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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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에 남자친구가 이 책을 빌려주었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라고 추천하면서. 하지만 왠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남자친구가 추천해줘서 읽었던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가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았고, 그것은 아마도 남자친구의 취향과 내 취향이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남자친구의 취향을 존중하며, 추천해주었던 책 중 대부분은 훌륭한 책들이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렇지만 며칠 전 문득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_-;;

 

 그리고 책을 펼쳐 든 이후에는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너무 재미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까웠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작 궁금했던 부분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끝나버린다. 마치 퍼즐조각 몇 개를 숨겨놓고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이야기를 하다가 의도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한 번 생각해보렴."하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단편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서는 아예 밑줄이 나오고 김박사의 답변을 독자들에게 작성해보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궁금증을 한껏 유발시킨 후에, 진짜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작가가 살짝 얄밉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맛도 이 책을 읽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이야기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동, 기록물로는 다룰 수 없는 '공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삼촌의 프라이드 주행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삼촌의 연애 이야기라든가, 행정실 출입카드에는 기록될 수 없는 하룻밤 동안에 나와 맞은 편 여자의 이야기, 제자 P가 여자친구를 대했던 방식이라든가, 기종 씨가 두루마리 휴지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감추어진 이면의 이야기에 대해서 작가는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그 이면을 직접 드러내기도 하고, 독자들에게 생각해보라고 던져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덮고 나서도 한참동안 그 이야기들의 이면을 생각하면서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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