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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평점 :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결국.... ??
사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읽고 보니 다른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기대감을 안겨주는 제목이다. 더불어 그 결론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사물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결국 사물에 대해서는 쓰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에 대해 쓰게 되었나? 막연한 잠시의 상상을 접고 책을 펼치면서 만나는 목차는 각 장의 제목부터 감이 잡힌다. '식탁 위의 얼굴', '울타리 너머의 얼굴', '길 건너의 얼굴'... 가족에서 이웃, 동네, 고장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었다.
이 책의 작가님에 대해서 사실 난 잘 모른다. 전작을 읽어보지도 못했고 그저 뉴스로, 칼럼으로만 접하고 넘어가는 분야의 작가님이어서(라는 핑계로) 이 책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다문화 청소년, 결혼 이주 여성, 북한 출신 이주민으 만나며 이들을 돕는 활동가이자 연구자'라는 소개글을 보며 조금은 생소하거나, 왠지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난 참 지레 앞서간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다지 길지도, 어렵지도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다. 다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나는 내 주변에 그와 비슷한 인물을, 그와 비슷한 사연을 자꾸 찾고 있었다. '맞아, 나도 그랬지', '그래, 그 때 그 사람이 그랬었어', '아, 그때 내 마음이 어랬었나보다'라고 자꾸 나의 이야기를 찾아서 덧붙이고 있었다. 나와는 많이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주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어디에나 있는 사물, 거기에 얽힌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외국인과 결혼하여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엄마의 생활도 한국인과 결혼하여 한국 땅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나의 생활과 그 결이 많이 다르지 않다. 예전에 친정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을 내 손으로 차려 먹으며 엄마를 떠올리는 마음, 뒤늦게 담그기 시작한 김치를 여기 저기 나누어주며 혼자 뿌듯해하는 마음.. 가볍고 작은 책 한 권에서 수많은 공감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따뜻한 시간을 갖게 한다.
특히나 '돌봄'의 가치를 찾게 해주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핸드폰 속 일정표에 빼곡하게 들어찬 내 돌봄의 흔적을 보며 한 번도 그에 대해 스스로조차 가치를 매겨보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너무나 명쾌하게 돌봄을 '전문직'으로 격상(?)시켜주고 그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돌봄으로 분주한 나의 시간들에 매일 새로이 가치를 매겨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