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보다 커 - 2025 문학나눔 선정도서 날개달린 그림책방 61
엘레나 레비 지음, 줄리아 파스토리노 그림, 이현경 옮김 / 여유당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너보다 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말이다.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친구와 서로 경쟁하듯 내기하고 뽐내는 아이들의 말이기도 하고,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남매도 집에서
"내가 너보다 ~해."
"아니거든! 내가 누나보다 ~하거든?"
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안나와 마르코 역시 나이만큼이나 긴 시간을(자기 인생의 전부를) 가깝게 지내온 가장 친한 친구사이지만 한 명이 뭔가를 더 잘한다고 자랑할 때면 양보가 없다.
처음에는 친구보다 내가 더 크게, 더 크게 변신하기 바쁘고, 그 다음엔 친구보다 내가 더 작게, 더 작게 변신하면서 상대방보다 내가 더 잘한다고 뽐낸다.

그런데, 그 모습에는 다툼이나 질투, 시기가 없다.
상상만 하면 이것으로 "펑!" 저것으로 "퐁!" 변하는 모습은 현실의 냉정한 비교와 저울질과는 다른 차원이어서 상대방의 자존감을 짖밟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좋아, 네가 이겼어." 두 손 들고 항복을 해도 분함이나 억울함이 없다.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는 귀엽고도 창의적인 상상 대결이어서 그런가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금방 돌아서서 간식을 함께 먹고 또 놀러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훈훈하다.

이번에는 다른 내기를 하자며 뛰어나가는 안나와 마르코를 긴장 없이 볼 수 있는 데에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일러스트도 한 몫 한다. 오일파스텔로 쓱 쓱 그린듯 편안한 선에 알록달록한 색감까지. 게다가 아이들이 변신할 때마다 안나의 상징인 삐죽삐죽 단발머리와 마르코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안경테를 가지고 있어서 그걸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동심, 순수한 경쟁과 내기, 상상놀이,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 단짝친구와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해볼 게 많은 재미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키워요 - 똑 부러지고 야무지고 뚝심 있게 자라는 27가지 실천법
장인혜 지음, 뜬금 그림 / 길벗스쿨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진로교육의 측면에서 다양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체험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고, 여러 활동지를 하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등에 대해서 탐색하도록 하는 것은 특히 초등학교 진로교육 단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자신의 욕구, 취향, 관심, 흥미 등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짜놓은 성공하는 인생을 위한 로드맵에서 게임말처럼 움직이느라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도 있을 것이고, SNS나 또래 관계에서의 주류를 따라가기에 급급해서 진짜 내가 선호하는 것을 용기있게 쫒아갈 용기가 없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다양하고 폭넓게 세상의 여러 일들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아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요즘의 세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일지 모를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키워요>는 진로교육을 하면서 항상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나로서는 참 반가운 책이다. 초등교사가 쓴 책이라서 그런가 현실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계시고 요즘 아이들이(더 나아가서 청년들까지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세태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파악하여 책의 방향성을 정하신 부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그냥 읽혀도 좋지만, 교사로서 참고서처럼 생각하고 학생들과의 수업에 적용할 수 있기도 해서 학부모들이나 주변 교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리하여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솔직하게 반응하며, 좀 더 즐겁게 적극적으로 진로를 탐색하고 고민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와 초록색 병 바람어린이책 35
아르투르 게브카 지음, 아가타 두덱 그림, 엄혜숙 옮김 / 천개의바람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빠와 초록색 병>이라는 제목만 보았을 때는 사실 이런 내용일지 짐작하지 못했다. 앞표지를 가득 채운 초록색 병, 그리고 병 실루엣 안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와 고양이 두 마리. 내용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아서 뭔가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책을 받아서 앞표지를 넘기고, 면지를 한 장, 두 장 넘겨서 처음 마주하는 본문이 글로 가득 차 있어서 우선 놀랐고, 보통의 그림책들이 한 펼침 면 안에 그림과 글을 함께 싣는데 반해 글 위주인 면과(물론 그 뒤에 초록색 얼룩과도 같은 그림이 의미를 가지고 더해져있지만) 그림만으로 꽉 찬 면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라 신선했다.

내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서 제목을 읽고도 초록색 병이 술병이라고는 쉽게 연상하지 못했는데, 글을 읽어 나가며 곧 제목에서 언급한 '초록색 병'이 술병을 말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야기에서 술병이 점점 집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크기도 커지고 가정을 불안에 빠뜨리고 가족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시선에서 묘사하고 있는데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의 내용이 판타지는 아닐까 생각했던 게 무색할만큼 현실의 누군가에게는 잔인하리만치 사실 그 자체일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라니.

사실 그림책의 소재로 다루지 못할 주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린이들이 기분 좋고 행복하게, 혹은 재미있게 읽을 주제가 아니다보니 크게 흥행하기를 기대하긴 어려운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판매 부수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런 현실의 여러 이야기들을 어린이책으로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존재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기한 맛 도깨비 식당 8 신기한 맛 도깨비 식당 8
김용세.김병섭 지음, 센개 그림 / 꿈터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깨비 식당 1권을 시작으로 이 세계관에 푹 빠져버려서 '전천당'보다도 '도깨비 식당'을 더 재미있게 찾아 읽는 초등 고학년 딸이 있다. 전천당은 그냥 빌려서 읽어도 되는 책, 하지만 도깨비 식당은 기회가 닿는대로 책을 구입해서 읽고 또 읽으려고 하는 책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우는지 설명이 잘 될 것 같다. 그런 딸 때문에라도 도깨비 식당 신간 소식은 제일 먼저 관심을 갖고 보게 되는데, 이번에 8권이 나왔을 때 좋은 기회로 책을 제공받아 서평을 쓸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역시나, 책이 도착했을 때 딸이 빛의 속도로 책을 가져가서 먼저 읽어보기 시작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이름을 불러도 듣는 둥 마는 중, 책에 집중해 있으니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그만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고, 또 기대하게 만드는 시리즈물로서 세계관을 구축하고 팬층이 두텁게 생긴 것 같아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깨비 식당 8권을 먼저 읽은 딸에게 서평을 써보라고 했는데, 그 중의 일부를 발췌하여 적어본다.

"매 책마다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는 것이 놀랐다. 글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내가 실제로 주인공인것 같아진다. 그리고 뒷이야기가 기대되고 나도 책에 나오는 그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다음 책에는 '거짓말 안하게 되는 피자'가 나오면 좋겠다. 요즘은 거짓말을 잘 안하지만 하고싶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내 친구들 중에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 인기가 많은 만큼 글을 잘 쓰신 것 같고 아이디어도 좋았던 것 같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비법을 전수받아야겠다."

나 역시 도깨비 식당이 시리즈를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소재가 고갈되지 않고, 아이들의 삶 속에서 있을 법한 고민과 갈등으로부터 새로운 식당 메뉴를 떠올리는 작가님들이 존경스럽고, 독자가 책을 읽으며 현재 자신의 고민을 돌아보고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 나와주길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 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잘 쓰여진 재미있는 글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글을 써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에 감동이 밀려온다.

아직까지 도깨비 식당을 접하지 못한 어린이 독자가 있다면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와 함께 걷고 달리고 한울림 장애공감 그림책
김혜온 지음, 전해숙 그림 / 한울림스페셜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애를 다루는 많은 그림책들을 읽어보았는데, 보통 이야기의 화자가 장애인 본인이거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타인인 경우였다. 그런데 <너와 함께 걷고 달리고>는 이야기의 화자가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이 아닌 사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첫 장면부터 보면 자기 운동화를 내려다보는 운동화의 주인의 시선으로 보는 구도 같지만, 사실 이야기 속 '나'는 지호의 운동화이다. 지호가 어딜 가든 함께하며 지호가 무엇을 하든지 함께한다. 누군가가 지호의 행동과 경험을 제한한다면 '나' 역시 그 한계에 가로막히고 말텐데, 참 다행히도 지호는 걷고, 빨리 달리고, 운동장을 누비며 공놀이도 한다. 

몇 장면이 나온 뒤에 이어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반복하며 다른 구도에서 보여준다. 지호와 지호가 신은 운동화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전지적 시점에서 같은 장면을 재조명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물론 아주 똑같은 찰나는 아니다. 이야기 속 지호와 지호의 운동화는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몇 초 뒤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더 생동감있게 느껴진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지호와 지호의 운동화에게도 이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지호가 성장하는 만큼 운동화는 작아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하얗고 깨끗한 운동화이지만 더이상 신을 수 없을만큼 작아지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지호의 운동화는 지호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며 후회 없이 지호를 응원하고, 자기 자리를 다음 운동화에게 넘기고 물러난다. 어느새 독자도 운동화의 마음에 동화되어 성장해가는 지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진심으로 지호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 참 신기하게도.

장애, 그리고 장애인에 대해 장애인 스스로 이야기할 때만큼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제 3자(가족이나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할지라도)보다 장애인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운동화를 화자로 세운 것은 영리한 장치였던 것 같다. 또, 누군가에게 죄책감 혹은 부담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지호의 운동화가 다른 운동화들처럼 주인과 함께 걷고 뛰고 놀며 아이답게 보내는 일상, 그리고 성장의 모습을 통해 동정심이 아닌 대견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격려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세계의 또다른 지호를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해주고, 할 수 있다고 기대해주고, 함께 하기를 요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