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한성우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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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공부하면서, 내가 만약 더 깊이 공부한다면 문법을 하겠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문학 작품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학문적으로 좋아하는 건 어휘나 문장의 구조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수업도 문법 수업을 더 재미있게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수업을 하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많은 아이들이 문법을 왜 배우냐고 묻고(너희들 영어 시간에도 묻냐?) 왜 이렇게 ‘한국말이 어렵냐’고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문법은 ‘받아쓰기 - 점수 - 맞춤법 - 하…’의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문법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말이 먼저냐, 글이 먼저냐’를 묻는다. 한글이 세종대왕 시대 창착되었다는 걸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에엥?’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이 먼저’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말을 먼저 했고, 글이 생겼고, 글을 적기 위한 규칙을 정리할 건  훨씬 더 후의 일이다. 이미 말을 그렇게 해 온 걸 우리는 용어를 써서 정리하는 것 뿐이다.’라고 설명하면 조금 수긍하는 태도로 문법 수업에 들어온다. 

사실 문법은 꽤 어렵다. 나도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문법책을 이것저것 뒤적여가며 다시 공부하고 문장을 만들어보고 이게 맞나 틀리나 선생님들께 여쭤보기도 한다. 맞춤법 검사기를 쓰고,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는 내 즐겨찾기 목록의 맨 위에 올라가 있다. 나도 문자 메시지를 쓸 땐 조심스럽고, 나에게 보내는 사람들도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글을 모시는 건가…)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됐다. 한성우 선생님의 책은 예전에 ‘우리 음식의 언어’로 먼저 만났었다. 어휘 부분 책에 관심이 있던 터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엔 좀 다른 스타일이다. 문법책 같은데 어찌보면 가볍게 훌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중간 중간 나를 멈칫하게 만든 부분들이 꽤 있었다. ‘말의 주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일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구나 쓰니까 쓰는 말들에서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표현이 스며든 채 유지되는 이야기, 어떤 단어와 대비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들. 쓸 때에는 생각이 없다가 본문을 읽으면서 고민하게 된 단어들을 만나면 책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들이 스쳤다. 그러나 다행인건(?) 선생님은 이런 독자를 다독다독 하시려는지, ‘어떤 의미로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이게 말의 주인으로 사는 방식이다. 


곶 - 꽃, 불휘 - 뿌리의 예를 통해서도 그렇고 어휘의 확장에서도 그렇고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말은 변한다. 말을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조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의 주인인 우리는 말에 관심을 갖고 흐려진 말들을 정화해가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면서, 수업에서도 말을 흙탕물로 만들지 않고 정화할 수 있는 사람들로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결국 어떤 의도로 어디에 사용하는가가 문제입니다. 말의 주인들이 다수에 폭력에 편승할 것인가 소수의 특권을 지향할 것인가에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 P120

변화의 흐름은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선호도, 전문가의 의견 등이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지만 결국은 말의 주인인 언중의 집단 지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주인들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물론 주인들의 주인 의식 또한 중요합니다. 요오드와 나트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바뀔지라도 이 원소들은 변함없이 각각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대상 또한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일컫는 말이 달라질 뿐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주인들의 선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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