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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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하면 멈출 수 없는 한미 FTA의 폭주 (p221)
 

 이명박 정부의 '시장 만능의 정책'은 한미 FTA의 이상과 똑같습니다.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같은 것이 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미 FTA는 다른 FTA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네 가지 독소조항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 번째,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두 번째, 레칫(rachet) 조항, 세 번째, 미래의 최혜국 정책 (future MFN), 네 번째, 투자자-국가 제소권(ISD)입니다.

 먼저 네거티브 리스트는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한 조항입니다. 미국만 가지고 있는 미국식 FTA의 특징인데요.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는 내가 개방하고자 하는 분야를 고르는 것이고, 네거티브 리스트는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쓰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네거티브 리스트가 개방의 폭이 훨씬 넓겠죠. 게다가 이 조항의 특징은 새로 생기는 서비스 분야는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거예요. 미래에 생길 서비스는 알 수가 없잖아요. 우리가 만약 30년 전에 이 리스트를 작성했다면 절대로 인터넷 서비스를 넣을 수 없었겠죠? 모르니까. 그런데 새로운 서비스 분야는 압도적으로 미국에서 많이 생깁니다. 금융서비스든 IT서비스든. 그럼 그 분야에 대해서는 한국은 무조건 개방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첨단 서비스 시장은 당연히 미국 기업에게 넘어가겠죠. 미국이 개발한 서비스니까 독점 아니겠어요?

 네거티브 리스트에는 '현재유보'와 '미래유보'라는 리스트가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예로 들겠습니다. 스크린쿼터 폐지도 한미 FTA 4대 선결조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김현종 본부장이 미국에 가서 FTA 하자고 하도 애걸을 하니까, 미국이 스크린쿼터부터 줄이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이 스크린쿼터 축소는 9년 동안 미국이 요구했지만 한국의 문화부에서 받아주지 않은 거예요. 대통령이 중립을 지키면 재경부에서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문화부 장관이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시해서 146일을 73일로 줄였습니다. 이제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이 반 토막이 난 거죠. 그러니까 영화인들이 이 스크린쿼터를 '미래유보'에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현재유보에 들어가 있습니다. 한미 FTA 협정문을 보면 '스크린쿼터 73일'이라고 써 있죠. 73일로 줄여봤더니 한국 영화가 형편없이 망했다면, 다시 146일로, 200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미래유보 리스트입니다. 하지만 현재유보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73일 이상으로 늘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바로 래칫이라는 조항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래칫은 톱니바퀴의 역진을 막는 장치를 말합니다. 톱니바퀴는 두 개가 맞물려 돌아가야 정상이죠? 그런데 이 톱니바퀴들을 자세히 보면, 딸깍딸깍 걸리는 작은 장치가 달려 있어요. 톱니바퀴가 제 방향으로 돌아갈 땐 넘어가지만 거꾸로 돌아가려고 하면 꽉 물고 못 돌아가게 하는 장치죠. 그게 래칫입니다. 낚싯바늘을 보면 뾰족한 바늘 아래 다시 뾰족한 미늘이 달려 있어서 한번 물린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하는데요. 이게 바로 래칫입니다.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자치라는 말이죠. 이명박 정부가 우리 영화 산업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런 보호장치는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스크린쿼터를 50일로 줄인다고 생각해봅시다. 현재유보에 '스크린쿼터 73일'이 들어가 있으니 50일로 줄였다가 73일로 늘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래칫이 붙기 때문에 이제 50일이 상한선이 됩니다. 심지어 다음번에 진보신당이 정권을 잡는다해도 51일로도 늘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해서 20일로 줄인다면, 20일이 상한선이 되겠죠. 앞으로 개방하고 시장에 맡기는 건 가능하지만, 거꾸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이 조항은 모든 서비스 시장에 적용됩니다.

 미래 최혜국 정책(future MFN-most favored nation)이란, 일본에 해주만큼은 미국에 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한미 FTA 협정에는 우리가 다른 나라에 준 혜택은 전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미래 최혜국 정책을 발동하면 예를 들어 우리가 미래에 몽골과 FTA를 맺게 된다면 몽골에 개방하는 만큼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개방해야 하는 겁니다. 한미 FTA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수 밖에 없도록 설게되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더 좋은 조건으로 개방하면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적용되는 것이죠. 기가 막히죠. 이 조항은 우리가 세계 최초입니다. 한미 FTA에만 들어 있는 조항이에요.

 

그러나 이 세 가지 조항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네 번째 조항인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입니다. 이건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라는 조항입니다. 제가 아까 건강보험 이야기를 했죠. 한번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국가 건강보험을 약화시키면 다시는 과거로 못돌아가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금 AIG가 우리나라에서 보험을 팔고 있는데요, 암과 심근경색 등 세 가지 질병을 보장해주고 월 2만 5천원, 뭐 이런거 팔고 있잖아요? 엄청나게 비싼 겁니다. 1년에 30만원 아니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국가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질병의 60퍼센트를 보장해주잖아요. 그 나머지 40퍼센트의 시장을 놀기고 민간 보험사들이 들어와있는 겁니다. 하지만 굉장히 까다로워요. 보험금을 받는 건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 건강보험은 100원 내면 110원 돌려받게 돼 있어요. 그런데 AIG는 100원 내면 60원 이하를 돌려받게 됩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건강보험의 보장을 80~90 퍼센트까지 올리는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놨었죠. 심지어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후보도 암만큼은 보장해주겠다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한미 FTA가 체결되면 불가능합니다. 무상의료해주면 AIG가 망할 거 아녜요? 암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면 AIG 가입자들이 보험을 해지하겠죠. 이럴 때 AIG가 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ISD입니다.

 AIG는 한국의 건강보험공단을 제소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기업의 이익을 '상당히' 침해하면 쓸 수 있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행정 소송이라는 게 있잖아요. 누구나 국가에 대해 소송할 수 있는데, 미국 기업의 행정 소송을 한국에서 하면 한국 정부에 유리하게 판결이 날 수 있으니 제3의 민간기구에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3의 민간기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은행(IBRD)산하에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가 있습니다만, 규칙만 정해주는 곳이에요. 실제로는 이렇게 합니다. AIG와 건강보험공단이 각각 한 명의 변호사를 고용합니다. 둘이 합의해서 또 한 명의 변호사를 고용합니다. 이렇게 세 명의 변호사가 모이면 트리뷰널(tribunal)이라는 재판부를 형성하게 되고, 여기서 결정을 내리면 단심이에요. 이 결정을 정부는 무조건 따르도록 규제하는 조항인 것입니다. AIG가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을 때 이 재판부에서 AIG의 손을 들어주면 정부는 AIG가 손해 본 만큼 현금으로 물어줘야 해요. 지면 몇 천억 원의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죠. 큰 것은 33조 원도 있었어요. 33조라니가 너무 엄청난 돈이라 감이 안 오시죠? 이렇게 물어주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런ㄷ 이 재판부는 여러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재판을 합니다. 여기서는 판례도 적용되지 않아요. 그냥 세 명이 결정하면 끝입니다. 이 사람들이 재판하는 원칙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이 '최소 기준'이라는 원칙입니다. 아주 애매한 기준이에요. 국제적인 관례에 비추어서 정부의 너무 과도한 정책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죠. 지금 전 세계의 통상 전문 변호사는 150명 정도 됩니다. 대부분 미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서울대나 고려대나 로스쿨 세우면 통상 전문 변호사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 사람들은 고용 안 됩니다. 걸린 돈이 얼만데, 영어도 잘 못하는 한국인을 고용하겠어요? 민간보험과 계약지정제가 당연한 거예요. 돈 있는 사람이 비싼 보험 들어서 좋은 서비스를 누리고 가난한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게 이 사람들에게는 당연해요. 그런데 한국 정부가 갑자기 암 완전보장 정책을 내놓아서 AIG를 망하게 한다면, 이 재판부에서는 집니다. 우리는 이런 도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공무원이라면 이런 정책을 쓰겠어요? 제소당할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 과장이 '암 100퍼센트 보장'과 같은 정책을 낼 수 있겠어요? 쫄아서 못해요.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라고 하는데, 스스포 쫄아붙어서 이러한 규제를 강화하거나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건강보험을 알아서 없앱니다. 제가 청와대 비서관일 때, 산자부 직원들에게 일만 시켰다 하면 들고나오는 게 바로 WTO(세게무역기구) 협정이었습니다. 한미 FTA보다 훨씬 약한 건데도 WTO에 걸리기 때문에 안 된다고 공무원들이 먼저 나서서 주장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칠링 이펙트예요.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예요. 학교 급식도 WTO에 걸린다고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잖아요. 사실은 안걸려요. 스스로 제약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앞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은 불가능해집니다. 한다고 하더라고 걸립니다. 시장으로 시장으로, 자유화로 자유화로, 개방으로 개방으로 나가게 되지. 거꾸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아까 설명 드린 대로 양극화는 점점 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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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인터뷰 특강 시리즈 1
홍세화,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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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데 한국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의 항체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 땅에서 23년을 보낸 뒤 돌아와서 물신이 이 사회를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가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따위의 광고가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상황, 즉 사람이 부동산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이 사람을 평가할 만큼 인간의 가치가 소유물에 의해 평가되고 압도되는 상황에서, 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인간성의 항체를 갖추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동에 의한 인간 소외뿐만 아니라 물신 지배에 의한 인간 소외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철학이 필요합니다...

 

...진보라는 것은 결국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운동적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진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바뀌는 만큼 담보된다고 봅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바뀌는 만큼 진보하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한국사회는 구성원들의 의식의 반영입니다. 탄핵 사태를 비롯하여 지역주의 현상, 고문을 교사한 혐의가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 등 모든 정치 사회 현상들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반영된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 사회 현상의 저변에 흐르는 것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입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바뀌는 그만큼 사회는 진보하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의식을 갖고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 그런 의식을 갖게 됐을까요. 어느 시점에 그때까지 갖고 있었던 의식이 뒤집히게 되었을 겁니다. 어떤 특별한 기회가 있어서, 전일적 국가주의 교유과 대중매체의 의해 형성된 의식에 대해 의문을 갖고 그것을 반전시킨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진보의 화두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의식화가 아니라 '탈의식화'입니다. 수구 세력이 장악해온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로 인해 형성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에 대한 탈의식화 과정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생존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이 거기 있습니다. 자유인들, 생존의 덫에 걸리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소외 노동이 아닌 즐거이 할 수 있는 노동을 통하여 생존이 담보되는 자유인들의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저는 궁극적으로 진보의 몫이라고 봅니다. 그 출발점으로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민족적 정체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계급적 정체성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탈의식화 문제를 제기해보는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연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볼것인가입니다. 진보의 문제를 떠나서, 지금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지나치게 경제동물화된 세계관에 빠져 인간의 길을 놓치고 있는, 차도 때문에 인도가 망가지는, 사람의 길이 차도에 밀려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합니다. 한 번밖에 없는 삶을 어떻게 꾸려 갈는지는 결국 개개인의 철학과 가치관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문화적 소양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과 성숙, 남이 소유한 것과 내가 소유한 것을 견주기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를 지향하는 끊임없는 긴장이 요구된다는 생각은, 제가 자신에게도 항상 되새기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여기 계신 분들께 말슴드렸습니다. 자기 존재에 미학을 부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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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인터뷰 특강 시리즈 4
진중권.정재승.정태인.하종강.아노아르 후세인.정희진.박노자.고미숙.서해성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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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이마 바로 뒤의 부분을 '전두엽(frontal lobe)'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에서도 더 앞에 있는 부분이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입니다...

 

... 전전두엽이 사람의 인격 구조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슈퍼에고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뇌 영역이 바로 이 영역입니다. 이 영역이 하는 일은 내가 받은 모든 신호들, 곧 보고, 냄새 맡고, 들은 것들을 종합해서 어떤 상황인지 추론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하고 내가 행동을 취했을 때 벌어지는 상황을 예측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곳입니다...

 

 

하종강>

... 이런 것들을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눠 갖는 것이 사회 전체에 또 경제 전체에 얼마나 유익한가? <한겨레>에 정남구 기자가 '한국의 경제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라는 주제로 칼럼을 썼는데,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기업이 임금을 낮추는 방식, 곧 임금 조정으로 쉽게 돈을 버는 데 종독됐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정부 시절부터 우리 사회에 항상 이라헌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각이 존재해왔습니다. 교수들과 경제학자들이 대학에서 해직당하면서 감옥에 가면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한 말이 20여 년 뒤에 정확하게 그대로 됐어요. 치욕스런 외환 위기를 맞은 거죠.

 기업이 노동자의 임금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면, 그 나락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요. 기업의 단기적인 사익만 추구될 뿐이지, 장기적으로 경제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부가가치 유발계수라는 통계가 있는데, 이 수치를 분석해보면 한국은 이미 소비가 투자나 수출보다 점점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제체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기업이 얼마만큼 수출하느냐보다 노동자가 얼마만큼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느냐가 경제적으로 더 유익한 시대가 됐다는 거죠. 그래서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는 유익함이 기업의 인간비 부담을 가중시켜서 경쟁력을 낮추는 해로움보다 더 크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인정하는 시각으로도 그렇다는 겁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학자가 있습니다. 그 수학자가 199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습니다. 수학자가 왜 경제학상을 받았을까요? 이 수학자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전체에 얼마나 유익하지를 밝혀낸 원리를, 그 뒤에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속에서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생존해 있는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가 <뷰티풀 마인드>예요. 마지막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고 시상식이 끝나면서 나가는 장면에서 자막이 나옵니다. "내쉬의 이론은 계속해서 국제 무역분쟁, 노사관계, 진화생물학 등을 해결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Nash's theories have influenced global trade negotiations, national labor relations, and even breakthroughs in evolutionary biology)." 강대국과 약소국, 자본가와 노동자, 강한 생물과 약한 생물들이 복잡한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 내에서 전체에 가장 유익한 선택을 수학적으로 찾아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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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88만원 세대'를 넘어 한국사회의 희망 찾기
우석훈.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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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FTA를 하게 되면 4인 가족 기준 연봉 6000만 미만 소득자는 이민가는게 좋을거"라고 권고하셨잔하요. 이민이라는게 쉽지 않을 거라는 전제도 하셨구요.

 

  이민이 쉽진 않죠. 답도 아니구요. 2~3년 후에 버블 공황 같은 게 온다는계산에서 그런 얘기를 한 거죠. 차라리 지금은 못살겠다고 하면 이민이라도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IMF 같은 버블 공황이 다시 오면 원화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단 말이죠. 그러면 가고 싶어도 못가는 거잖아요.

 

  "멕시코보다 더 심각하고 곤란한 잠김 현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 멕시코의 대학과 학자들이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요. 우리에게 그런 학자가 없어 보이는 면도 있지만, 학자나 지식인에 대한 경멸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에겐 아직 학자라고 하면 깜박 죽는 것 같아요. 더 당해봐야 합니다. 유럽 같으면 '교수'라고 해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굉장히 좋은 책을 썼거나 뭘 했다고 하면 그게 쌓여서 학자 대접을 받는 거지, 파리 몇 대학 교수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녜요. 우리나라는 싸잡아서 학자 대접을 받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데요. 교수 사회에 대한 존중은 아직도 높은 것 같아요. 일본도 그냥 동경대 아닌 다른 교수들은 직업으로밖에 안 보거든요. "지가 뭘 안다고 떠들어?"하는 식으로 거긴 워낙 오타쿠라는 게 강해서 교수가 일반인들보다 잘 몰라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른바 전문가나 교수의 권위가 높죠...

 

 

 

...  "예술은 질서정연해지고, 경제는 혼란스러워졌다"고 하셨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뭘까요? 예술이 먼저 치고 나간 다음에, 시인들이 시대의 아픔을 먼저 느끼고 글을 내놓으면 학자들이 따라가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보면 사회가 어려워질 때 인류역사가 그랬던 것 같은데요. 글씨가 있기 전에 사람들이 그림부터 그렸잖아요. 글을 쓰기 전에 노래부터 불렀던 것이 사람이잖아요. 중남미나 유럽이나 미국을 보더라도 어떤 경우라도 예술은 직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하거든요. 이론은 데이터가 있거나 현상이 있어야 분석하는 거 아닙니까?

 예술가들이 먼저 말을 만들어내고, 소설에서 무슨 인간형 하다보면 학자들은 몇 년 뒤에야 움직이잖아요. 정책은 그것보다 더 뒤고, 늘 엇박이 나는데, 우리나라는 정책이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거구요. 예술가들은 예술 하면서 괴로운지 안 괴로운지 얘기 안 하거든요.

 그림도 굉장히 민감한 분야인데, 포트폴리오나 이런 게 나오면서 그림에 돈이 들어오잖아요. 화가들은 입이 찢어졌잖아요. 너무 행복하잖아요. 사람들은 죽겠다고 하는데, 그런 게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있구요. 민중 속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게 시였거든요. 그런데 시는 죽어버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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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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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와 한여자가 있었고, 둘은 사랑에 빠져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 사랑에 도피, 그리고 아들딸 둘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네... 아마 이런 스토리의 드라마가 있다면 이 드라마는 10년 전 유행지난 이야기라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빨리 급격하게 변한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결혼을 하는 남녀 모두가 각자의 직업과 돈 등의 이해관계를 따져 결혼하고 있으니까. 

정확하게 말은 못하겠으나, 어쨌든 내 감각대로라면 예전보다는 결혼관계에서 이해득실의 따짐이 더욱 심화된 것 같다. 

예전에는 부모님들이 발벗고 나서 좋은 혼처감을 알아보았다면, 지금은 결혼할 사람들 각자가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따져보고 저울질해보는 세상.  

사실은 좀 삭막하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에 대해 정이현은 "요즘엔 다 이래"라며 별거아닌듯이 요지경 세상을 풀어놓는다.  

처녀성을 부잣집 아들에게 넘겨 인생을 배팅하는 22살 소녀, 20대와 바람피는 아버지를 혼내기위해 유괴를 꾸미는 10대소녀, 다이어트식품에 빠져있는 여성, 동성을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조금의 냉소와 조금의 유머러스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나가야만 한다는 의지로 그려낸다.

   

 

아마도 정이현은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좀더 빠른 듯 싶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왔으나, 책의 내용은 6년 후인 지금에 와서도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이며 오히려 좀더 이러한 경향이 심화된 듯하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도 느꼈지만 정이현 작가는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의 감성들을 깔끔하고 담백하게 그려내는 작가이다.  

예전에 나는 이작가가 칙릿소설을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사회의 비판의지를 충분히 담고 있으며, 이 시대 2000년대의 이야기를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만의 색채로 그려낸 중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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