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말테의 수기 - 인문학연구소고전총서서양문학 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웬지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한층 더 깊숙이 나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여느때 끝나곤 하던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내게 전에는 몰랐던 내면이 한 층 더 있다. 모든 것이 지금은 그 또 한층의 내면까지 간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편지를 한 장 썼는데, 쓰다 보니 내가 여기 온 지 3주일이 되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어딘가에서라면, 이를테면 시골에서라면 3주일이란 하루 같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3주일은 여러 해이다. 나는 짧은 편지도 쓰지 않는다. 내가 바뀌고 있다는 말을 뭣하러 누군가에게 한단 말인가? 내가 바뀌고 있으면 나는 전에 나였던 내가 아니잖은가.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면 이제 나는 아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분명하다. 낯선 사람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수야 없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세미나리움 총서 12
에릭 홉스봄 지음, 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뉴요커(New Yoker)지(誌)의 조지프 미첼은 아무리 호의적으로라도 '소시민Little People'이란 표현을 쓰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그들은 나나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큰' 사람들이다." 비록 아무도 이 익명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해도, 그들의 삶은 여러분이나 나의 삶 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남자든 여자든 그런 사람들이 개인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집단으로서는 역사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생각과 실천이 변화를 일궈낸다. 그것은 문화와 역사의 양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실제로 그래 왔으며, 특히 20세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전통적으로 '평범한 사람들Commom People'이라 불린 보통 사람들을 다룬 이 책에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Uncommon People'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이다.(....)

 에릭 홉스봄,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원제 : Uncommon People) 서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고의 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걷는다는 것도 어떤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욕구의 실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실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 그것이 목적에 맞추어 정확하게 이루어지든 아니면 마음내키는 대로 부정확하게 이루어져 소기의 목적에서 벗어나든 - 길을 가는 사람의 평소 훈련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그가 자제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또 불필요하게 샛길로 어슬렁거리는 움직임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충분히 제 구실을 하게 되고 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목적에 더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작가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는 이러한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마치 훈련을 받지 못한 조악한 주자가 스윙이 큰 암팡지지 않은 육신의 동작 속에서 허우적대듯 자기 자신의 정력을 탕진해 버린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그가 생각하는 바를 한번도 냉철하게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훌륭한 작가의 재능이란,  그의 사고에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훈련된 어떤 육체가 제공하는 연기와 그 연기의 스타일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글을 쓰는 행위는 그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만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글을 잘 쓴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 논픽션총서 1
안인희 지음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게르만 신화와 바그너, 그리고 히틀러라는 시대상으로는 동떨어진 세 주제가 연관된다는 사실은 이 세 주제에 대해서 한가지라도 어느정도 관심을 갖고 있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알지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세분야중 한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깊은 연관성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사실 각각의 세 분야 모두 난해한데, 그 세개의 연관성을 찾으라는건 한술 더 뜨는 것 아닌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이 세요소의 연관성을 당대의 역사, 사회적인 맥락속에서 쉽게 설명해나아가고 있다.

 사실 책을 처음 읽을때는 게르만신화에서 바그너로, 그리고 그 고리의 마지막인 히틀러에 대한 부분을 염두에 두었지만, 읽으면서 실제로 주목하게 된 부분은 게르만 신화와 히틀러를 연결시켜준 바그너였다. 벤야민의 말따라 '정치의 예술화'를 꾀한 히틀러가 수용한 게르만 신화는 신들조차 불안정하고 계약에 묶여버린 상황, 끝없는 투쟁과,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최후의 전쟁(라그나로크), 그리고 그 뒤의 화해의 신세계를 그리고 있는 순수한 그 게르만 신화가 아니라 바그너식(바그너가 수용하여 재창조된) '게르만 신화'가 있었던 것다.

 처음으로 단일국가로서의 '독일'의 정체성이 생겨나고 그에 따른 혼란이 만연했던 그 시절에, 바그너는 당대에 유행했던 모든 사상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지식인중 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그너의 오페라에는 낭만주의에서 보수주의, 인종주의까지 전혀 색이 다른 사상들이 그의 지적편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또 시선을 끈 것은 비록 이 책에선 곁다리로 다루어지긴 했지만 바그너와 절친했지만 결국엔 결별해야만 했던 니체에 대한 서술이다. 사실 니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그의 (당대의) 반기독교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사고는 전체주의의를 옹호하는 근거가 되는가 하면(르네 지라르의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을 봤다'참고) 또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처럼 바그너의 작품이 히틀러처럼 잘못 수용되어 악용될수 있는 요지가 있다는 것을 니체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은 독자로 하여금 바그너에서 니체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적호기심을 이끌기에 충분한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걸음으로 가다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0.구스틀로프호 사건 최악의 해양사고라 하면 타이타닉의 두동강난 모습이 떠오른다. 근데 더 끔찍한 참사가 - 그것도 천재가 아닌 인재로 인한 -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전시에 발생한 일일뿐더러 그 배가 나치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만들어진 배였기 때문에 피해자들조차 침묵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공론화 할 경우에는 극우파가 성장할 빌미를 줄까봐 당국에서조차 얘기를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1.일상으로(1)이 금기시된 이야기는 어느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열렬한 스탈린주의자이면서도 KDF라는 이름하에 구스틀로프호가 수행한 사업이 나치의 정치적 선전도구임을 알지 못하고 그 일에 대해서 열광하는 동독에 살았던 어머니, 한평생 어머니로부터 구스틀로프호에 대한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급기야 어머니로부터 감추어진 사실을 밝히라는 임무까지 받게된 아들과 그리고 좌익 성향의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온라인상에서 극우파로 활동하여 끝내는 살인을 저지른 손자로 구성된 3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것은 추상적으로 나타난 '나치즘의 잔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일상생활에서 갖고 있는 '잔재'를 끄집어내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2.일상으로(2) 이 이야기는 50년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하지만 다시 과거는 구스틀로프라는 나치당원과 그를 죽인 프랑크푸르터, 후에 구스틀로프호를 격침시킨 소련 장교 마리네스크,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 건조된 구스틀로프호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현재 역시 화자가 살고 있는 오프라인의 현재와 그가 어머니와 '그 남자' - 즉 귄터 그라스 자신 - 의 채근으로 하고 있는 조사를 통해 알게된 '구스틀로프 동지회'라는 온라인 극우단체로 나뉘어져서 '따로 또 같이' 서술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는 구스틀로프호의 건조와 격침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합쳐지고, 현재는 '구스틀로프 동지회'에서 활약하던 인물이 주인공의 아들임이 밝혀지면서 합쳐지게 된다. 즉 자기 자신이 침몰해가던 구스틀로프호에서 구출된 어미니가 옮겨진 잠수함 선내에서 자기를 낳았다는 점 외에는 구스틀로프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가 조사과정 중에서 아들이 극우파 활동 - 특히 구스틀로프호와 연관되어 -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그가 급기야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들은 빠르게 내면화되어간다. 나치즘이 일부만의, 또 '잘못된 것'이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라는 점이 다시한번 드러난다.

3.다시 일상으로, 하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야기는 그동안 소원하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부자관계가 회복되고, 소년원에서 복무중이던 아들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보관중이던 구스틀로프호 모형을 '부수는'것을 통해 그가 '과거'를 '청산'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일상'적인 것으로 돌아가게 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게걸음으로 앞으로 달려온' 그 남자 - 귄터 그라스 자신 -을 통해 그는 자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콘라트 포크리프케 동지회'라는 극우단체가 예전에 그의 아들이 활동했던 '구스틀로프 동지회' 못지않게 번창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아직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어쩌면 절대로 허용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중간중간에 그의 어머니 못지 않게 그를 채근했던 '그 남자'는 그를 재촉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재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