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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은지는 꽤 오래 되었다. 지금 고3인 막내동생이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서 내 아이디를 빌려 샀다고 했으니까 3, 4년은 족히 됐을 것이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항상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데다, 어린이 및 청소년 필독도서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오르는 책이라 동생이 사기 전부터도 제목은 잘 알고 있었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가끔 들춰보곤 했지만 왠지 내용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번번이 내려놓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빛이 바랜 채 기억상자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이 책을 꺼내든 계기는 다름아닌 '책'이었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에 <내 영혼이 따뜻한 날들>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이 강제로 이주당하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이 인용돼 있다. 이주 과정에서 체로키 인디언의 3분의 1이 죽어나간 탓에 '눈물의 여로'라고 불린 이 사건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은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나 죽은 가족을 껴안고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본 백인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원문을 일부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직 아기인 죽은 여동생을 안고 가던 조그만 남자아이는 밤이 되면 죽은 동생 옆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그 아이는 다시 여동생을 안고 걸었다.
남편은 죽은 아내를, 아들은 죽은 부모를, 어미는 죽은 자식을 안은 채 하염없이 걸었다. 병사들이나 행렬 양옆에 서서 자신들이 지나가는 걸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는 일도 없었다. 길가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 중 몇몇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체로키들은 울지 않았다. 어떤 표정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체로키들은 마차에 타지 않았던 것처럼 울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부른다. 체로키들이 울었기 때문이 아니다. 낭만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또 그 행렬을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슬픔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그들은 이 행렬을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죽음의 행진은 절대 낭만적일 수 없다.
- <과거를 알아두어라>, 75페이지 -
1838년에서 1839년에 걸쳐 1만 3천여 명의 체로키 인디언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체로키 인디언의 고향인 테네시 주에서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는 오클라호마 주까지는 1,300킬로미터. 어린이와 노인, 병자를 포함해 4천 명이 넘는 인디언이 행로 중에 죽어서 낯선 땅에 묻혔다. 그들을 고향에서 쫓아낸 것은 머나먼 영국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백인들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주인공 '작은 나무'의 조부모는 이주 당시 산 속으로 도망쳐 고향 땅에서 살아남은 체로키 인디언의 후손이다. 그들은 다섯 살 난 손자에게 체로키 인디언의 역사를 알려주면서 이렇게 가르쳤다.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다.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법."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족이라고 무시했지만, 인디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 책을 썼다면 포리스트 카터처럼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민족의 수난을 기술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모든 단어와 수식을 동원해 울분을 토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힘을 키워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제목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며 조부모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작은 나무'의 어린 시절이 읽는 이의 영혼까지 포근하게 감싸준다.
또한 책 곳곳에 어린아이의 맑고 순수한 영혼이 묻어 있는데, 그 중 내가 가장 깊이 공감하면서 동시에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던 이야기가 있다.
나만의 비밀 장소를 찾아낸 것도 개울을 따라 올라가던 중이었다. 그곳은 약간 산허리 쪽으로 올라선 곳에 있었다. 그곳은 월계수로 빙 둘러싸인 채 늙은 미국풍나무 한 그루가 굽어보고 있는, 그다지 넓지 않은 풀밭이었다. 그곳을 본 순간 나는 그곳을 나만의 비밀 장소로 삼기로 작정했다. 그 뒤로 나는 심심하면 그곳에 들르곤 했다. (중략) 하지만 비밀 장소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 우연이긴 하지만 나한테도 비밀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그럴 수 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 <나만의 비밀 장소>, 103~104페이지 -
사람들 대부분이 '작은 나무'와 같은 경험이 한두 번은 있지 않을까?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건물 틈의 어두컴컴한 구석을 발견하고는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해서 구슬이나 공깃돌, 만화카드 등을 감춰두었던 추억 말이다. 나는 이런 비밀 장소를 찾으면 주로 혼자 책을 읽거나 공상에 빠지곤 했다. 지금은 공상을 해도 조용히 머리로만 하지만 어릴 땐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만 아는 비밀 장소니까 누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집이나 학교에서 비밀 장소와 그곳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리곤 했다.
그 때는 왜 그런 일들이 그렇게도 즐거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것 아닌 일로 행복을 느꼈던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그 추억의 한 조각을 이 책을 읽다가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메말라가는 영혼에 한 모금 샘물을 떠 넣어주었다고 할까? 스스로 비밀 장소라 해놓고 결국 비밀을 지키지 못해서 할머니에게 고백해 버린 '작은 나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많이 웃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말미에는 꼭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의 지혜가 전해진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 <죽음의 노래>, 338페이지 -
체로키 인디언들이 다음 생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안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이유는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답게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 가족의 친구인 윌로 존은 숨을 거두기 전, 자신이 죽으면 소나무 옆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몸이 2년치 거름은 될 거라면서.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은 죽음까지도 자연 친화적이었다. 오랜 세월에서 우러난 지혜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이 자연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섯 살에 고아가 되어 조부모에게 맡겨진 '작은 나무'는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조부모마저 잃고 서쪽의 인디언 연방으로 떠났다. 집에서 기르던 리틀레드와 블루보이라는 이름의 개 두 마리와 함께하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리틀레드는 빙판을 잘못 밟는 바람에 시냇물에 빠져 죽었고, 블루보이는 늙고 병들어 '작은 나무'가 만들어준 자기 무덤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 혼자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인간이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이다. '작은 나무'는 결국 인디언 연방에 도착했을까? 그곳에는 인디언 연방이 없는데...... 담요처럼 포근했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마지막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블루보이는 코가 발달되어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 벌써 고향산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블루보이라면 문제없이 할아버지 뒤를 따라잡을 것이다.
- <죽음의 노래>, 341페이지-
'작은 나무'는 항상 키가 큰 할아버지의 걸음을 따라 잡으려고 애썼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자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던 할아버지처럼 '작은 나무'도 어린 생명을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훌륭한 체로키 인디언으로 성장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