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쁜’ 아이
“반사회적 이상성격자, 정신병자, 살인마.” 이것이 어린 시절 저자 존 엘더 로비슨의 외모와 표정을 보고 사람들이 내리는 일반적인 진단이었다. 로비슨은 고기능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을 지닌 채 태어났다. 부모님을 비롯해 전문가들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당연히 로비슨 자신도 몰랐다. 그의 나이 40살이 될 때까지. 이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의사소통 능력과 사교술 결핍이라는 아스퍼거증후군 특유의 결함을 드러냈다. 친구를 사귈 수 없었고,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또 상대의 입장이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머릿속에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불쑥 내뱉어버렸다. 공감(감정이입) 능력이 떨어져 상대의 감정이나 정서를 못 읽었다.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싱긋이 웃는 ‘부적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상한 행동과 태도 때문에 그에게는 ‘나쁜’ 아이, 사회 부적응자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나는 로봇처럼 뻣뻣하게 기계적으로 걸었다. 동작들은 어색했고, 표정은 굳어 있었으며, 좀처럼 웃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전혀 대답하지 않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 모두가 아스퍼거증후군으로 인한 증상이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로비슨 스스로도 몰랐기에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면 수치스러워하며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세상으로부터 더욱 멀어졌다. 40년 뒤 자신이 아스퍼거인이란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로비슨은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살아야만 했다.
2. 극한의 삶
가족 문제도 심각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빠져 로비슨과 동생을 학대했고, 엄마는 정신분열증에 걸려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렸다. 세상과의 불화에다 가족까지 파탄 난 로비슨의 삶은 “인간성의 익스트림스포츠 판”이라는 한 서평의 문구대로 극한 상태 그 자체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로비슨은 기계와 전자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나름의 인생을 꾸려나갔다. 아스퍼거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특정 분야에 대한 천재성’ 덕분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어느 정도 ‘보통’ 사람에 가까워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분명했고 짐은 무거웠다. “평생토록 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인 듯이 느꼈다. 언제나 사기꾼 같다고 느끼거나, 더 심하게는 정체가 발각되기를 기다리는 반사회적 이상성격자 같다고 느꼈다.”
3.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긍정하기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마침내 나는 자유로워졌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했을 때 로비슨의 격정은 이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스퍼거인임을 확인한 순간 그는 더 이상 ‘반사회적 이상성격자,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상’인 사람이었다.
이 깨달음 덕분에 그는 두려움과 자기소외로부터 풀려나고, 가혹했던 부모님과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삶 전체를 이해하고 긍정하며, 마침내 모든 상처와 질곡으로부터 치유되고 자유로워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 ‘나를 똑바로 봐’는 저자가 수없이 들어야 했던 비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한편으로 저자 자신을 똑바로 이해해달라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며, 나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똑바로 보라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권유와 충고이기도 하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똑바로 이해하고 인정했을 때, 자신과 삶 전체를 사랑하고 긍정하게 되며, 마침내 자유로워진다는 것. 이것이 ≪나를 똑바로 봐≫에 담긴 중요한 통찰 중 하나다.
4. 유쾌한 글 읽기의 맛과 즐거움
만일 어떤 사람이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세상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 고통과 상처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왜 그런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저자의 자서전이라면 당연히 “고통에 찬 회고록”이리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나를 똑바로 봐≫는 그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템플 그랜딘이 이 책을 두고 “롤러코스터”라고 평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이 책은 재미나고 웃기며, 심지어 유쾌하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저자가 구사하는 담담하면서도 의뭉스러워 보이는 유머감각과 “감상주의를 싹 걷어낸” 절제된 글쓰기는, 독특하고 색다른 글 읽기의 맛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옮긴이도 지적했듯이 황당함을 넘어서 감탄을 자아내는 저자의 장난기는 “밝고 건강한 생명 에너지의 분출”을 보여주며, 그의 인생행로는 판에 박힌 진부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라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특별하고 환상적인 모험담으로 가득하다.
5. 아스퍼거인의 마음으로 본 세상
로비슨의 삶이 특별하다면, 그의 정신은 더 특별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스퍼거인의 시각으로, 아스퍼거인의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의 낯설지만 신선한 풍경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며,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예컨대 관계와 소통, 공감 능력의 결핍은 로비슨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준 결함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보통 사람들의 관계와 소통 능력은 어떨까? 저자의 논리적이고 솔직한 아스퍼거 정신으로 판단할 때, 보통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많은 부분 무의미하고 터무니없으며, 공감 표현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을뿐더러 가식적이기까지 하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사람들도 있다. 더구나 저자가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불편해하고 화를 낸다.
저자는 아스퍼거인의 시각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뒤집고,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때때로 이 책을 보며 우리는, 저자가 겪는 관계와 소통의 어려움에 동질감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역시 늘 같은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아스퍼거인은 인간 존재 양식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한 가지일 뿐이며, 우리 역시 그중 하나에 속할 뿐이다.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아가 그 차이를 자랑스러워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나를 똑바로 봐≫에 담긴 또 하나의 통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