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과학 - 뇌는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만드는가 프린키피아 7
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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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월에 구판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자유의지냐 운명이냐’는 어느 시점에 마무리되는 것 같다가도, 어디선가 땔감이 나타나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논쟁 주제인 것 같아요. 한쪽에선 ‘내 성공은 내가 다 했지 말 보태지 마라’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야, 넌 3루에서 태어났잖아’라고 비판하고 있어요. 이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건 아마 우리 삶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운’을 수치화하기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책판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관련해서 책판다는 얼마 전 읽었던 ‘돈의 심리학’에서 운에 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었는데요. ‘우리가 얻은 수익은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운(=리스크)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는 게 교훈의 핵심이었어요.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지 말라, 겸손하게 할 수 있는 걸 하자, 이런 뜻으로 받아들였네요.


최근 타고난 집중력, 지능이 다른 상황에서 개인의 성취만 부각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잖아요? 이에 대해 마이클 샌델 교수 선생님은 인문학적 기반에서 논의를 풀어주셨었죠?


이 와중에 책판다는 ‘운’과 관련된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책을 하나 발견한 거예요! 바로 ‘운명의 과학’이란 책이었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운에 관한 책은 아니었고, 주로 우리가 부모님 또는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는 생물학적 특성(특히 두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공정하다는 착각’이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를 풀었다면, 이 책은 ‘타고난 신체적 재능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있어요. 생물학적 특성에 대항해 우리는 얼마나 자유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냐라는 거죠! 


책판다는 책을 읽기 전, ‘자유의지 그거 이제는 환상 아니냐?’라는 시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더라구요. 관련해서 책판다는 왜 때문에 생각을 다시 하게 됐는지, 포스팅 두 개에 걸쳐서 책의 알맹이들과 함께 곱씹어보려구 해요.  



📚 날 때부터 모든 게 정해져 있다? 발달 중인 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들 많이 하시죠. 책판다도 아이를 키우는 주변 지인들이 좀 있어서 요리조리 관찰을 해보곤 하는데요. 아, 이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크겠다, 저 친구는 저렇게 크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타고난 성격이 보인다는 이야기죠. 


요 ‘타고난 성격’은 웬만한 교육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타고난 성격은 부모님도 고칠 수 없으니, 아이가 있는 그대로 자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저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변하세요. 사람의 뇌는 어쨌든 변한다는 거예요. 요즘 자기계발서에서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뇌의 가소성’, 즉 뇌의 변하는 성질이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성격(두뇌)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가령 아이들의 뇌 구조물은 아직 완전한 ‘배선’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감정 조절 등이 쉽지 않은데, 어린 시기에 부모님 또는 다른 성인과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에 따라 배선이 연결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대요.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뇌가 자라는 만 세살 즈음 성인으로부터 다정한 말투(예를 들면 엄마 말투)로 언어에 자주 노출시킬 경우, 뇌의 배선이 최선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죠.


퇴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래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같은 특정 뇌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 인자가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그 메커니즘이 하도 복잡해서 특정 유전자를 콕 찝어내기가 어렵다고는 합니다만..) 하지만 치매를 유발하는 결정적인 유전자를, 결정적으로 무력화하는 행동들이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활발한 신체 및 사회 활동, 좋은 수면, 공부, 긍정적인 마음 등을 계속 이어간다면 발병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 살찌는 건 자기 관리 실패? - 배고픈 뇌


한편 ‘비만’은 대표적인 자기 관리 실패의 사례로 손꼽히잖아요. 책판다도 먹는 걸 참 좋아해서, 웬만큼 배가 부르지 않고서는 중간에 먹는 걸 참아내는 게 쉽지 않은 편인데요. (뱃살을 보며 울고 있는 책판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FTO(Fat Mass and Obesity-associated protein)라는 유전자가 있고, 세계 인구 중 절반이 비만의 확률을 25% 높이는 버전으로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만약 책판다가 이 유전자 변이 2개를 가지고 있다면 원래 체중보다 3킬로그램 더 무거울 가능성이 높고, 비만이 될 위험은 50퍼센트 더 높다고... (Hoxy 책판다도..? 🙄)


특히 좌절스러운 부분은 이 유전자의 힘을 개인의 인내심만으로 극복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씀하신 대목이에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유전자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해도, 장기적으로 다이어트를 이어가기란 대단히 어렵다고 하네요.. 아.. 우리에게는 정녕 방법이 없는 걸까요?


다행히 해답이 없지는 않았어요. 관련해서 책판다가 예전에 읽은 ‘넛지’에서도 답이 될 만한 사례를 다룬 적이 있는데요. 학교의 교내 급식 책임자가 구내식당의 음식을 재배열했더니 특정 음식의 소비량을 25%가량 줄일 수 있었다고 해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환경만 바꾸더라도 비만을 줄일 수 있다면, 우리 가뜩이나 선거도 가까워졌는데 관련 논의를 충분히 제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아름다운 신념과 고집불통 사이에서, 믿는 뇌


사람은 누구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응? 내가 무슨 신념을?’ 하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아마 반문하신 분들도 다 가지고 계실 거예요. 굳이 ‘민주주의’ 같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더라도, 가령 ‘상스러운 욕을 배설하는 사람과는 절대 상종도 안 하겠다’는 일상적인 생각도 신념의 하나니까요.


그럼 신념은 대체 무엇이고, 왜 때문에 생겨난 걸까요? 책을 보면 심리학 교수이자 과학잡지 ‘스켑틱’의 창립자인 ‘마이클 셔머’라는 분께서 “신념을 형성하는 능력은 인간의 진화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고 주장”(200)하셨대요. “뇌는 자기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 입력을 분류하고 상호참조해서 패턴을 생성함으로써”(201)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포식자의 얼굴 패턴을 알아보고 그 포식자의 점심거리가 될 수 있으니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것이 좋을 거라 예측하는 능력은, 해당 개체로 하여금 하루라도 더 살아남아 이 기술을 자손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게 해주었다”라고 해요. 특정한 사실(포식자의 얼굴)로부터 패턴(나는 점심거리가 된다)을 추출해, 생존에 써먹었다는 이야기죠!


이런 신념은 때때로 우리에게 생존과 자부심을 선물해 주었지만, 책판다도 여러분도 넘모나 잘 알고 있듯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아요. 가령 신념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는 종교 때문에 목숨을 빼앗긴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어요. 정치 갈등 때문에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또 어떻구요. 인간의 타고난 신념 형성 능력은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것 같아요.


신념을 가지는 거 좋아요 좋은데, 신념 때문에 사람이 죽고 갈등이 폭발하면 그 신념은 대체 무슨 소용이겠냐 싶어지네요. 저자 선생님은 똥고집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운동과 휴식, 성찰 등을 추천해 주셨어요. 조금 빤하고 김이 빠지는 방법이지만, 뭐 정석이란 대부분 재미없고 김빠지는 이야기들이니까.. ​



📚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 협동하는 뇌


자, 책판다는 포스팅 두 개에 걸쳐 우리의 뇌(신체)가 무엇을 어떻게 타고나는지 몇 가지 내용을 살펴봤는데요(책에는 일곱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세 가지만 소개해드렸어요. 궁금하신 분은 책 구매 고고!). 저자 선생님은 이 모든 특성을 살펴본 결론을 이렇게 내리셨어요.


이 책을 쓰고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결국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확신하게 됐다. 바로 인간의 본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 우리가 종의 전체적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수준에서는 생물학이 상당히 결정론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집단이 전체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지나친 단순화 모형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수십 개의 고유한 현실 모형인 뇌가 서로와 마주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장엄한 복잡성과 유연성, 수십억 명이 제각기 갖고 있는 고유한 현실 모형들이 부정되어 버린다. 

p.286(구판)


여기 저 책판다는 사람으로서(곰 아님)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 특성에 사람을 억지로 끼워 맞춰 설명할 경우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이해했어요. 나아가 자유의지를 부정한 채 자신을 자기 인식 속에 스스로를 가둘 경우, 도리어 충동적인 행동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대요. 저자 선생님의 결론이었구, 책판다도 여기에 200% 동의했어요.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모든 걸 바꿀 수 있어’도 좀 아닌 것 같지만, 물려받은 타고난 특성에 안주하고 살아가기에는 우리 선배들이 너무 많은 걸 해내왔잖아요? 책판다라고 못할 건 또 뭔가 싶은 거죠.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의 일독을 권해드리면서, ‘운명의 과학’ 리뷰는 여기에서 마무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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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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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에세이즘』이란 책을 사들이면서 말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에세이는 내 촉수에 걸리지 않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경험에서 의미를 길어올리는 게 중요한 장르인데, 요즘 들어 개인적인 경험에서 사소한 의미를 애써 부풀리는 에세이들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내 시야가 좁은 걸 괜히 남탓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읽어야 할 책도 많은 마당에 굳이 찾아 읽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서 에세이는 점점 멀어지나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이 거대한 세상의 조각 하나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편견은 반드시(!) 깨지게 마련이다. 이번에 읽은 『그저 하루치의 낙담』은 내 편견을 (꼴 좋다는 듯) 비웃는 책이었는데, 이런 에세이를 얼마만에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에 대략 백번쯤 나올 법한엉엉 울었다, 그 단순한 문장에 눈이 덩달아 시큰해진 적이 있었나? 한참 기억을 뒤져봤지만 딱히 건져내진 못했다.

 

이 에세이에서 느낀 그토록 커다란 매력은, 나와 같은 고민을, 현장에서 치열하게 이어가며, 나름의 해답까지 명쾌하게 내렸다는 점이었다.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가 이곳에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떠드는 주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공존이다. 익명성 덕분에 좀 뻔뻔하게 떠들고는 있지만, 온라인 바깥 세상에선 그런 이야기를 떠들어도 괜찮은 사람인지 자꾸만 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공존을 위해 딱히 한 일도 없고, 자칫 적자생존의 대한민국에서 그저 생존이 목표인 이들에게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혹은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수밖에 없는 결점 하나를 발견할 때마다역시 세상은 어쩔 수 없다는 냉소를 더하거나.

 

이 책을 통해 저자와 나는 이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된 것이다. 공존, 윤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가슴 위에 올려둔 벽돌 같은 고민을. 게다가 저자는기자였고, 그 직업에 대한 이미지는 누구나 다 안다(굳이 그 별명을 여기에서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입만 열지 않으면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었던 나와 달리, 그는 일선에서 화살 십 만 발을 받아가는 중에도 치열하게 윤리를 고민했으니, 나 같은 소시민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이건 선택이 아닌 의무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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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게 그렇다. 아무리 읽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마음가짐이나 태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과 결론을 다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하겠지. 열에 하나라도 건지면 다행이 아닐까? 나름의 방식으로 딱 하나만 건져보겠다는 결심과 함께 책을 덮었다. 이 정도 결기를 안겨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적어도 내게는) 할 일을 다 해냈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에세이의 모범사례로 남길 수밖에 없다.

내가 써온 아름다운 문장들이 언젠가부터 견딜 수 없이 싫어졌다. 나는 나의 미문을 자랑하기 위해 사안에 대해, 사물에 대해, 사람에 대해 필요 이상 격찬했다는 혐의를 스스로 벗기 어려웠다. 대상이 사람으로 오면 특히 심각했다. (… …) 세상을 향해 나팔을 부는 일, 나 가진 가장 좋은 것들만 전시해야 하는 공연장.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결국은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그 본질적인 속성은 생각하면 할수록 무서운 것이었다. 가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헛되도다, 헛되고, 또 헛되도다. - P58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든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 …)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진짜 삶을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 P106

한 예술가가 모든 장르에서 최고인 경우는 없는 것처럼, 인간도 모든 장르의 용기를 다 갖추고 있는 경우는 없다. 그저 나의 장르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면 된다. 나는 인생을 똑바로 살아보려고 한다. 뭐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도덕과 지성의 영역에서만큼은 쫄보가 되지 않겠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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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EBS 자본주의 제작팀 지음 / 가나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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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3일 작성)


어떤 책으로 자본주의를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싶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던 중 EBS에서 출간한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책이 눈에 띄었어요. 이 책은 EBS 다큐 ‘자본주의’를 책으로 만든 건데, ‘책판다’ 답게 책을 먼저 읽기로 하고 얼마 전에 다 읽고 왔어요. 지금부터 책판다와 함께 자본주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해요.


📚 ‘빚’, 자본주의의 문지기


자, 이렇게 책판다는 ‘자본주의’를 향한 첫 발을 내디뎠어요. 그런 책판다를 현관문에서 반갑게 맞아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빚’이 그 주인공이었요! ‘빛’ 아니고 ‘빚’ 맞아요. 김빠지게 시작부터 빚이라니, 사회초년생이 학자금 대출 갚기 시작하는 그런 기분이 드네요. 김은 빠졌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한 걸음 더 들어가볼게요.

최근 경제 뉴스를 보면 “경기 부양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정부가 돈을 푼다”는 말이 정말 많이 등장하잖아요? 아, 그럼 돈은 어떤 방법으로 풀게 될까요?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처럼 헬리콥터를 띄워 돈을 투하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책에 따르면 돈을 푸는 방식 중 하나가 “이자율(기준금리)을 통제하는 것”(p.47)이라고 해요. 요즘 가계대출이 늘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잖아요. 주변에 보면 대출 받아 부동산 또는 주식에 투자하는 분들 많으시죠? 이게 다 금리가 낮아진 덕분인데요. 중앙은행에서 금리를 낮추면, 이자 부담이 낮아지니 돈을 쉽게 빌려 쓰게 되겠죠?

그럼 대체 왜 때문에 ‘빚’은 ‘자본주의의 현관문’ 앞을 지키고 서서 우리를 반기는 걸까요? 책의 설명을 요리조리 살펴보면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본주의는 “‘돈의 양’이 끊임없이 많아져야”(p.23) 하는 경제 체제래요. 그럼 왜 돈의 양이 끊임없이 많아져야 하나요? 바로 ‘이자’ 때문인데요. 책 속 예시를 짧게 소개해 드릴게요. 한 고립된 섬의 중앙은행이 1만원을 발행해 시민 A한테 빌려줬다고 가정해 볼게요. 시민 A는 1년 동안 5%의 이자를 쳐서 갚기로 했어요.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바다에 나가 열심히 고기를 잡았어요. 그럼 시민 A는 1년 후에 중앙은행에 원금 1만원에 이자 500원을 갚을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다’예요. 발행된 통화가 1만원밖에 없으니 500원은 아무리 땅을 파도 구할 수가 없는 거죠. 고로 중앙은행은 500원을 더 찍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빌려가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돈이 끊임없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그리고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돈을 더 찍어낸다고 했어요. 이자를 갚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또 이자를 갚아야 하고, 또 돈을 찍고…. 결국 돈이 늘어난다는 건 ‘빚’이 늘어난다는 말의 다른 버전인 셈이겠죠! 이제 조금 감이 잡히네요! 결국 통화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빚’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인 셈이죠!


📚 은행을 거치면 돈이 몇 곱배기!


그리고 자본주의를 떠받드는 또 하나의 시스템이 있으니, 바로 ‘은행’이 그 주인공이에요. 만약 1만원을 풀었는데 10명이 빌려버린다면?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은 1만원이 되겠죠? 그런데 ‘은행’을 거치면서 조금 요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은행은 고객이 저축한 돈을 ‘(부분)지급준비율’만 남겨준 채 빌려준다고 해요. 만약 10만원을 저축으로 받았다면, 1만원만 남겨둔 채 9만원을 대출해주는 식이죠.

만약 A은행이 10만원 중 9만원을 B은행에 대출하고, B은행이 C은행에 90%인 8만 1천원을 대출하고. 이런 방법으로 대출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시중 유동성은 무려 100만원까지 늘어난다고 해요! 😱(이 과정을 전문 용어로 ‘신용창조’, ‘신용팽창’ 이라고 한다네요)



📚 너는 내 운명, 빚♥인플레이션♥자본주의


지난 1년 간 세계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때문에 얼어붙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영혼을 끌어 모아 돈을 풀었어요.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돈 빌리는 비용을 낮췄고, 정부는 정부대로 돈을 풀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어요. 나라든 가계든 주체를 가리지 않고 빚이 늘어났겠죠. 조금 전에 ‘빚’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끊임없이 많아질 수밖에 말씀드렸죠?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현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다른 한편에서는 자산 가격이 우주까지 뛰쳐 올라갈 기세로 뛰어올랐어요. 이 시기에 아마 책판다 빼고 전부다 돈 버셨을 것 같을 정도로 엄청나게 뛰어올랐죠? 그런데 최근 이러한 자산 가격 상승을 두고 논란이 있는 것 같아요. 버블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죠. 아는 게 없는 책판다는 그 논란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다만 이런 의문은 들어요. 진짜로 버블이 되어서 세계 각국 정부가 돈줄을 조인다면 물가 상승이 과연 멈출까요? 우리의 자본주의가 과연 그걸 해낼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답은 ‘그럴 수 없다’라고 해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가 맛있게 먹는 짜장면 있잖아요! 그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려면 요즘은 대략 6천원을 내야만 해요. 그런데 50년 전에는 얼마였을까요? 무려..! 15원이었다고 하네요! 50년 동안 400배가 오른 거예요! 50년 동안 400배가 올랐는데 짜장면 가격이 내린 시절이 있었을까요? 내렸더라도 아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까요?


이렇듯 우리 사회로 흘러든 돈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구요. 고로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일 수밖에 없어요. 사실 ‘인플레이션’의 본질은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거든요. 우리 사회에 돈이 끊임없이 늘어났으니, 돈의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해온 거죠!



📚 그래서 자산, 지금이 제일 쌀 때일까요?


여기까지 읽고 나니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정부들이 하나 같이 돈을 풀어대는 이유, 자산 가격이 뛰어오르는 이유, 투자 열풍이 부는 이유. 이게 다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는! 물론 지금 흘러넘쳐나는 돈의 정체가 ‘빚’이었다니 많이 놀랍긴 하지만요(어디까지나 부정적으로).


사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로보기 때문에, 투자의 관점에서 어떤 단서를 주는 책은 아니에요. 사실 투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어도 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열어보자는 내용의 책이거든요. 


다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공부할 수 있었어요. 투자를 시작하는 분이든 경제 전반을 알고 싶은 분이든, 경제 공부를 시작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을 책이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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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참고로 이 리뷰는 ‘자본주의’ 중 “PART 1. 빚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 자본주의의 비밀”만을 읽고 정리한 내용이에요. 나머지 파트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도록 할게요)


p.s2. 다음 책은 ‘부의 대이동’을 다음에 다뤄볼까 해요. 사실 ‘부의 대이동’을 먼저 읽긴 했는데… ‘자본주의’를 먼저 읽으면 좋을 뻔했네요. 첫 책 리뷰 길이가 요즘 자산만큼 인플레가 심했는데, 여하튼 다음 책도 열심히 읽고 써볼게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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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
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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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뇌과학에 흥미가 생겼던 건, 이 과학이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몇 권을 읽었을 땐 이제 곧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결국 뇌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자신감. 그 후에도 몇 권을 더 읽었다. 그리고 나는 꼭대기에 다다랐다. 그게 더닝 크루거 곡선 속우매함의 꼭대기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우매함의 골짜기 정도인 것 같은데, 이번에 읽은 『뇌 과학의 모든 역사』를 보니 사실 내가 아니라 이 학문 자체가 그 골짜기에 서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저자 스스로여러 세부 분과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수면 연구, 비시지각, 호르몬, 정서, 뇌 발달 및 유전자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등에 대한 내용을 깊게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는데(p.284), 다른 과학에서는 드문 광경이었으리라(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미래 파트에선 에누리 없이 뇌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이제 교착 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는데(p.499), 이 말이 꼭우리는 골짜기에 빠졌다는 선언으로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뇌를 알면 인간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했으니,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딱히 보기 좋았다곤 못하겠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이기도 했다. 일단 겸손해질 수 있었고, 뇌과학의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수확이 여기에 그쳤다면 『뇌 과학의 모든 역사』는 그저 그런 책으로 남았겠지만, 이 책은 그 수준을 가뿐히 넘어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오늘 서평에선 그걸 정리해보려고 한다.

 

 

 

인공지능과 가소성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

 

그 다음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단 점이다. 인공지능이 여러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지능(인간 지능)을 이렇게나 많이 모르는 와중에 인공지능이 인간을지배할 만큼발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인간의 뇌는 단순 연산 기계를 넘어 감각과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인공지능에겐 아직 어려운 일이고, 기술 발전을 감안하더라도 그 감각을 완벽하게 이식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신경가소성이 있다. 나는 자연지능의 신경가소성이 인공지능 개발자와 신경과학 연구자들에게 사차원의 벽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뇌를 미궁으로 끌고 가는 견인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개발자의 입장에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해가는 뇌를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까? 최근 인공신경망으로 어느 정도 구현해냈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 또한 동물과 다른 종류의 인지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동물 뇌의 메커니즘과 다르다고 말한다.

 

미스터리를 더하는 트릭처럼 가소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연구자들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저자는 우리 뇌가 유전의 유산을 물려받았더라도, 그로 인한 기능적 제약은 대단히 미미하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든 최근의 사회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것이 바로 가소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책의 비유를 빌려 말하자면, 가소성은높은 고도로 날면서 동시에 기존에 제작된 모든 부품들을 기내에서 새로 생산한 성분들로 교체하는 비행기와 같다고 한다(p.344). 이런 뇌에서 법칙을 찾는 일이, 나에게는 마치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만물 이론처럼 느껴진다. 스티븐 호킹이 찾다가 끝내 포기했던 그 이론 말이다.

 

자연지능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까지 부족한 마당에일반지능’(AGI)의 탄생을 장담한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물론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점 때문에 일자리 위협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넘어 일반지능의 탄생과 인간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게 뭐랄까, 저 허풍쟁이들에게 잡히지 않아도 될 멱살을 내어주는 모습 같다.

 

 

 

마지막으로, 인간 본성에 관하여

 

인간 본성 같은 건 없다는 게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어떤 본성도 (앞서 인용한 것처럼) 환경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신경가소성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뉴런 사이에 연결이 뛰어나서 빠른 학습이 가능할 테고, 누군가는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서 누가 봐도상남자같을 수 있겠지. 하지만 예전에 읽은 『나의 뇌를 찾아서』에서 말하길상호의존성이야말로 두뇌가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의 핵심이라고 한다. 기질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뜻이다.

 

굳이 본성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여기저기에서 넘쳐나는 본성 타령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특히 『이기적 유전자』를 잘못 읽은 이들이인간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각자 도생은 자연 법칙이라 여기며 지금의 아수라장을 정당화하는 꼴이 몹시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제는 내 인생책이 되어버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셀 수 없이 강조한다. “다양성이 표준이다.” 배럿 또한 뇌의 신경망 배선이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배럿의 책은 감정의 형성을 따져보는 책이지만, 우리 생각에서 감정이 차지하는 무게를 따져보면, 나는 배럿의 저 선언이 우리 본성에 대한 설명으로 읽힌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다른 본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과학의 방식으로는 우리 뇌, 나아가 인간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만약 환경에 따라 신경망의 배선이 변한다면, 환경에 대한 공부 없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식에 관한 연구를 이끌었던 프랜시스 크릭은그들(철학자들)의 물음에는 귀를 기울이되, 그 답에는 귀 기울일 것 없다”(p.482)고 말했지만, 글쎄, 환경이 본성을 좌우할 정도로 큰 압력을 발생시킨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두 학자 집단이 함께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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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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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박완서 작가를 잘 몰랐고,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트위터(지금은 X라고 불리는)에서 어떤 기자의 추천사를 보고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겠더라. “저는 박완서 작가를 도스토옙스키보다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요.”라는 내용이었다. 도스토옙스키도 그닥 관심은 없었지만, 책장에 꽂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위대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한국 작가라고 하니 읽지 않으면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고, 내 감상은 ‘기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마음속 거품을 그대로 두고 말하자면, 이보다 잘 쓴 (한국어) 이야기를 읽어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아니, 한국어뿐 아니라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봐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대체 이런 글은 뭘 먹으면 쓸 수 있는 걸까?

각설하고, 아주 개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그 어떤 역사책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중반 즈음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절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개성에서의 (나에게는) 꿈 같았던 작가의 어린 시절, 서울로의 이주와 함께 마주한 여러 고민들, 해방 이후 시대상, 그리고 전쟁의 비인간성을 묘사한 대목까지. 마치 그 시대를 살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역사책으로는 얻기 어려운 감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꼈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이었구나!

이런 대문호를 몰라뵈었다니 빚 보증 잘못 선 수준의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고, 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최대한 빠르게 읽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혹시 나처럼 이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으신 책스타그래머가 계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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