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지음, 폴 뮤즈 사진 / 현대문학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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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주지 않고 담담히 써내려간 글이지만 어떤 화려한 글보다 시선을 끌고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파리로 이민 간 지은이 이화열이 그곳에서 만난 이웃, 거리에 사람들,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또는 거리 풍경 및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차분하고 정갈하게 담아놓은 책이다.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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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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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에 남자친구가 이 책을 빌려주었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라고 추천하면서. 하지만 왠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남자친구가 추천해줘서 읽었던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가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았고, 그것은 아마도 남자친구의 취향과 내 취향이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남자친구의 취향을 존중하며, 추천해주었던 책 중 대부분은 훌륭한 책들이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렇지만 며칠 전 문득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_-;;

 

 그리고 책을 펼쳐 든 이후에는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너무 재미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까웠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작 궁금했던 부분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끝나버린다. 마치 퍼즐조각 몇 개를 숨겨놓고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이야기를 하다가 의도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한 번 생각해보렴."하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단편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서는 아예 밑줄이 나오고 김박사의 답변을 독자들에게 작성해보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궁금증을 한껏 유발시킨 후에, 진짜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작가가 살짝 얄밉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맛도 이 책을 읽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이야기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동, 기록물로는 다룰 수 없는 '공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삼촌의 프라이드 주행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삼촌의 연애 이야기라든가, 행정실 출입카드에는 기록될 수 없는 하룻밤 동안에 나와 맞은 편 여자의 이야기, 제자 P가 여자친구를 대했던 방식이라든가, 기종 씨가 두루마리 휴지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감추어진 이면의 이야기에 대해서 작가는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그 이면을 직접 드러내기도 하고, 독자들에게 생각해보라고 던져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덮고 나서도 한참동안 그 이야기들의 이면을 생각하면서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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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 어크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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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직을 하면서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내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알라딘 포인트가 소멸되어 간다는 메일을 받고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다. 1년이 지난 케케묵은 글들인데도 매일 들어오는 사람들이 10명 정도 있다는 사실에. (물론 마우스 클릭하다가 손이 미끄러진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다시 블로그에 느리게나마 글을 올려볼까 한다. 읽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 낮은 글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대학교 동아리 사람들 몇 명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담 없이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 더불어 맛난 음식을 먹는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처음 만나서 읽기로 한 책은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한윤형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트위터를 팔로잉하기 시작했지만 나보다 약간 나이를 먹은 인터넷 논객이라는 이야기를 접했을 뿐,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책이 혹여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며 출근길에 펼쳐 들었는데, 걱정과 달리 매우 재미있어서 지하철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였다.

 

 일단 책 앞부분에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용어 및 자주 회자되는 필자들에 대한 설명이 내 시선을 끌었다. 또한 나보다 나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같은 나이 또래만이 공감할 수 있는 어릴 적 읽었던 책 이야기(판타지, 무협지물), 게임 이야기 등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면서 책을 붙들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세대론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어서 공감이 가는 한편 슬프기도 했다. 우리 부모 세대 때는 일단 대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현저히 적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학교에 들어가면 취업 걱정이 없었다고 들었다. 오히려 대기업에서 대학교 졸업반 수업에 찾아와 우리 기업에 들어와 달라고 사정했고, 골라서 취업을 할 수 있는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 대학교는 대기업 및 공기업 등 소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되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모두 이런 자격증, 저런 공모전에 학점관리, 봉사활동, 해외연수 등을 위해 아등바등 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서,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도 빡시게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 이것이 소위 엄친아들의 삶이고, 엄친아가 아닌 사람들은 중소기업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살고, 이도 아니면 더욱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일하든가 또는 백수로서의 삶을 살기도 한다.(거칠고 대략적인 정리이고, 자영업, 대학원, 귀농 등 다른 대안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어느 쪽으로 보나, 우리 세대에서 부모의 뒷받침 없이 수도권에서 자립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고 본다. 똑같은 노력을 해도 부모 세대에서는 손쉽게 이룰 수 있었던 일들이 우리 세대에서는 어렵게 되었다. 취직을 하는 것도 어렵고, 그나마 취직을 해서도 우리 부모 세대가 받는 월급보다 훨씬 못 미치는 봉급을 받게 되기 때문에 땅값이 치솟은 우리나라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 당사자보다 부모 세대의 재력을 더 중요시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젊은 세대가 노력을 안 하고, 더 편하고 좋은 삶만을 추구한다는 질책의 소리도 있다. 또는 젊었을 때 힘든 것은 당연하며, 아파야 청춘이라는 말도 한다. 더러는 짱돌을 집어 들고 연대하여 이러한 삶을 타도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강연, 저술 활동과 같은 대외 활동 이외에 다른 어떤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저자인 한윤형은 이런 점을 꼬집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이십 대 젊은이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우리 모두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맞는 말인데, 잉여인 나로서는 내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기에 우리의 문제에 당면해서는 그저 고개를 돌리고 말 것 같다. 그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로써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며 공감하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또래 뿐 아니라 여러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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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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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만에 읽다니 놀랍다. 보통 내가 읽는 속도를 보았을 때, 꽤나 빨리 읽었다. 쉽게 읽히는 말랑말랑한 글은 아니었다. 독일과 한국을, 문학과 음악을, 과거와 현재를,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글이어서 내용을 겨우 따라잡았다 싶으면 '그게 아니었나?' 하고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이 읽어내려갔다. 느리게 읽는다고, 한 번 더 읽는다고 이해할 내용이 아니었을 거란 생각과 한 번 읽을 때 집중해서 읽자는 다짐 때문이랄까.(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읽을 것은 넘쳐난다. ;ㅁ;) 

 소설에서 '나'는 한국의 소설가로 등장하기에 작가와 화자가 혼동된다. 어느 정도 작가 배수아가 묻어나는 인물인 '나'는 첫 장에서부터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쟁한다. '나'는 예술가를 완벽한 예술을 하는 예술가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그러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당나귀' 같은 예술가로 크게 나누고 자신은 후자에 입장을 취한다.  

 '나'는 음악, 그 중에서도 클래식을 좋아하고, 클래식 중에서도 이렇다 할 삶의 굴곡도 개성 있는 성격(미쳤다거나 자살을 했다거나..)도 지니지 않은 바흐를 좋아한다. 또한 바흐를 좋아하는 독일의 길거리(?) 시인 찰스 부코우스키를 좋아한다. 음악과 문학이 맞닿아있다는 확신을 지닌 '나'는 다른 한편으로는 우연히 가져온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부코우스키 등으로 폴란드와 연결되어 있고,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지만 우연히 계속 인연의 끈이 이어진 '야니네'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갑자기 나는 이 작품과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엮어 읽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토성의 고리>는 -최근에 읽었기에 더욱 그러하겠지만- 이 책과 공통되는 부분, 엮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콘래드나 버지니아 울프도 두 책에 모두 잠깐이나마 언급되고,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작가와 지은이가 구분되지 않는 말투라든지, 독일에 체류하며 음악가와 시인, 동성 연애 작가를 소개하는 '나'와 영국 동남부를 여행하며 역사적 인물과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발트 소설의 '나'가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나'는 독일에서 작문 수업을 받으며 '미움'의 감정이 무엇인지, 사람이 사람을 정말로 미워할 수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또한 동성 연애 소설을 쓴 래드클리프 홀의 이야기와 삶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그녀'는 앞선 동성애 소설의 변형으로 생각되는데 꿈과 현실, 독일과 한국, 과거의 시간과 현재를 오가는 서술 때문인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처럼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무는,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완성되지 않는, 언제나 변두리에 머물고 있는 채식주의자, 길거리 시인, 동성애자와 같은 '당나귀들'의 삶을 작가는 그려보고자 한 것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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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 한 사회생물학자가 바라본 여자와 남자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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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에 출간된 책이긴 하지만,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그 당시 국어 선생님께서 읽어볼 만한 도서목록을 주셨는데,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걸 싶었다. 약간 큰 활자에, 줄간격도 널찍하고 사진과 시가 매우 많아, 읽기 쉽고 재미있다. 

 다윈의 진화론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잘 알려진 생물학 이야기에서부터, 다양한 동물들, 식물들, 곤충들이 짝짓기 하는 법, 후손을 낳는 법, 키우는 법이 다양한 사례로 소개된다. 이를 통해 과학적인, 사회생물학적이고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 여성이 남성만큼 존중받아야 할 생명체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다분히 가부장적 논리가 내포된 호주제 폐지(당시에 호주제 존폐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의 과학적 논리, 법원에 제출한 그의 소견서가 책의 마지막을 꾸미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남자친구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다가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원칙적으로는' 가는 게 맞다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미군 부대를 들었다. 미군은 지원제이고 여성도 몇몇 있는데 여성이 있음으로 인해 군대 문화가 한결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여성이 군대를 간다면 군대문화가 변화할 것이고, 나아가 군대문화를 답습하는 직장문화도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했다.(물론 미군 부대에서는 여성은 힘든 보병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구체한 사항은 조정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나는 머리로는 이 논리를 받아들였지만, 여성인 '나'도 군대에 가야한다는 사실이 감정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의 군대문화가 여성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변화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과 함께 그동안 군대에서 청춘을 썩힌 수많은 남성들이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지고 내가 얼마나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국방 제도에 대해 무심(=무지)했던가, 반성하게 되었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대한민국의 남성에게도 해방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은이 역시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가장들은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경제적 부담과 짐으로 인해 스트레스와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고 한다. 이런 압박에서 벗어나, 남녀 모두 함께 일하고(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함께 자식을 키우는 사회를 지은이는 희망하고, 곧 그러한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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