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만큼 보편적인 가치..

이웃집 빙허각 ㅣ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학창 시절 역사를 공부하며 한 번쯤은 보았을 이름... 빙허각..

제목에 떡하니 박혀있는 '빙허각'이라는 이름과 삽화를 보며 빙허각 이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 쯤이 아닐까, 아니면 빙허각과 비슷한 일을 했던 가상의 인물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표지 그림 속 빙허각은 아이가 아닌 할머니...

가난한 양반가에서 생계를 위해 일해야하는 덕주가 이웃집 할머니께 살림을 배우게 되고 알고 보니 이웃집 할머니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의 가치를 알고 이를 책으로 남기고자 했던 여성 실학자였다. 속박받는 환경에서 보다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날아오르길 원하는 덕주와 여느 남자들보다도 지적 호기심이 넘치고 영리하며 열정 가득했던 빙허각이 서로 도우며 '규합총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생동감 넘치게 그려진다.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만나 억지스럽지 않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최근 사극 드라마의 트렌드처럼 실제 사실에 기반한 허구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평소 책 근처에도 오지 않는 중학생 아들이 슬그머니 집어들더니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쭉 읽어내는 걸 보니 잘 쓰여진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먹히는 것 같다.

다소 진부할 수 있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어느 시대, 어떤 누구에게나 중요한 가치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어린 시절 빙허각을 만났던 덕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또 다른 업적을 남긴 제2의 빙허각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 시대의 빙허각으로 자랄 수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힘을 내게 하는 책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따뜻함으로 대단해진 하루...

대단한 하루
윤순정 지음 / 이야기꽃 / 2024년 12월

따뜻한 그림체에 반해 주문 버튼을 눌렀다. 정감 넘치는 풍경과 아픈 강아지가 내내 마음에 걸리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향순이라는 강아지의 이름 마저 너무나 정감 넘치는 그 시절 그런 느낌... 뭔가 향수를 자극하는 전체적 분위기가 자꾸 마음을 이끈다.

그렇게 받아본 책... 뒷 부분 내용이 궁금해서 얼른 책장을 넘겨 보았다. 향순이의 사연을 확인한 후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보는데....

'신포 시장 송년회'

앗? 내가 아는 그 신포 시장? 그리고 보게 된 작가님 소개 말... 인천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님이셨구나... 이렇게 학연 지연에 연연해 하면 안 되는데 역시 나고 자란 동네는 어쩔 수가 없다.. 가장 해맑고 기운찼던 시절을 보낸 동네는 쉽사리 지울 수 없는 법이다. 고향 동네 이야기에 더 포근해진 마음으로 다시 읽어본다.

송년회에 가야하는데 아픈 강아지가 마음에 걸려 결국 집 안에 들여 놓고 나왔다. 송년회장에 있는 내내 마음에는 강아지 향순이 걱정 뿐이다. 부랴부랴 돌아간 집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제목 그대로 '대단한 하루'가 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날을 '대단한 하루'로 만든 대단한 일... 그리 멀리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일상 속 곳곳에 숨어 있는 평범한 일들이 우리의 하루를 대단하게 만드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포근한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따스한 그림체도 이 책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책장을 덮으며 슬그머니 미소짓게 만드는 이야기에 오늘 하루가 따뜻해진다.

아빠가 들려주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로저 뒤바젱 그림,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 글, 정화진 옮김 / 창비 / 2024년 11월

'반 세기가 넘게 전 세계에서 사랑받아 온 그림책의 거장'

세로로 기다란 판형과 오랜 세월을 강조한 소개 문구...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조합이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글은 무려 19세기 초반에 쓰여진 시이고, 그림책의 처음 출간된 건 1954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촌스럽거나 유치해 보이지 않는다. 이 시에서 묘사된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옷에 흰 수염을 가진 뚱뚱한 할아버지의 시작이라는 점을 알고 나니 더욱 놀라웠다.

출간된 지 70년 만에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데 70년 전 만들어진 책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쨍한 느낌의 강렬한 색은 촌스럽기는 커녕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란히 걸려 있는 양말에서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잠결에 들려온 소리에 일어나 멀리서 다가오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지켜보며 선물을 전하고 떠나는 순간까지의 모습을 빠짐없이 관찰한다. 작은 몸짓과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묘사한다. 그림이 없더라도 설명만으로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머릿 속에서 그대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오랜 세월 사랑받아왔던 이유가 무엇인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 선물을 전달하는 산타클로스의 마음, 그걸 지켜 보는 아빠의 마음, 크리스마스를 가득 채운 푸르른 하늘과 하얀 눈과 색색의 집과 까만 굴뚝과 설렘 가득한 양말들까지... 크리스마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한 장면도 그냥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크리스마스에 의한, 크리스마스의 책이다.

환경을 위해 내가 오늘 할 일

오늘의 할 일
김동수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문수의 비밀'이라는 그림책으로 알게 되었던 김동수 작가님의 새로운 그림책 소식을 듣고 너무나 반가워하던 중에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정갈한 그림체가 매력적이고 선명한 듯 편안한 색은 눈을 시원하게 하는 작가님 특유의 그림들이 시선을 끈다.

물귀신 세계로 끌려 들어간 아이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지만 결코 호러나 판타지 장르기 아니다. 물귀신의 정체는 다름 아닌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자연 그 자체이다. 오염되고 있는 물을 계속해서 정화하고 있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오염에 너무나 바쁘다. 그들을 돕는 어린이가 물귀신 세계에 이끌려 가게 되고 거기에서 아주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할 일을 마친 어린이는 일상으로 돌아와 환경을 지키기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 간다.

자정작용을 하고 있는 물귀신, 훌륭한 업무처리를 위해 훈련중인 물귀신을 위해 열심히 할 일을 하는 어린이, 물 속 세계에서의 생활 등 기발한 상상으로 가득 차있는 책 속 이야기는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귀신이지만 전혀 무섭지 않으며 아이는 아이답게 성실하다. 재미있게 읽고 나서 책장을 덮었는데 남는 것은 재미가 아닌 깊은 깨달음이다. 더불어 이런 아이들이 자라날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겠다는 희망은 덤이다.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색다른 시선으로 재미까지 갖춘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100자평] 큐브

큐브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모든 것은 마음이 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