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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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하면 멈출 수 없는 한미 FTA의 폭주 (p221)
 

 이명박 정부의 '시장 만능의 정책'은 한미 FTA의 이상과 똑같습니다.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같은 것이 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미 FTA는 다른 FTA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네 가지 독소조항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 번째,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두 번째, 레칫(rachet) 조항, 세 번째, 미래의 최혜국 정책 (future MFN), 네 번째, 투자자-국가 제소권(ISD)입니다.

 먼저 네거티브 리스트는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한 조항입니다. 미국만 가지고 있는 미국식 FTA의 특징인데요.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는 내가 개방하고자 하는 분야를 고르는 것이고, 네거티브 리스트는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쓰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네거티브 리스트가 개방의 폭이 훨씬 넓겠죠. 게다가 이 조항의 특징은 새로 생기는 서비스 분야는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거예요. 미래에 생길 서비스는 알 수가 없잖아요. 우리가 만약 30년 전에 이 리스트를 작성했다면 절대로 인터넷 서비스를 넣을 수 없었겠죠? 모르니까. 그런데 새로운 서비스 분야는 압도적으로 미국에서 많이 생깁니다. 금융서비스든 IT서비스든. 그럼 그 분야에 대해서는 한국은 무조건 개방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첨단 서비스 시장은 당연히 미국 기업에게 넘어가겠죠. 미국이 개발한 서비스니까 독점 아니겠어요?

 네거티브 리스트에는 '현재유보'와 '미래유보'라는 리스트가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예로 들겠습니다. 스크린쿼터 폐지도 한미 FTA 4대 선결조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김현종 본부장이 미국에 가서 FTA 하자고 하도 애걸을 하니까, 미국이 스크린쿼터부터 줄이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이 스크린쿼터 축소는 9년 동안 미국이 요구했지만 한국의 문화부에서 받아주지 않은 거예요. 대통령이 중립을 지키면 재경부에서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문화부 장관이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시해서 146일을 73일로 줄였습니다. 이제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이 반 토막이 난 거죠. 그러니까 영화인들이 이 스크린쿼터를 '미래유보'에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현재유보에 들어가 있습니다. 한미 FTA 협정문을 보면 '스크린쿼터 73일'이라고 써 있죠. 73일로 줄여봤더니 한국 영화가 형편없이 망했다면, 다시 146일로, 200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미래유보 리스트입니다. 하지만 현재유보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73일 이상으로 늘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바로 래칫이라는 조항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래칫은 톱니바퀴의 역진을 막는 장치를 말합니다. 톱니바퀴는 두 개가 맞물려 돌아가야 정상이죠? 그런데 이 톱니바퀴들을 자세히 보면, 딸깍딸깍 걸리는 작은 장치가 달려 있어요. 톱니바퀴가 제 방향으로 돌아갈 땐 넘어가지만 거꾸로 돌아가려고 하면 꽉 물고 못 돌아가게 하는 장치죠. 그게 래칫입니다. 낚싯바늘을 보면 뾰족한 바늘 아래 다시 뾰족한 미늘이 달려 있어서 한번 물린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하는데요. 이게 바로 래칫입니다.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자치라는 말이죠. 이명박 정부가 우리 영화 산업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런 보호장치는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스크린쿼터를 50일로 줄인다고 생각해봅시다. 현재유보에 '스크린쿼터 73일'이 들어가 있으니 50일로 줄였다가 73일로 늘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래칫이 붙기 때문에 이제 50일이 상한선이 됩니다. 심지어 다음번에 진보신당이 정권을 잡는다해도 51일로도 늘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해서 20일로 줄인다면, 20일이 상한선이 되겠죠. 앞으로 개방하고 시장에 맡기는 건 가능하지만, 거꾸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이 조항은 모든 서비스 시장에 적용됩니다.

 미래 최혜국 정책(future MFN-most favored nation)이란, 일본에 해주만큼은 미국에 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한미 FTA 협정에는 우리가 다른 나라에 준 혜택은 전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미래 최혜국 정책을 발동하면 예를 들어 우리가 미래에 몽골과 FTA를 맺게 된다면 몽골에 개방하는 만큼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개방해야 하는 겁니다. 한미 FTA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수 밖에 없도록 설게되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더 좋은 조건으로 개방하면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적용되는 것이죠. 기가 막히죠. 이 조항은 우리가 세계 최초입니다. 한미 FTA에만 들어 있는 조항이에요.

 

그러나 이 세 가지 조항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네 번째 조항인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입니다. 이건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라는 조항입니다. 제가 아까 건강보험 이야기를 했죠. 한번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국가 건강보험을 약화시키면 다시는 과거로 못돌아가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금 AIG가 우리나라에서 보험을 팔고 있는데요, 암과 심근경색 등 세 가지 질병을 보장해주고 월 2만 5천원, 뭐 이런거 팔고 있잖아요? 엄청나게 비싼 겁니다. 1년에 30만원 아니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국가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질병의 60퍼센트를 보장해주잖아요. 그 나머지 40퍼센트의 시장을 놀기고 민간 보험사들이 들어와있는 겁니다. 하지만 굉장히 까다로워요. 보험금을 받는 건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 건강보험은 100원 내면 110원 돌려받게 돼 있어요. 그런데 AIG는 100원 내면 60원 이하를 돌려받게 됩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건강보험의 보장을 80~90 퍼센트까지 올리는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놨었죠. 심지어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후보도 암만큼은 보장해주겠다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한미 FTA가 체결되면 불가능합니다. 무상의료해주면 AIG가 망할 거 아녜요? 암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면 AIG 가입자들이 보험을 해지하겠죠. 이럴 때 AIG가 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ISD입니다.

 AIG는 한국의 건강보험공단을 제소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기업의 이익을 '상당히' 침해하면 쓸 수 있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행정 소송이라는 게 있잖아요. 누구나 국가에 대해 소송할 수 있는데, 미국 기업의 행정 소송을 한국에서 하면 한국 정부에 유리하게 판결이 날 수 있으니 제3의 민간기구에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3의 민간기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은행(IBRD)산하에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가 있습니다만, 규칙만 정해주는 곳이에요. 실제로는 이렇게 합니다. AIG와 건강보험공단이 각각 한 명의 변호사를 고용합니다. 둘이 합의해서 또 한 명의 변호사를 고용합니다. 이렇게 세 명의 변호사가 모이면 트리뷰널(tribunal)이라는 재판부를 형성하게 되고, 여기서 결정을 내리면 단심이에요. 이 결정을 정부는 무조건 따르도록 규제하는 조항인 것입니다. AIG가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을 때 이 재판부에서 AIG의 손을 들어주면 정부는 AIG가 손해 본 만큼 현금으로 물어줘야 해요. 지면 몇 천억 원의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죠. 큰 것은 33조 원도 있었어요. 33조라니가 너무 엄청난 돈이라 감이 안 오시죠? 이렇게 물어주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런ㄷ 이 재판부는 여러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재판을 합니다. 여기서는 판례도 적용되지 않아요. 그냥 세 명이 결정하면 끝입니다. 이 사람들이 재판하는 원칙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이 '최소 기준'이라는 원칙입니다. 아주 애매한 기준이에요. 국제적인 관례에 비추어서 정부의 너무 과도한 정책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죠. 지금 전 세계의 통상 전문 변호사는 150명 정도 됩니다. 대부분 미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서울대나 고려대나 로스쿨 세우면 통상 전문 변호사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 사람들은 고용 안 됩니다. 걸린 돈이 얼만데, 영어도 잘 못하는 한국인을 고용하겠어요? 민간보험과 계약지정제가 당연한 거예요. 돈 있는 사람이 비싼 보험 들어서 좋은 서비스를 누리고 가난한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게 이 사람들에게는 당연해요. 그런데 한국 정부가 갑자기 암 완전보장 정책을 내놓아서 AIG를 망하게 한다면, 이 재판부에서는 집니다. 우리는 이런 도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공무원이라면 이런 정책을 쓰겠어요? 제소당할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 과장이 '암 100퍼센트 보장'과 같은 정책을 낼 수 있겠어요? 쫄아서 못해요.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라고 하는데, 스스포 쫄아붙어서 이러한 규제를 강화하거나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건강보험을 알아서 없앱니다. 제가 청와대 비서관일 때, 산자부 직원들에게 일만 시켰다 하면 들고나오는 게 바로 WTO(세게무역기구) 협정이었습니다. 한미 FTA보다 훨씬 약한 건데도 WTO에 걸리기 때문에 안 된다고 공무원들이 먼저 나서서 주장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칠링 이펙트예요.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예요. 학교 급식도 WTO에 걸린다고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잖아요. 사실은 안걸려요. 스스로 제약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앞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은 불가능해집니다. 한다고 하더라고 걸립니다. 시장으로 시장으로, 자유화로 자유화로, 개방으로 개방으로 나가게 되지. 거꾸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아까 설명 드린 대로 양극화는 점점 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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