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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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강남의 한 대형서점에서 유명 작가의 사인회가 있었다. 그 사인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람의 딸' 한비야. 작년 여름 구호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던 그가 어느 새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간 참 빠르다. MBC <무르팍도사>에 나와 그가 들려주는 얘기에 치를 떨고 분노하고 함께 눈물 흘렸던 것이 벌써 1년 전이라니.

 지금이 아니면 살아 있는 동안 언제 또 한비야의 실물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여동생과 함께 강남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없어서 기존 책을 가져가면 사인해주는가보다 생각하고 <그건, 사랑이었네>는 물론 하도 읽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까지 가방에 넣어서 가져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사인회장에 <그건, 사랑이었네> 개정판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장에서 책을 사야 사인을 해준다는 사실은 그 날 처음 알았다. 하긴 작가 사인회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으니 몰랐던 게 당연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행사가 아닌 책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한 출판사의 상술이라는 사실에 실망해서 한비야의 얼굴만 보고 발걸음을 돌리려 했으나 사인을 받고 대화를 하고 악수까지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온몸이 배배 꼬이는 거다. 결국 거금(?)을 들여 책을 사서 사인을 받고야 말았다. 그렇다, 팬이란 이런 것이다. 상술인 줄 알면서도 넘어가는. 그나마 수익금으로 기부를 한다는 출판사 직원의 말이 내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져간 책에 동생의 이름을 넣어서 사인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준 비야 여신님,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은 진정 천사이십니다. ㅠㅠ♡

 하여간 사인회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그건, 사랑이었네>를 다시 한 번 읽었다. 몇 번을 읽어도 가슴이 한겨울의 군밤처럼 따스해지는 글 스물아홉 편으로 구성된 이 에세이집에는 설마 이런 이야기까지 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그의 깊은 마음속이 드러나 있다. '들어가는 글'에도 나와 있듯이 '여태껏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과 소소한 속사정과 내밀한 신앙 이야기 등 정말 이런 것까지 말해도 되나 할 정도로' 편안한 이야기들이다. 편안하지만 결코 얕지 않다. 가볍지도 않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구호, 종교, 전쟁, 전 인류에 대한 사랑 같은 주제는 매우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 어려운 이야기를 이처럼 쉽고 맛깔스러운 문체로 풀어내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가슴을 쥐어뜯고 머리를 벽에 짓찧으며 죽어야 한다고 자학한 만큼 아름다운 글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글을 쓴 한비야는 글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인생은 상대평가에 의한 선발고사가 아니라 절대평가에 따른 자격고사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선발고사란 무엇인가. 아무리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으며 노력해도 한 사람만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떨어지고 마는 경쟁 구조의 시험이다. 인생에서의 성공이 이런 거라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몇몇 뛰어난 사람들에게 늘 패배할 수밖에 없다.

 반면 절대평가에 따른 자격고사는 어느 수준만 해내면 누구든 통과다. 이 자격고사는 인생을 진지하게 살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누구나 합격이고 그러므로 성공이다. 세상의 성공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세상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들러리가 되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밖에 없는 귀한 인생인데 그럴 리가 있겠는가.

- <그건, 사랑이었네> 中 '이런 성공이라면 꼭 하고 싶다', 208p

 

 아름답지 않은가? 재산이나 학력,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하나의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는 그의 가치관이 말이다. 굳이 어려워보이는 말을 쓰자면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세상에는 한비야보다 훨씬 눈부신 업적을 쌓아 올린 유명한 휴머니스트가 많지만 나는 한비야가 결코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는 언행일치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말로만 세계 평화와 인류 사랑을 외치는 공론가가 아니라서 좋다. 남을 돕기 위해 동전 한 푼 저축해본 적 없으면서 구호 활동을 비관적인 시각으로 보는 염세주의자보다 백 배 천 배 낫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랬더라?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한비야가 바로 세상에 몇 안 되는 행동하는 양심가다.

 '말로만 떠드는 공론가'에 속하는 나의 팬심은 어쩌면 애정보다 존경심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갖지 못한 면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워 한비야처럼 세계의 구호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지는 못해도 적은 액수나마 어려운 이웃을 후원할 수는 있다. 지금은 사정이 사정인지라 정기후원은 못하고 여럿이서 힘을 모으는 곳에 십시일반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꾸준히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 그래서 한비야 같은 행동하는 양심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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