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The Croods (크루즈 패밀리) (한글무자막)(Blu-ray) (2013)
20th Century Fox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애정남이 필요해

 

네안테르탈인의 애매모호함

 

네안테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일 것이라는 가정이 눈에 거슬리지만 어줍잖은 진화론의 가설이 재미난 만화 영화를 만날 있다면야 가볍게 즐길 있는 . 기원이 다른 종의 유인원이라는 가설이 그들을 짐승같이 빠르고 힘 있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두 종족이 결혼도 하고 종족 번식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은 네안테르탈인도 그냥 인간이었다는 가정도 있는것 같고. 애매하다.

 

네안데르탈인은 독일의 네안데르계곡에서 발견된 두개골이 괘 큼지막 하지만 자세는 구부정하게 짜 맞추어지는 인류 인듯 하다. 이 구부정한 자세를 창조 과학이란걸 하는 넘들은 관절염 내지는 비타민 D부족으로 생기는 구루병등으로 해석한다. 또 어떤 넘들은 성경에 나오는 네피림이란 종족일 거라는 둥, 노아의 홍수전 인류 (노아의 홍수때 무너진 궁창으로 자외선 보호막이 없어진 인류의 수명이 급속히 짧아졌다) 일거라는 둥 한다. 진화론에 찌든 넘들은 인간 전 단계쯤의 유사인간쯤으로 분류 하고 싶어 한다. 그니깐 만약 최홍만의 두개골등이 후세에 발견된다면 그는 인류로 분류될 수 없을 수도 있겠네? 물론 턱이 뒤로 들어간 정도로 인류가 될 수도 있겠으나 어떤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의 아이들 턱보다 더 뒤로 갔다니 당시에도 격투기가 유행에서 턱이? 또한 치아의 회전각도나 치아의 사용/마모 정도, 연령에 따른 변화등을 면밀히 어련히 알아서들 조사 해서 저렇게들 먹고 살고 있겠지하지만 햇볕이 부족한 동굴에서 저들이 왜 굳이 살게 되었는지를 나름 보여주고 있다.


 

내일의 애매모호함

 

주인공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는 오늘만을 살았다. 그래서 가훈은 자연스럽게 모든것을 두려워 하자이다. 하지만 그 아버지의 딸인 주인공 여자는죽지 않기 위해 사는건 사는게 아니다라고 외친다. 그녀는내일 바라보는 주인공 남자에게 끌리고 남자는 오늘을 사는 여자의 강한생존력 끌린다. 인간이란오늘 살아야 하지만  내일 살아야 하는 존재니까. 인간이란오늘내일 연결 아는 존재이자 연결 해야 하는 존재니까. 그런데 영화에서 말하는 내일이 그저 또 다른 현세의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라면 뭔가 허전하다. 그렇다고 내세의 영원한 그날이라면 뭔가 지나친 해석이다. 영화에서 그 개념은 안전하게 모호하다. 그니까 알아서 보면 된다. 무서운 넘들이다.

 

애정남이 예수님일 가능성

 

내일을 살자는 구호는 매우 기독교적이면서도 매우 기만적일 수 있다. 만약 오늘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면서 내일을 외친다면 당연 기만적이다. 하지만 오늘을 힘들어도 평범하고 담담하게 두려움 없이 내일에 소망을 두고 열심히 산다면 기독교 적이다.

 

이는 일요일 목사님의 설교 요지였던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마디샬롬에서 있다.  봐라 그대로 살아 났지?” 라며 요란을 떨지 않으시고 그냥안녕하시는 평범함 (Plain). 하지만 매우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심을 보여 주신다. (Personal) 그러면서도 말에  (Power) 있는것은 본인의 말씀대로 이루어졌기 (죽음에서 부활하심)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다. “오늘만을 사는 사람들은 모든것을 두려워해야 하겠지만 내일을 바라보는 자들은  모든것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힘이란 결국 부활에 대한 믿음에 기인한다. “내일 대한 기대는 세상 너머 천국 까지 지만 그러면서도 결국오늘 매우 현실적으로 평범하게 살아야 하며 이웃들과 매우 친밀하게 살아야 한다.

 

내일 없다내일 있다의 공통점 오늘

 

여기 까지가 짧았던 내 생각이다, 즉 비신앙인들은 내일이 없는 무식하고 불쌍한 넘들이므로 당연히 오늘을 두려움 안에서 무의미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생각 말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가를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봤다. 선전 하는 몇 문장이 마음에 든다. “한가지 확실 한 것은 우리 모두 죽는다 이다”(구러췌!)... 근데 그게 다였다. 영성이나 초자연적인 것 말고 오로지 이성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니 결론은 뻔하지. 죽은뒤가 어떤지 산자는 이성으론 모른다 였다. 여기서 반전. 리뷰를 인용한 선전문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자꾸 생각나게 한다. 대충 이런 내용 이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우리는 뭔가 바랐던것, 기대했던것을 잃어버리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갖는다. 그리고는 마음의 다른 한편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소중함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예수도 모르면서 기독교에 적대적인 넘들의 그 무식함을 개무시 하던 나에게 (사랑과 전도를 못한 꺼림직함에 대한 일종의 컴플렉스) 그런 감사가 가능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는 운전중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 하나님은 없고 죽으면 모든게 끝이 라면? 그러자 늘 엄습하는 그 온 몸을 죄어오는 절망감이 왔다. 그리고는 기도로 마무리 되곤 했는데 문득 그 책에서 던진 질문이 생각났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자 희한하게도 그 선전 문구 처럼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닌가? 무신론자의 세계관이란 이기주의, 향락주의, 쾌락주의 또는 비관주의나 회의주의 일것 같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무신론자이면서 하나밖에 없는 한번의 삶을 뜻 깊게 살고 싶은 넘들이 있다면 그들은 당연히 화가 나는 거다. 있지도 않은 저 세상을 위해 종교인 이랍시고 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넘들이. “오늘을 무시하고 내일만을 사는 넘들이 불편한거다. 저들도 오늘이 소중하구나!

 

그렇군! 적어도 이 세상의 삶을 열심히 살고자 하는 넘들이라면 그들이 신앙인이건 비신앙인이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희망이 있어 보인다. “오늘에 대해서. 그리고 좀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마음도 든다. 

 

불편한 진실 몇가지


1. “내일에 대한 첫 인식에 흥분하지만 결국 오늘밖에 없는것 같이 느껴질때 오늘을 막 사는 넘들과 소중히 여기는 넘들이 나뉘는 것이 신앙과 무관 할 수 있다는 가능성

2. 이 영화의 유머 코드는 정말 나와 맞다. 그래서 좀 불편하다. 난 Cave Man 수준인가봐

3. 아버지 관점에서 보면 불편한 점

  • 가부장적 능력마저 나에겐 없는것 같은
  • 신 세대를 따라가기 벅찬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적 능력이 그나마 있어도 소용없을 까봐
  • 아들 녀석이 저런 여자친구를  데려오면 어쩌지
  • 딸아이가 저런 남자친구를 데려오면 어쩌지


4.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종족 번식이 가능하다면 같은 종이라는 거야 뭐야

5. 뭔가 라이브오브파이 에서 보이던 패턴들. 고생중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 많이 과장된 총천연색의 동물, 식물들. 이건 마치 천지창조 시기와 가까울 수록 자연과 생물이 훨씬 아름다웠었다라는 주장을 하는것도 같은데 하튼 이런 얼굴 큰 동물들은 좀 생뚱맞다. 토토로에서 본것도 같고.



위안이 되는 몇가지

1.      그래도 아버지로 살아남을 수 있는건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2.      그래도 아직 애들 보는 만화영화는 "남자"-"여자"가 서로 좋아하는 구나

3.      또라이들도 오늘에 의미를 둘 수 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