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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하루만에 읽다니 놀랍다. 보통 내가 읽는 속도를 보았을 때, 꽤나 빨리 읽었다. 쉽게 읽히는 말랑말랑한 글은 아니었다. 독일과 한국을, 문학과 음악을, 과거와 현재를,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글이어서 내용을 겨우 따라잡았다 싶으면 '그게 아니었나?' 하고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이 읽어내려갔다. 느리게 읽는다고, 한 번 더 읽는다고 이해할 내용이 아니었을 거란 생각과 한 번 읽을 때 집중해서 읽자는 다짐 때문이랄까.(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읽을 것은 넘쳐난다. ;ㅁ;)
소설에서 '나'는 한국의 소설가로 등장하기에 작가와 화자가 혼동된다. 어느 정도 작가 배수아가 묻어나는 인물인 '나'는 첫 장에서부터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쟁한다. '나'는 예술가를 완벽한 예술을 하는 예술가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그러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당나귀' 같은 예술가로 크게 나누고 자신은 후자에 입장을 취한다.
'나'는 음악, 그 중에서도 클래식을 좋아하고, 클래식 중에서도 이렇다 할 삶의 굴곡도 개성 있는 성격(미쳤다거나 자살을 했다거나..)도 지니지 않은 바흐를 좋아한다. 또한 바흐를 좋아하는 독일의 길거리(?) 시인 찰스 부코우스키를 좋아한다. 음악과 문학이 맞닿아있다는 확신을 지닌 '나'는 다른 한편으로는 우연히 가져온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부코우스키 등으로 폴란드와 연결되어 있고,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지만 우연히 계속 인연의 끈이 이어진 '야니네'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갑자기 나는 이 작품과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엮어 읽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토성의 고리>는 -최근에 읽었기에 더욱 그러하겠지만- 이 책과 공통되는 부분, 엮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콘래드나 버지니아 울프도 두 책에 모두 잠깐이나마 언급되고,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작가와 지은이가 구분되지 않는 말투라든지, 독일에 체류하며 음악가와 시인, 동성 연애 작가를 소개하는 '나'와 영국 동남부를 여행하며 역사적 인물과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발트 소설의 '나'가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나'는 독일에서 작문 수업을 받으며 '미움'의 감정이 무엇인지, 사람이 사람을 정말로 미워할 수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또한 동성 연애 소설을 쓴 래드클리프 홀의 이야기와 삶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그녀'는 앞선 동성애 소설의 변형으로 생각되는데 꿈과 현실, 독일과 한국, 과거의 시간과 현재를 오가는 서술 때문인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처럼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무는,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완성되지 않는, 언제나 변두리에 머물고 있는 채식주의자, 길거리 시인, 동성애자와 같은 '당나귀들'의 삶을 작가는 그려보고자 한 것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