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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평점 :
세상을 살아갈 이유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완벽한 가정도 없고, 완벽한 관계도 없다.에디의 삶을 보며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고 특별할 수도 있는 우리네 인생들이 참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완벽할 것만 같은 사람도 허점이 있고 상처가 있다.그냥 드러내지 못할 뿐, 아니 드러낼 수 없어서 숨기고 가슴에 지니고 살 뿐이다.마음은 스스로 열어 보이지 않는 한 비밀스레 모두들 닫고 있으니까.
나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있고 평생 지니고 살아야할 비밀들이 있다.가정에서도 그렇고 말이다.에디도 나도,에디의 가족들도 친구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기에 숨기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은 종종 오해를 낳는 것 같다.
에디에게는 아내에게도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한 전쟁의 상처들이 있었고,그의 아버지는 에디를 부르지도 못하고 죽어가야만 했던 모난 자존심이 있었다.온 몸이 파란 사내는 수치심으로 인한 약물중독이 ‘버림받은 사람에게는 남이 던지는 돌조차 관심으로 여겨지는 법이니까요’라는 말을 예사로 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들에게는 모두 상처가 있었다.극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에디의 부인도,에디의 형도 모두들 상처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붕대에 싸여 미라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모두들 살아있는 미라가 되어 눈만 겨우 내고선 서로 소통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에디는 죽은 후에야 미라같은 관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있다.아버지,그리고 대위가 그들이다.에디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했다.애증.가족에게 있어 반드시 따라붙는 감정.어린시절 구타의 기억들과 도박판의 기억들을 에디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아버지가 죽기까지 그 상처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회복되지도 않았다.아버지가 에디에게 화해를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천국에 가서도 에디는 아버지와 대화하지 못했다.아버지와의 단절이 얼마나 깊었기에 천국에서도 유리너머로 바라 볼 수밖에 없었을까.천국에서 조차 에디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어색해 했던 건 아닐까.
사랑하면 대화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하는데,사랑하면 내 방식으로 이해시키려하고 내 생각대로,내 입맛대로 살아주길 바라는 이기심이 있는 것 같다.나도 때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스스로 놀랄 정도로 분노하곤 하는데,너무 사랑하기에 갑절로 분노하는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참 이기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에디도 에디의 아버지도 이기적인 사랑을 했다.에디의 아버지는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에디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에디또한 늙은 아버지와 죽을 때까지 진솔한 대화를 청하지 않았다.대화.참으로 간단하고 많이 해야 한다고 배워온 대화.‘현대인의 사회와 핵가족의 구성원은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라고 사회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정말 그렇다.대화.사랑한다면 대화해야 할 거 같다.서로의 자존심을 긁고 깊이 파인채로 우리는 그냥 그냥 지나쳐 버린다.가족이라면 사랑하는 건 기정사실이니까 더 안도하며 서로를 상처내며 발로 차버린다.사랑하면 용서해야 할 것이다.사랑하면 먼저 손 내밀어야 할것이다.
죽어서 화해한 사람 중 또 다른 한 사람은 대위이다.대위는 에디에게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자신의 다리를 가져간 사람으로 생각되어지는 대위는 사실은 그를 위해 목숨을 잃은 이였다.자기가 가장 댓가를 많이 치룬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에디는 대위의 죽음앞에 숙연해 진다.
루비피어라는 공간은 이 세상을 대변하는 공간이다.루비피어는 넓지만 좁고 좁지만 넓은 세상이다.과거와 현재가 있고 또 미래가 펼쳐질 공간이다.루비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과거에 루비피어가 지어졌었고 또 불이 난 적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에디가 일할 때도 그 공간은 존재했고 에디가 죽은 후에도 루비피어는 계속 운행된다.이 세상도 그러하다.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망하고 누군가는 성공한다.이세상은 연관없고 관련 없어 보이지만 관련되어 있고 이어져 가는 연속체다.누구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개입하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루비피어에서 에디의 주변인들을 보면 연관 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파란사내는 에디 때문에 죽음을 맞았으며,대위가 죽은 것은 에디 때문이고,에디를 죽음에 간접적으로 이끈 청년은 루비의 증조카이다.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내가 사는 이 세상도 얼마나 좁고 좁은지.누구의 친구가 내 친구고,내 친구의 친구가 엄마친구의 아들이고.얼마나 이 세상은 연관이 많은지.사람이라면 다 연관이 되 있는게 이 세상이다.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산다.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경제형편,성격까지 얼마나 다양하게 이세상이 만들어져 있는지 하나님의 창조성이 신기할 따름이다.
에디의 연결된 삶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다양성의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하는 건 사랑이 아닐까.너무 뜬금없이 성인군자 같은 소리라고?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천지인 이 세상이다.정말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정말 밉고 ‘왜 저러니 왜 저러니’소리 들어야 마땅할(?)직장상사들도 지천에 널렸다.하지만 모두가 사람인 이상,그 사람의 인생을 내가 깊이 아니 살짝도 들여다보지 못한 이상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이렇게 장담하면서도 미워하는 사람들이 머리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속속들이 많이 떠오르는지.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볼 것이다.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천안함 사건으로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는다.모든 국민들이 슬퍼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우리는 무의식중에 사람들이 모두 보이지 않게 연결된 루비피어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먼저 사랑하고 이해해야 사람을 잘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우리는 누군가의 피의자일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 의한 피해자일수 도 있다.
에디가 마지막으로 화해한 사람은 탈라이다.군인으로 있을 때 불타는 오두막에 있었던 탈라.에디가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라고 잃은자라고 계속 생각할 때 에디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소녀는 탈라였다.탈라와의 마지막 화해로 인해 에디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돌고 도는 것을 느끼고 진정한 용서를 구한다.그리고 탈라의 몸을 씻어주면서 완벽한 용서와 화해를 이룬다.인생은 끝없는 용서와 화해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누군가 먼저 용서할 때 누군가 먼저 화해를 청할 때 사람의 관계는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 질 것이다.
에디를 마지막으로 천국으로 인도한 손이 탈라라는 사실은 실로 감동적이다.자신을 불태워 버린 이의 손을 이끌고 천국으로 데리고 탈라의 행동은 그녀의 마음에 이미 천국이 임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에디는 죽어서야 그 오두막에 누군가가 실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인생이란 정말 오묘하고 의문투성이다.내 옆사람이 죽는데 나는 살아있고,그 죽음을 바라보며 잠시 슬퍼하다 또 일상으로 돌아간다.밥을 먹고,일어나서 일을 하고,그 사람은 차차 잊어진다.의문투성이의 세상에서 누군가의 슬픔을 내 전적인 책임은 아니지만 함께 슬퍼해 주며,위로해 주는 것이 루비피어를 공감하는 사람들의 입장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에디의 삶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에디를 잘 이끌어준 사람을 마거릿으로 들고 싶다.그녀는 끝까지 에디를 바라봐 주고 지켜봐 주었다.비록 병으로 그를 먼저 떠낫지만 그녀가 자진해서 그를 먼저 떠났던 적은 없다.에디가 전쟁에 떠날 때,그리고 그가 경마장에서 즐기고 있을 때도 불안과 초조함을 담고서 그녀는 그를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
그녀의 변함없는 기다림이 에디를 루비피어의 부지런한 일꾼으로 만들었다.동료직원의 생일에 몇 달러를 쥐어주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마지막 죽기 직전 위험에 처한 소녀를 향해 달려드는 용기있는 직원으로 만들었다.
사람을 끝까지 믿어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이전에 월드컵 경기를 했을 때 골을 극적으로 넣은 선수를 보며 감독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그 선수를 끝까지 믿어보았습니다’신뢰라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된다니.나는 솔직히 사람에 대해 신뢰했던 적이 많이 없는 것 같다.험하디 험한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끝까지 믿어 본다는 게 어찌나 어려운지.서로 서로 믿지 못해 안달 난 세상에서누군가 믿어보려면,다단계 접근 아닌가? 보험 들라는 것 아닌가? 이상한 종교단체 아닌가? 부터 생각해야만 하는 세상이 와버렸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 산다.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믿음과 신뢰가 가득찬 세상을 만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이고 자그마한 신뢰조각의 시작이 어쩌면 작은 루비피어 같은 지구에서 연결 연결 되어 신뢰의 동산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우리는 끝없이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그리고 끝없이 용서 받아야 한다.인생은 한번 뿐인데 그 속에 녹아있는 감정들은 수만가지다.증오와 분노,오해와 사랑,질투와 용서.이렇게 복잡하고 다채로운 세상에서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하지만 아주 조금만 더 큰 눈으로 그를 담아서 그에게 여유를 줄 순 있을 것 같다.하나님이 주신 이 짧고도 복잡한 인생.인생을 지나칠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싶은데 내 눈은 내 가슴은 아직 그리 크지도 못하고 넉넉하지도 못하고 삐걱대기만 한다.나이가 들수록 사람에 대한 이해와 넉넉함이 더 늘어나겠지.모든 이들이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고 관련 되어 있듯이 내 삶에 보이지 않는 많은 끈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겠다.세상을 살아갈 이유는 사랑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