 저하 등의 복잡한 국내외의 사정들이 작용하면서 형성되었는데, 하루키는 만주파의 득세과정과 베트남전쟁의 영향에 중점을 둔다.
즉 정치•행정•경제 등의 실무능력이 부족한 군인집단 만주파의 득세는 당과 국가과 군대의 일원화를 가져왔고, 그것은 곧 만주파의 항일무장투쟁이 정통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이었고, 김일성의 만주항일무장투쟁은 유일한 혁명전통으로 부상한다. 또 베트남 전쟁에 고무된 김일성은 남조선 혁명을 위한 유격대를 전 국가로 확대하고, 김일성을 사령관으로 하고 전 인민이 유격대가 되는 특유의 국가체제가 만들어진다. 북한의 준전시 국가시스템은 단지 한국 전쟁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루키는 쟁점이 되는 한국전쟁과 북한사회의 성격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서술한다. 이 책에서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주도하고,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면서 시작했지만, 이미 남과 북은 모두 전쟁의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군사적 충돌은 만연해 있었다. 또 북한의 정치문화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문화와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문화, 기독교와 민족주의와 중국과 소련에서의 다양한 경험으로 형성된 김일성의 특유의 우리 문화, 유격대 구조, 개인숭배체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던 가족국가론, 사회정치적 생명론, 전통적 국가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졌다.
재밌는 것은 김일성 부자의 신화화, 거대 기념물의 건축과 의례 등을 지적하며 극장국가라는 특성을 부여한다. 북한 사회는 전쟁과 혁명을 준비하는 유격대국가이면서, 형식과 의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극장국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루키는 유격대 국가는 김일성 사후, 개혁의 대상임과 동시에 권력의 기반이라는 이중적 딜레마를 안고 있었고, 이후 만주파를 중심으로 한 정규군국가로 변모했다고 설명한다.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이러한 정규군국가로의 변모를 입증해주는 것이며, 김정일은 당과 국가조직이 약화되고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조직된 권력인 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김일성과 만주파, 김정일을 중심으로 전개된 북한의 정치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제 북한은 낙원도 지옥도 아닌, 특수한 전개과정을 거쳐 형성된 역사적 존재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한 사회에 대한 이해는 권력의 전개과정에서 설명되지 않는, 그것에 규정되고 제약받은 수많은 개인들의 생존양식과 생활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권력의 전개과정에 의해 쓰여진 역사는 그 권력에 순응하고 협조하고 저항하면서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생존을 구가한 사람들의 역사를 비가시화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북한은 절반의 북한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