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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년은 더스티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수화기를 내려놓고 약병을 열기 위해 끙끙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약병 뚜껑을 비틀면서 혼자 구시렁구시렁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한참 침묵이 흐르더니 마침내 만족스러운 투로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말 들려?”
더스티가 말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더스티는 뭔가 생각해내려 애썼다. 그리고 이제, 소년이 과음을 한 바람에 이렇게 전화를 걸고 있는 와중에 알약을 좀 더 삼키고 있는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또한 그가 조쉬에 대해 뭔가 알고 있으리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이 소년의 생명을 구해야 했고, 그러려면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했다. 잘하면 그가 말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이건 진짜로 자살을 기도한 것이 아니라 도와달라는 외침인지도 몰랐다.
“내 말 들리냐고?”
더스티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더스티는 전화기를 들고 창가로 다가가 커튼 사이로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눈에 덮여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방금 전 내린 눈까지 더해 눈은 18센티미터 정도 쌓여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고, 아무래도 아직 아무도 눈을 밟은 사람이 없는 듯 거리는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더스티는 오른쪽을 흘긋 보았다. 인적이 끊긴 골목이 캄캄한 어둠 속으로 쭉 뻗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아빠가 벡데일에서 돌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마찬가지로 인적이 끊긴 골목을 바라보았다. 골목은 집 바깥쪽 넓은 모퉁이 구역을 지나 그곳에서부터 다시 좁아지기 시작해 마침내 스톤웰 공원 입구에서 끝이 난다. 그곳 역시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고, 온통 순백의 눈과 고요한 정적, 그리고 텅 빈 공허만이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데이지?”
“나를 데이지라고 부르지 마.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알겠어?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아니, 네가 내 말을 들어줘야겠어.”
소년의 목소리는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조금 졸린 듯했지만 어쩐지 훨씬 더 강압적인 것 같았다.
“내 말 잘 들어… 난 시간이 별로 없고…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너를… 너를 겁먹게 만들었다면 미안해.”
“나를 겁먹게 하지는 않았어.”
“아니야, 그랬어.”
소년의 숨소리는 아까보다 더 가빠진 것 같았다.
“내가 널 겁먹게 했어. 그랬다는 거 나도 알아. 그리고 지금도… 지금도 여전히 너한테 겁을 주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더스티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옳다는 걸 알았다.
“미안해.”
소년이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해… 네가 누구든 간에 말이야….”
“내 이름은 더스티야.”
더스티는 소년과 이야기하는 게 싫었다. 소년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스티는 위험을 감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소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면 그와 통화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멋진 이름이네.”
“네 이름은 뭐야?”
“아무렇게나 불러.”
“너도 이름이 있을 거 아니야.”
“아주 많은 이름이 있지.”
“그럼 그 가운데 하나를 말해줘. 그 이름으로 부를게.”
“이름 따위 들먹이기에는 이젠 너무 늦었어.”
더스티를 오싹하게 만드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단호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
“더스티?”
“응?”
“전화 끊지 않고 받아줘서 고마워.”
“조쉬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줘.”
“조쉬라는 애가 누군지 몰라.”
“넌 알잖아. 네가 알고 있다는 거 알아.”
소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쉬가 어디에 있지?”
소년이 입을 열었지만 더스티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이 나무들 말이야….”
소년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정말 아름답다.”
“조쉬에 대해 말하라니까. 부탁이야, 조쉬에 대해 말해줘.”
“정말 아름다워.”
소년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져가고 있었다.
“나무 근처에서 죽게 되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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