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A Week at The Airport: A Heathrow Diary)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 2010년 01월 04일, 214쪽, 10,800원

   알랭 드 보통은 2009년, 히드로 공항 터미널 5의 소유주로부터 공항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공항의 첫 '상주작가'가 되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라본 만남과 이별, 상상력과 사색이 교차하는 히드로 공항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이게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으나 남들이 좋다고 다들 할 땐, 안 한다. 보통이 좋다고 한창 책이 나오고 읽을 땐, 안 읽었다. 지금까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읽어볼 때가 된 것 같다.

 

   아직 읽진 않았지만,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보니 〈터미널(The Terminal)〉(2004,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ㆍ 캐서린 제타 존스 주연)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에서 미국에 온 빅터. 불행히도 그가 뉴욕 JFK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자기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국가가 잠시 없어진 상황. 입국은 거부당하고 돌아갈 수도 없는 빅터는 공항에 눌러앉는다. 공항에 머물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그려진다. 히드로 공항이 나오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2003)도 생각난다.

 

   지금까지 내가 가 본 공항은 인천, 김포, 일본 후쿠오카, 도쿄 하네다, 홍콩, 베트남 하노이, 캄보디아 시엠립이다. 환승을 위해 잠시 내렸던 시골 터미널 분위기의 라오스 루앙푸르방 공항도 있다. 기억에 남는 공항은 홍콩과 시엠립, 하노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이국적인 느낌이 덜하다. 인천이나 김포는 우리나라서 더욱 그렇고, 일본의 후쿠오카나 하네다(새로 지은 청사 이전의 작은 청사 시절)도 낯섦보다 비슷함이 먼저 다가온다. 홍콩 공항은 처음에 하노이에 갈 때 갈아타느라 5시간을 기다리며 보낸 곳이라 그다음에 갔을 때 인천 공항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시엠립 공항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맑은 하늘이 기억에 남는다. 하노이 공항은 좀 지저분한 게 기억에 남는다. 입국 심사하던 '인민군 복장'의 아저씨도 생각난다. 베트남이 전반적으로 아직 좀 지저분하다. 공항 터미널의 유리창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불투명한 유리창처럼 보인다.

 

 

  >> 홍콩 국제공항 여객터미널 모습. (2011. 08. 25)

 

   5시간 동안 넓고 큰 공항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혼자 떠난 여행이라 터미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어슬렁 거렸다. 홍콩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환승 시간이 길지 않아서 나가기도 애매했다. 국제적인 도시라서 그런지 정말 다양한 인종들이 다 있었다. 5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다리가 아파 더이상 어슬렁 거리기도 힘들어졌을 때,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아내와 함께 두 번째로 갔을 땐, 가이드처럼 안내해줬다. 인천공항은 갈 땐, 면세점에서 산 거 받고 하느라 좀 정신없이 비행기에 앉게 된다. 올 땐, 얼른 집으로 갈 마음에 역시 정신없이 공항버스로 향한다.  

 

 

  >> 활주로에서 바라본 시엠립 국제공항 청사 모습. (2011. 07. 29)

 

   비가 온 직후에 햇빛이 내리쬐서 그런지 하늘이 억수로 깨끗했다. 내 인생에 가장 뜨거운 햇빛을 맞은 것 같다. 트랩에 내려서는 순간 뜨거운 공기와 따가운 햇살이 주황색 청사 지붕과 함께 뇌리에 박혔다. 같이 타고 온 사람들 중에 가장 늦게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직원이 어디 딴 데로 가는지 뒤에서 계속 감시하는 듯했다. 인천공항이나 홍콩공항에 비하면 말도 못하게 작은 공항인데 전통 양식의 청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인천이나 홍콩은 그냥 현대적이지 한국이나 홍콩다운 모습은 아니라서 좀 아쉽기도 하다.

 

 

  >>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청사 모습. (2011. 09. 02)

 

   베트남의 하노이는 호치민 묘와 그 주변만 작살나게 깨끗하다. 하노이 전체가 정신없고 지저분한 편이다. 경적을 울리라고 달고 다닌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준다. 지금까지 평생 들었던 경적 소리를 하노이에선 10분이면 다 들을 수 있다. 일본과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옆 시장은 그야말로 멋지다. 위에도 말했지만, 공항은 관문이니 얼굴이니 하면서 나름 깨끗하게 하려고 하던데, 여긴 아니다.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아직 읽지도 않고 공항 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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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9월 2일, 하노이에서 홍콩으로 가는 중 창 밖 풍경, 구름 위는 언제나 맑다.

 

   요즘은 그동안 책을 만든다고 못 읽었던 책들을 읽고 있다. 능력 부족으로 힘에 부치면서도 먹고살자고 버둥거리다 보니 빈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지금은 방전돼버린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셈이다. 원고를 보고 책을 만들면서도 책들을 읽긴 읽었다. 한 권을 너무 열심히 읽는 게 문제다. 일로 책을 만나니 평범한 한 명의 독자로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건 이런저런 이유를 달고, 남의 잘못은 잘 보인다고 직업병이 생긴 것이다. 책 만들기를 시작하기 전 몇 달 동안 열심히 책만 읽었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기에 일단 열심히 읽었었다. 그 힘으로 억지로 겨우겨우 6년 넘게 버틴 것 같다.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더 이어질진 모르겠으나, 부지런히 충전해둬야 또 몇 년을 버틸 것이다.

 

   남들 쉴 때,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 게 직장 생활이라고 그동안 원하던 여행을 못했는데, 백수가 되니 긴 여행도 가능했다. 휴가가 끝나면 다시 출근해야 하지 않아서 당장은 좋다. 빵빵거리는 오토바이 물결의 하노이와 사라진 왕국의 영화를 돌아볼 수 있는 앙코르와트에서 보낸 8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리고 10월 아직 여름인 홍콩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여행자로 일주일을 헤매고 다녔다. 아내와 함께한 홍콩은 '도시'라는 곳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서울이 낯설어졌다.

   하롱베이에서 만난 스위스 아줌마가 부러웠다. 이 아줌마는 석 달 동안 동남아를 여행한다고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석 달을 여행하는 스위스 아줌마와 "원 딸라"를 외치며 톤레삽 호수의 물을 그냥 퍼먹는 캄보디아 아이들

 

   이륙하고 착륙하는 순간의 떨림이 시속 900킬로미터의 속도로 구름 위를 순항하는 것보다 좋다.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하면 기장의 "테이크오프"라는 말과 함께 굉음을 내며 기체가 요동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짧은 요동이 끝남과 동시에 중력을 거스르기 시작한다. 몸도 정말 붕뜨게 하면서 고도를 높인다. 떠남의 순간이다. 여행의 시작이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기장의 "랜딩"이라는 말과 함께 창 밖의 지상과 밀접해진다. 활주로를 향해 땅으로 돌진한다. 랜딩기어가 동체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땅에 닫는 순간의 작은 충격이 안도감을 준다.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기도 하고 일상과 내 집이 좋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 - 앙코르 유적을 안내하는 가장 쉽고 친절한 여행서
 정숙영 글ㆍ사진, 그리고책, 2011년 09월 07일, 280쪽, 13,000원

 >> 이 책이 조금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3일 동안 앙코르와트를 헤매고 돌아와 보니 서점 신간 코너에 떡 하니 놓여 있네 ㅠㅠ...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이라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 앙코르와트 유적들은 인류에게 남겨진 엄청난 유산인데 우리나라에서 패키지 관광 오신 분들은 인증샷 찍고 슬쩍 한번 둘러보고 가버리는 게 좀 안타깝긴 했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 2011년 12월 10일, 12,000원

  >> 새로 나온 이것 말고 이레 출판사에서 나온 걸, 비행기 안에서 오가는 동안 차분하게 읽겠다고 가져 갔으나, 창 밖 구경하며 사진 찍으랴 밥 먹으랴 바뻐서 펴보지도 못했다. 다음엔 꼭 그래보리라.

 


   

 프렌즈 베트남ㆍ앙코르와트
 중앙books 편집부 엮음, 중앙books, 2011년 3월, 16,000원 

  >> 패키지 여행이더라도 처음 가는 곳이면 이런 여행 안내서를 한 번 정도는 봐주는 게 그곳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아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클로즈업 홍콩
 김형일 외 지음, 에디터, 2011년 7월, 17,000원
 >> 홍콩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행객이 한국인인줄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 책을 들고 있는지 보면 된다고 할 만큼 많이 보는 것 같다. 홍콩에 처음 간다면 한 번 쯤 봐두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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