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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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들춰보니 99.12.26이라고 쓰여진 흔적이 있다. 책을 읽기 전에 날짜를 기입하는 습관은 아마 그 즈음부터 시작됐지 싶다.

4년만에 우연찮게 들춰본 책... 이상한건, 책을 읽는 내내 정말 까마득하게 글의 한 구절도, 단 한명의 주인공도, 짧은 에피소드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무실과 집을 오가는 버스안에서 짬짬이 읽는 며칠, 계속 꿈과 현실속에서 멍하니 책의 한 구절, 그 사람들을 떠올릴 정도의 끌림을 가진 책인데, 이렇게 까마득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최윤의 소설은 늘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은 아릿하고 날카로운 복받침과 몽롱한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막상 책을 덮으면 떠오르는건 희미한 이미지뿐이었다. 그래서 두세번, 아니 생각날때마다 끊임없이 반복해 읽어야지만 겨우 주인공의 이름이나 내용이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늘 소리없이 사라져버리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소설 자체도 내 기억속에서 소리없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리는 반복된 경험...어쩌면 묻어버리고 싶은, 외면하고 싶은, 그냥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감정들이 떠올라서가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그 잠깐의 시간에만 허용되는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는게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날, 최윤의 소설을 다시 한 번 펴들고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길로 들어설 것만 같은 불길한 그러나 너무 매혹적인 두려움이 든다.

이 책에도 그런 유혹은 깊게,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배여있다. 난 또 그 유혹을 외면할 것이고, 그리고 몇년이 지난 어느날 또다시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책을 다시 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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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있는 지혜의 여신들 - 심리여성학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이경미 옮김 / 또하나의문화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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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 또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랄때가 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렇게 대처했을까... 고민하다보면 여전히 나는 날 잘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반복해서 하게 된다.

가끔씩 내 안의 내 존재가 느껴질때, 내 가슴 깊숙한 어떤 존재와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 이 충만한 존재감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곤 했다.

그런데 나이를 들어가면서 오히려 내가 너무 얄팍해지는 느낌, 충만한 내 존재감이 슬그머니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어 두렵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멋있게 늙고 싶다는 바램으로, 그리고 날 잃지 않고 나이가 들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내 안의 힘을 다시 믿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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