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 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해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_ 장 그르니에, 「섬」中, 민음사, 77-7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대국적인 견지에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럽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싶었던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

우리가 어떤 존재를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하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보편적인 생각들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이라야 이른 바 그들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사람은 늘 가장을 하고 연기하는가요?”

어떤 사람은 찰리 채플린에 관하여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러나 가장을 하고 연기하는 쪽은 채플린이나 돈키호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다.

 

_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갤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

나는 마약에 대해서도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마는

그 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 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나는 아직 정치를 잘 모르지만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고 들었다.


*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내가 흉측하다는 걸 나도 알아."

"아줌마는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이에요."

 

*

사랑해야 한다.

 

- 에밀 아자르(로맹가리), <자기 앞의 생> 중, 열린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전인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고흐나 클림트나 에곤쉴레 혹은 그 밖의 많은 서양화가에 열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국에도 내가 열광할 수 있는 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곳 저곳을 뒤적거리다가 이중섭을 만났다. 이 글을 통해 알게 된 이중섭은 순수하다, 천진하다 이런 말로도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책의 제목처럼 그저 막연히 ‘아름답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광경이 그저 감탄사만 뿜게 하듯이 말이다.

일본인 부인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리게 된 엽서 그림들, 토종 한국 소만을 고집하여 화폭에 담는 그의 정신세계, 이중섭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아이들을 담은 군동화 시리즈, 돈을 벌어야 부인을 데리고 올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전시회를 결심하지만 사기를 당하고서 낙담하여 결국에 요절하게 되는 그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그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거 같다. 천재라기보다는, 더 이상 현실에서 상처 입지 않게 하기 위해 일찍이 하늘에서 데리고간 신화 속의 인물처럼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