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와 함께 걷고 달리고 ㅣ 한울림 장애공감 그림책
김혜온 지음, 전해숙 그림 / 한울림스페셜 / 2024년 9월
평점 :
장애를 다루는 많은 그림책들을 읽어보았는데, 보통 이야기의 화자가 장애인 본인이거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타인인 경우였다. 그런데 <너와 함께 걷고 달리고>는 이야기의 화자가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이 아닌 사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첫 장면부터 보면 자기 운동화를 내려다보는 운동화의 주인의 시선으로 보는 구도 같지만, 사실 이야기 속 '나'는 지호의 운동화이다. 지호가 어딜 가든 함께하며 지호가 무엇을 하든지 함께한다. 누군가가 지호의 행동과 경험을 제한한다면 '나' 역시 그 한계에 가로막히고 말텐데, 참 다행히도 지호는 걷고, 빨리 달리고, 운동장을 누비며 공놀이도 한다.
몇 장면이 나온 뒤에 이어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반복하며 다른 구도에서 보여준다. 지호와 지호가 신은 운동화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전지적 시점에서 같은 장면을 재조명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물론 아주 똑같은 찰나는 아니다. 이야기 속 지호와 지호의 운동화는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몇 초 뒤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더 생동감있게 느껴진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지호와 지호의 운동화에게도 이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지호가 성장하는 만큼 운동화는 작아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하얗고 깨끗한 운동화이지만 더이상 신을 수 없을만큼 작아지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지호의 운동화는 지호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며 후회 없이 지호를 응원하고, 자기 자리를 다음 운동화에게 넘기고 물러난다. 어느새 독자도 운동화의 마음에 동화되어 성장해가는 지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진심으로 지호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 참 신기하게도.
장애, 그리고 장애인에 대해 장애인 스스로 이야기할 때만큼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제 3자(가족이나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할지라도)보다 장애인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운동화를 화자로 세운 것은 영리한 장치였던 것 같다. 또, 누군가에게 죄책감 혹은 부담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지호의 운동화가 다른 운동화들처럼 주인과 함께 걷고 뛰고 놀며 아이답게 보내는 일상, 그리고 성장의 모습을 통해 동정심이 아닌 대견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격려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세계의 또다른 지호를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해주고, 할 수 있다고 기대해주고, 함께 하기를 요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