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라는 말은 매우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째 society에 해당하는 말이 일본어에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하는 말이 없었다는 것은 일본에 society에 대응할 만한 현실이 없었다는 것과 같다.-14쪽
즉 일본에는 원래 society에 상당하는 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회'라는 번역어가 생겨나자, 번역자는 society 하면 '사회'라고 기계적으로 치환하면서 마치 그 뜻에 대해 책임을 면제받기라도 한 듯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20쪽
뜻이 결핍되어 있기에 남용되는 번역어
번역어는 이렇게 뜻이 결핍돼 있는데도 막연히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지면서 한때 왕성하게 남용되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말에 뜻이 결핍돼 있으면 그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을 더욱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 그리고 말은 일단 만들어지면 뜻이 결핍된 말로는 취급되지 않는다. 뜻은 당연히 거기 있을 것으로 취급된다. 사용하는 당사자는 잘 몰라도 말 자체가 심원한 뜻을 본래 갖고 있는 것처럼 간주된다. 그리고 모르기 때문에 도리어 남용되어 다른 말과 구체적으로 맥락이 이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용되는 것이다.-31-34쪽
'일개인'이나 '개인'이란 번역어가 등장한 것은 오히려 원어 individual이 전하는 뜻을 번역하기를 포기하고 '에이카지텐'에 기대어 한자 조어로 도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현실에 대응하는 의미가 결핍된 어색한 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8쪽
자네는 지금 일본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같은 입으로 이미 적당한 말로 원자를 번역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말하는 바와 같이 '맞춘다'는 말, 그것이 이미 자연스러운 일본어로서 흠잡을 데 없는 역자(번역어)라네. 나라면 곧장 그 원자를 '맞춘다'라고 번역하겠네. 자네와 같은 이들은 서양 원서를 번역하는 데 한결같이 네모난 문자(한자를 뜻함)만 사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 -후쿠자와 유키치-45-46쪽
일본에서 한자가 지니는 이러한 효과를 나는 '카세트 효과'라고 부른다. 카세트(cassette)란 작은 보석함을 이르는 말로, 내용물이 뭔지는 몰라도 사람을 매혹시키고 애태우게 하는 물건이다. '사회'와 '개인'은 예전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이 '카세트 효과'를 갖는 말이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47쪽
여기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보기 드물게 '네모난 문자'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앞서 나온 메더스트의 <<에이카지텐>>에서 사용된 번역어를 빌려온 것일 터이다. 하지만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때까지 한사코 한자 표현을 피하고자 했는데, 왜 여기서 방향을 바꾼 것일까? 그것은 그의 사고가 여기서 가로박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 individual에 녹아 있는 사상과 일본의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49-50쪽
하나의 말에 좋다, 나쁘다 식으로 색깔이나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일본에서의 번역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이처럼 말에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치가 부여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말이 인간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가 '혼란'이며 '지옥'이라고 단정짓는 사람은 '근대'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나쁠 것이며, 다른 한편 '매우 위대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꾸로 그 이름만 들어도 희망에 부풀 것이다. 사람이 어떤 말을 미워하거나 동경하거나 한다면 그 사람은 그 말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사람을 부리는 것이다. 어떤 말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그만큼 그 사람은 그 말에 휘둘린다.-55쪽
번역어 성립의 역사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번역어를 단지 말의 무제로만 보고 사전적인 의미만을 쫓기보다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보고 싶고, 문화적인 요소로서의 의미를 추구하고 싶다. 특히 말이 어떻게 인간을 움직이고 있는지가 관심사다.-56쪽
번역어 '근대'는 modern의 번역어인 이상, 그 성립 무렵부터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라는 식의 뜻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는 바로는, 그것은 번역어 '근대'의 겉으로 드러난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즉, 번역어 '근대'에는 시대 구분이라는 뜻과도 다르고 전래된 한어가 지니는 뜻과도 다른, 소위 또 하나의 안의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인용한 의견과 같이 '지옥'이거나 반대로 '매우 위대한 듯'하거나 하는 '근대'가 그렇다. 번역어 '근대'의 의미가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일 뿐이라면, 거기에는 좋다도 싫다도 없을 것이다. 증어하거나 동경하거나 하는 '근대', 가치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근대', 그것은 결국 번역어 '근대'가 안에 품고 있는 안의 의미의 발현인 셈이다. -61쪽
모든 유행어가 그러하듯이, '근대'도 또한 그 유행의 와중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뉘앙스'이고 어떤 언어 행동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효과'이다.-69쪽
말의 의미가 이 정도로 다의적인 것은 본래 그 말에는 의미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의미가 결핍돼 있기에 유행하고 남용되고, 그리고 유행하고 남용되기 때문에 다의적인 말이 된다. -71쪽
유행은 우선 '연애'라는 말의 유행에서 출발하였다. 그 다음에는 이 말에 의해 용기를 얻게 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드디어 '연애'라는 행위로서 유행하게 되었다. -103쪽
이리하여 관념으로서 순화된 '연애'는 당연히 일본의 전통이나 현실 안에 그것이 실현되기 어려워져간다. 따라서 '연애'는 현실 속에 살아 있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 밖에 서서 일본의 현실을 재단하는 규범이 되어간다. 이것은 일본에서 번역어가 걸어가는 숙명이다.-107쪽
한자 중심의 표현은 번역에는 이로웠을지 몰라도 학문과 사상 등의 분야에서 일본 고유의 야마토 말, 즉 전래의 일상어 표현을 잘라 버려왔다는 것이다. 그런 탓에 가령 일본의 철학은 우리들의 일상에 살아 있는 의미를 포섭하지 못했다. 이것은 지금부터 350년쯤 전에 라틴어가 아니라 굳이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쓴 데카르트의 태도와 상반되는 것이며, 나아가 소크라테스 이래의 서구 철학의 기본적 태도와도 상반되는 것이다.-123쪽
right란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이므로 구체적인 운동은 짓밟혔다 해도 사람들의 정신 속에 남아 이어질 수 있다. 자연법이나 자연권의 서구의 역사는 그것을 얘기해주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민권 운동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일본인들에게 비교적 쉽게 이해됐던 '권'은 right라기보다는 오히려 힘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번역어 '권'의 역사와 함께 right의 의미도 또한 차차 이해해간 것 역시 사실이다. 즉 사람들은 새롭게 출현한 '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거기에 내포돼 있던 미지의 right 개념을 조금씩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일본인의 외래 문화 수용의 일반적인 방식이기도 했다.-166쪽
당시 이 '자유'라는 말은 하나의 유행어로서 사람들은 그 의미도 잘 모르면서 아무 데나 쓰는 형편이었다. 의미를 잘 모르는 말이기에 더욱 유행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반벅하여 서술했듯이 번역어의 특유한 '효과' 탓이다.-168쪽
우리는 '자유'라는 말은 바르게 이해하면 좋은 뜻이 되고 잘못 이해하면 나쁜 뜻이 된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해의 방법이 아니다. 모국어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역사 깊은 말은 '오인'될 리 없다. 따라서 '오인'된 '자유'는 번역어 '자유'이다.-169쪽
일반적으로 어떤 번역어가 선택되고 남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자의 뜻으로 보아 가장 적절한 말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장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한다. 번역어는 모국어의 문맥 속에 들어온 이질적인 태생의, 이질적인 뜻의 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이질성이 그냥 남아 있는 것, 즉 어딘가 잘 모르는 구석이 있다든가, 어감이 어딘가 어긋난다든가 하는 상태로 있는 것이 낫다. -177쪽
번역 일본 글이나 번역조의 일본 글에 '彼'와 같은 주어가 많아졌긴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공백이었던 곳에" "충전"된 것이 아니다. 하나의 언어 체계에 '공백'은 없다. 그것은 단지 서구 문장을 모델로 했을 경우에 일본 글쪽에 결여된 '공백'이 있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 글이 변화를 하고 사람들이 그것에 익숙해진 다음 뒤를 돌아보고 예전에 거기 '공백'이 있었다고 느끼는 데 지나지 않는다. -190쪽
문어와 구어의 차이가 생기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이질적인 문화의 만남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번역어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번역어가 그러한 효과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효과를 갖고 있는 것은 그 말을 번역한 나라보다 더 강한, 지배적 위치에 있는 국가의 문화로부터 번역된 말들이다. 문어는 그래서 지배 종속, 계급 따위의 이미지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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