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리뷰를 안 올렸다. 무언가를 읽는 것까지는 마냥 즐거운데 읽은 것과 관련해 글을 쓰고 그 글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는 공개된 영역에 올리는 일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출판 관련한 책을 몇 권 읽고, 요네하라 마리 책을 몇 권 읽었다. 또 재미 위주의 책들을 몇 권 읽었다.

 

 

 

 

 

 

 

 

 <현대문자생활 백서 우리말 맞춤법 띄어쓰기>는 간편하고 쉽게 우리말 맞춤법 원리를 설명해 놓은 얇은 책이다. 출판학교 시험 보기 전날 급하게 빌려와서 읽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역시 하루 아침에 뚝딱 한국어 맞춤법, 띄어쓰기를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_-;;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와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는 편집자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다양한 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판사도 가지각색인만큼, 출판사 안에도 여러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할까. 예전에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편집자란 무엇인가> 속에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보면서 '편집자는 만능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뽑다 보니 그런 만능인이 탄생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이건 내가 보고 싶은대로 생각하는 것인지도..) 

 어쨌든 책을 만드는 과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폭넓은 시선, 여러 사람과의 조율, 세심함과 꼼꼼함, 인내심, 등등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찬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물론 그 책을 찾아주는 독자들이 많을 때 더욱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인지도..모르겠다..)  

 

 다음으로 요네하라 마리 책을 읽었다.  

 

 

 

 

 

 

 

 

 두 책 모두 <러시아 통신>처럼 짤막한 글들이 묶여 있다. 요네하라 마리가 신문에서 연재한 칼럼을 엮은 글이라고 한다. 역시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책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올라갈 즈음까지 프라하에 있는 러시아 학교에 다닌 요네하라 마리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렇게 몸소 체득한 경험이 쌓여서인지, 그녀만의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글 속에 묻어난다. 이는 대체적으로 따뜻한 시선이지만, 때로는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비판하는 예리한 시선이기도 하다. 그녀의 다른 글들도 조만간 읽을 계획이다.   

 

   

 

 

 

 

 

 

  

 

 그리고 오빠가 권해주는 판타지 책을 3권 읽고 말았다. 판타지를 좀 읽은 오빠는 자신이 좋아하는 판타지 작가 중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작가가 이수영이라고 하며 이 책을 권했다. (나머지 두 분은 이영도, 윤현승이라고 한다.) 역시나 무척 재미있었다. 문장이 어찌나 빨리 읽히는지, 원래 느리게 읽는 편인데도 무서운 속도로 모두 읽고 말았다. 잔인한 황제인 주인공이 반역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과거로 돌아간다는 내용인데, 재미도 있고 나름대로 교훈도 있었지만, 읽고 난 후에 현실도피한 느낌이 들어 조금 서글퍼졌다. 내가 사는 현실과의 간극과 그러면서도 리얼한 묘사가 판타지의 즐거움이라고 하지만, 뛰어난 지혜도, 미모도, 무력도 없는 현실의 나는 왠지 모를 서러움을 삼키고 있었다.-_-;; (그래도 재미있고 판타지 중에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반납하러 간 책방에서 눈에 띈 책을 또 빌리고 말았다. 그 책은,  

 

 

 

 

 

 

 

 

<문재인의 운명>이었다. 시사IN을 구독하면서 예전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최근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와서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재인을 이야기하면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 역시 이 책의 절반 이상이 노무현과 참여 정부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에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방법이 거칠고 갑작스러웠지만 끝까지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자 노력한 모습.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 중 그런 사람이 또 있었던가..(물론 모든 일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이라크 파병이라든가, 한-미 FTA라든가 연정 등..) 

 책을 읽으며 문재인의 지나온 삶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되짚어보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유신 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 시절, 5공화국 때 공수부대에서 활동한 군대 시절, 이후 사시합격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시절, 또 앞서 말한 참여 정부 노 대통령을 보좌하던 민정수석 시절..  

 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했다. 아직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에 묻혀 뚜렷한 문재인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서다.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보좌하며 일한 경력이 있고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는 점은 높게 사지만, 지도자로서 이끌고 나가기에는 아직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있다. 참여정부 때도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두 번 사퇴하지 않았던가..그래도 이런 사람이 흔치 않고 또 그가 아직 확실히 대선 출마를 결정한 것도 아니니 좀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내가 무어라고 이렇게 지껄이고 있는지..-_-;;) 

 오늘 막 읽은 책은 따로 리뷰를 써야겠다. 쓰다 보니 벌써 1시 반이 다 되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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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 천만 비정규직 시대의 희망선언
홍명교 지음 / 아고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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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온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슬프고 화가 났다. 언제나 나 하나만 생각했지 다른 이들에게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싶었다. 텔레비전이나 트위터, 잡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 아프긴 했지만 그저 그 때만 잠깐 그랬을 뿐, 남의 일이라고 넘겨버렸던 듯싶다.  

 하지만 아직 노동자도 아닌 구직자인 나로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홍대 청소노동자인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힘들게 일하시는 우리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져 매우 속상하고 화가 났다.  

 어째서 많이 가진 자들은 없는 자가 가진 마지막 동전까지 앗아가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근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는 한진중공업·쌍용차 파업이나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삼성반도체 산재 등은 모두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자본가들이 노동자(사람)보다 이윤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를 위해 자본가들은 정부와 언론을 등에 업고 오래 전부터 꼼수를 마련했다. 자본가들은 초과수당은 물론 최저임금제조차 지키지 않았으며 근로자를 간접 고용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게끔 했다. 또한 일자리 창출을 앞세워 정부는 비정규직, 인턴, 임시직 노동자들을 양산했다. 여기에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은 손발을 맞춰 '경제성장'과 노동'유연화'가 이루어졌다고 철저히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제 노동자를 이간질해 분열을 조장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자본가와 경찰을 보내 이를 지지하는 정부, 정부와 자본가 구미에 맞는 뉴스만 보도하는 다수의 언론은 지겹고 끔찍하다.   

 

 

 

 

 

 

 

 

 

 

 

  지은이 홍명교 님은 이러한 현실을 훨씬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이웃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포함되어 있는 박건웅·심흥아·전지은 님의 만화 역시 우리 가까이에 유령처럼,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노동자들과 방황하는 청춘인 우리들의 초상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칫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가 만화를 통해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홍대 청소근로자들의 경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이중 삼중의 억압을 받고 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하루종일 학교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온갖 집안일을 떠맡아야 한다. 하지만 가사일은 죽어라 하면 티가 안 나고 조금만 안 하면 눈에 띄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그들은 죽어라 일하지만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인정은 커녕 유령취급을 받는다.(ㅠㅠ)  

 대학교 청소근로자들 뿐만이 아니다. 커다란 빌딩숲의 청소근로자들,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의 근로자들, 재능교육 근로자들,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임시직, 인턴 노동자들이 모두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할 것을, 함께 '연대'해야 함을 주장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브라질 민중들이 외쳤다는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낯뜨거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앞으로 조금씩이나마 '관계있음'을 의식하고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싶어졌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처럼 자기 안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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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인형 도시의 살생부 사건
팀 데이비스 지음, 정아름 옮김 / 아고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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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와 제목만 보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내용이었다. 귀여운 곰 인형, 토끼 인형이 등장해 여느 추리소설처럼 범인을 쫓는 내용이겠거니, 했지만 좀 더 무게감 있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배경묘사가 세밀하다. 봉제인형들이 살고 있는 네 도시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도시나 도로와 같은 큰 배경 이외에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해도 좋을만큼 건물이나 인물묘사가 세세하다. 앞날개에 나온 작가 소개를 보니 작가는 20세 이전에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데, 책을 읽지 않고도 이런 묘사와 줄거리를 쓸 수 있다니 신기했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우선 '인형(사람)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우리가 항상 고민하는 철학적 문제이다.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나이들어 병들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봉제인형은 녹색 트럭이 각 가정을 방문해 아이를 배달하고 마찬가지로 빨간 트럭은 목숨을 앗아간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태어나는 것은 공장에서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죽는 것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만약에 살생부가 존재한다면 그 명단을 작성하는 존재는 신인가,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사람인 그에게 신처럼 전능한 힘이 부여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갓 사람인 그가 타인의 죽음을 결정한다면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또는 그가 타인을 죽이기를 멈춘다면 모두가 천년만년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 쌍둥이 곰돌이와 인형 친구들은 내게 여러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다음으로는 선과 악의 문제이다. 쌍둥이 중 동생인 테디는 어렸을 때부터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계속 둘의 의미를 밝혀내려 하고 악인의 유형까지도 -독재자, 사디스트, 사이코패스 세 유형으로- 분류한다. 그는 선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알겠지만 딱히 착해 보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이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는 않으며 시점에 따라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쌍둥이 형이며 주인공인 에릭조차도 유년 시절 카지노에서 방탕한 시절을 보냈으며 이후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인형을 위해 다른 인형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에릭의 아내인 토끼 엠마도 에릭과 테디에 의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인형(여인?)이지만 소설 후반부에 그녀의 시점에서 드러난 엠마는 요즘 '된장녀'로 불리는 여성들을 연상하게 한다. 

 테디는 "악은 결과"이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쁜 일"(p.130~131)이라고 정의한다. 어쩌면 작가는 테디의 입을 빌려 악은 의도한 관념이 아니라 결과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려는 듯싶다. 그렇다면 악한 의도를 품은 독재자, 사디스트, 사이코패스는 악인이 아닌 것일까? 내 머릿속에 개념과는 또 다른 의미여서 나는 자꾸 머리를 굴려야 했다.  

 결말 역시도 뭔가 완결되지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알라딘 리뷰 쓰신 분의 글을 보니 4부작을 예정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다음 작품에는 또 어떤 묵직한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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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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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와 빨강>, 이 소설은 얼마 전에 읽었던 <아오이 가든>보다 훨씬 잘 읽혔다. <아오이 가든>의 각 단편처럼 등장인물은 이름이 없고, 배경은 전염병이 도는 쓰레기더미 쌓인 도시지만, <재와 빨강>의 주인공 '그'는 감정을 드러내고 과거를 회상하는 인간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아오이 가든>을 읽을 때는 줄거리가 약간 생략된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재와 빨강>은 잘 짜인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느껴졌다. 또한 이번에 읽은 <재와 빨강>은 <아오이 가든>보다 친절하게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던져주는, 즉 좀 더 대중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작품이 너무 쉽고 뻔한 이야기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오이 가든>보다 훨씬 여러 의미를 안고 있다고 여겼고 ‘그’가 C국에서 지내는 현재와 모국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는 과거가 교차하는 서사도 흥미로웠다.  

 C국에서의 그의 삶은 인간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그 밑바닥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그는 전염병으로 격리된 아파트 단지에서 공원으로 뛰어내린다. 공원은 온종일 소독 가스로 뿌옇고 쓰레기더미가 쌓인 공간이며, 그곳에서 그는 다른 부랑자들과 함께 쓰레기를 뒤지며 연명한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는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지옥 같은 풍경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공원에서 하수도로 떠밀린다. 하수도에서의 삶은 그가 사람인지 쥐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여러 의문점이 든다. (마지막 즈음에는 해결되는 의문도 있지만) 그가 전처를 해코지 한 것인지, 몰이라는 사람이 과연 존재했는지, 그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가 전염병에 걸린 것인지..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의문점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허구로만 여겨졌던 소설 속 이야기가 갑자기 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뒷부분에서 전염병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어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도시 밑바닥은 여전히 쥐가 우글거리고 쓰레기가 썩어 간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사람도 그 안에 폭력과 잔인함으로 곪아 간다.  

 지금 우리는 정말 깨끗하고 위생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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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지침서 (반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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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에 이야기했듯이 아고라 출판사의 독자위원이 되어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어제 쑤통의 <이혼지침서>, <젊음의 비결>, <봉제인형 도시의 살생부 사건> 이렇게 3권을 받았다. 기쁜 마음에 쑤통 소설을 먼저 집어들었다. 쑤통은 현재 중국에서 이름 있는 작가라고 한다. 중국소설이라고는 몇년 전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은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어떤 소설일지 매우 기대됐다. 

 이 책에는 <처첩성군>, <이혼 지침서>, <등불 세 개>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처첩성군>은 장이모우 감독, 공리 주연의 영화 <홍등>의 원작이라고 한다.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이야기는 시각적, 청각적인 묘사가 생생하다. 읽으면서 천줘첸의 집안은 어떤 풍경일지, 등장인물들의 용모는 어떨지, 페이푸가 부는 퉁소소리와 메이산의 노랫가락은 어떤 소리일지 상상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살짝 싱겁다. 가부장 제도, 그 중에서도 처첩제도로 인해 여인들의 기구한 삶과 고통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만연한 소재에서도 이 작품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천줘첸의 네 명의 부인들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녔고 가부장적 제도 아래서 각기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끌고 나가는지 보여준다. 통통 튀는 여대생이었던 쑹렌이 마지막에 우물을 바라보며 "안 뛰어내려, 안 뛰어내려"를 외치는 모습은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우월적 시대를 극복한다는 내용보다는 담담하게 그려낸 비극적인 결말이 한결 현실적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이혼 지침서>에도 지은이는 현실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시대는 좀 더 현재에 가까워져 8~90년대가 배경인 듯하다. 주인공 양보는 이혼을 하기로 결심히다. 그는 아내가 너무 혐오스러워 일분일초를 배기지 못한다. 한시바삐 이혼하고자 그는 아내를 독촉하지만 아내 주윈은 이혼하지 않으려 발악한다. 남편은 이혼하려고 몸이 달아있고 아내는 이혼해주지 않으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자 형제들이 양보의 머리를 변기에 꽂아넣고 물을 5차례 내리는 장면이 압권이다) 양보는 내연녀에게조차 시달림을 당하고 여자에게 회의를 느낀다. 여기에 철저히 물질주의자를 대표하는 부자친구 다터우나 철학에 통달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길거리에서 수박을 파는 라오진의 모습은 현대 중국인을 대표하는 면면(面面)이다. 당사자인 양보에겐 목숨을 내걸고 하는 이혼이지만 보는 독자들을 어느새 웃음 짓게 한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시트콤과 닮아 있기도 하다.  

 마지막 소설 <등불 세 개>는 40년대 중국 내전을 바탕으로 씌어졌다고 한다. 취에 마을을 배경으로 오리를 치는 소년 비엔진이 등장한다. 그는 전쟁통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가도 그저 오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혼자 마을에 남는다. 남들은 그를 바보라고 부른다. 하지만 순수함을 간직한 비엔진은 누군가 눈물을 흘리면 가슴 깊이 아픔을 느낄 줄 아는 바보이다. 그는 오리를 찾다 만난 소녀와 흰 천과 등불 세 개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정을 나눈다. 비록 흰 천이 전쟁에서 무엇을 상징하는지 소녀가 왜 등불 세 개에 집착하는지 비엔진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소녀와의 만남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온몸으로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이 작품 역시 바보 주인공을 눈을 통해 본 전쟁이기에 읽으며 미소를 짓게 되고 아니면 더 비극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으아..실수로 backspace 누르고 앞이 하얘졌는데 다행이 임시저장이 되어 있었다..휴우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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