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1
곤도 요시후미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귀를 기울이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마냥 동화같은 꿈을 꾸게 한다면, 콘도 요시후미가 감독한 '귀를 기울이면'은 한쪽 발은 동화 속에 다른 한 쪽 발은 현실 속에 담근 상태로 보다 현실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시즈크 유형의 주인공은 익숙하다. 작가를 꿈꾸는 문학소녀형의, 조금은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주인공은 이전에도 많이 보아왔다. 빨간머리 앤이 그러했고, 작은 아씨들의 조시도 그 유형에 속한다. 아,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역시 그렇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어차피 작가들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청소년 시절에 나르시시즘적인 애정을 갖고 스스로를 미화하여 매력적으로 표현했던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_-

영화가 시작되고 10분 정도가 흐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즈크라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빨간머리 앤' 유형의 여중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즈크의 가정환경과 친구들과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시즈크가 살고 있는 곳이 대도시(도쿄)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2시간에 가까운 이 영화가 앞으로 풀어나갈 몇 가지 단서들을 던져준다. 그것은 도서카드에 언제나 적혀 있는 '이마사와 세에지'라는 이름과 시즈크가 '컨츄리 로드'라는 노래를 개작한 '콘크리트 로드'라는 노래이다. 이 컨츄리 로드라는 노래는 영화에서 시종일관 등장하는데, 시즈크가 개작한 '콘크리트 로드'와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실제로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이 자연의 모습을 강조한 전원적인 풍경에 중심을 둔 것과 달리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란 더 이상 시골과 대립되고 적대시되는 공간이 아닌, 역시 우리가 숨을 쉬고 꿈을 꾸고 사랑하는 공간이다. 비록 흙 내음 나는 곳이 아닌 콘크리트 길일지라도 말이다.

이 영화에서 대립세력(안타고니스트)은 시즈크의 내면 속에 있다.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게 되는 변화, 불안과 상처들이 그것이다. 시즈크는 이제는 모든 것이 전과 같이 않고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들에 당황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책을 읽어도 전처럼 두근거리지 않아.'

시즈크의 이런 불안은 세에지를 만나면서 더욱 증폭된다. 세에지는 멋지고 자신감에 찬 연애대상의 남자아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경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시즈크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가고 있는 세에지에게 뒤쳐질까봐 조바심을 낸다. 바이올린의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한 세에지 앞에서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결심한다. 세에지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오기 전의 두 달 동안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마지막 결말부분에서 시즈크는 밤잠을 줄이고, 시험점수가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까지 이야기 쓰는 일에 열중한다. 그녀의 이런 고집스러운 열정은 감동스럽기까지 한다. 결국 그녀는 고양이 남작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꽤 두툼한 환타지 소설(로 보이는-_-)을 써내지만, 그녀는 알게 된다. 자신이 아직 한없이 미숙하고 서툴다는 것을. 그러나 식상한 결론이지만, 시즈크는 아직 어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나이이기에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렇게 빨갛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세에지의 황당한(?) 청혼을 끝으로 영화는 유쾌하게 막을 내린다.

어른이 되고, 스물이 훌쩍 넘었다고 하여 사실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내가 스즈크의 나이였을 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현명해지는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난 여전히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고, 두려운 것들 투성이다. 동화 속의 공주님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리하여 영원히 행복하였습니다.'라고 말하며 드레스 자락 질질 끌며 유유히 사라지지만, 그런 해피엔딩은 이곳 현실에는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영화가 더욱 애뜻한 감동을 주는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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