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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바로 그것이다 Thou art that"
- 우파니샤드
1.
“난 죽어가고 있어.”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더스티는 수화기를 꽉 붙잡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음성으로 보아 자신과 비슷한 또래, 그러니까 열다섯이나 열여섯,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소년으로 짐작됐다.
“거기 누구 없어?”
그가 낮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소년의 목소리는 화가 난 듯했고 발음은 분명치 않았다. 더스티는 시계를 흘끔 바라봤다. 20분이 지나면 자정이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더스티는, 집에 돌아오는 길인데 눈 때문에 도로가 꽉 막혀 꼼짝을 못한다는 말을 하려고 아빠가 전화를 걸었을 거라 여기며 벨이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들었다. 이런 남자아이의 전화인 줄 알았더라면 받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거기 누구 없냐고?”
그가 말했다.
“누구시지요?”
대답은 없이 기침소리만 들렸다.
“이 번호는 어떻게 안 거예요?”
더스티가 말했다.
“우리 집 전화번호는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았을 텐데요.”
또다시 기침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에는 곧이어 소년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냥 아무 번호나 생각해서 전화를 걸었어.”
더스티는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전화가 분명했다. 금요일 밤인데다 새해의 첫 날. 어떤 할 일 없는 남자애가 친구들과 빈둥거리다 장난을 친 게 틀림없다. 잔뜩 귀를 기울여 듣는다면 아마 주위에서 낄낄거리는 친구들 웃음소리를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수화기 저편에서는 괴로운 듯한 소년의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더스티는 아빠가 지금 데이트를 하러 벡데일 외곽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몇 주 만에 처음, 아빠를 외출시키려고 갖은 애를 다 쓴 끝에 그야말로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됐다며 좋아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빠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내 말 들었어?”
소년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난 죽어가고 있다고.”
더스티는 소년의 말이 사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위험에 처해 있는 거라면 이렇게 번호를 생각해내서 전화를 걸 리가 없었다. 전화를 걸려면 999에 걸었어야지.
“그럼 경찰에 전화를 걸었어야지.”
더스티가 말했다.
“경찰은 부르고 싶지 않아.”
“그러면 앰뷸런스를 부르든가.”
“앰뷸런스도 부르고 싶지 않아.”
“죽어가고 있다면서.”
“난 죽어가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전화를 걸어야 할 곳은 말이지….”
“누구한테 전화를 걸 필요는 없어. 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지, 살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수화기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더스티로서는 달갑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약을 과다 복용했어.”
소년이 말했다.
더스티는 소년의 말을 믿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더 이상 이런 남자애의 말에 말려들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어쩌면 소년이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소년에게 정말 무슨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다른 사람이 해결할 일이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난 널 도울 수 없어.”
더스티가 말했다.
“아니, 넌 날 도울 수 있을 거야. 난 그저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듣고 싶을 뿐이니까. 쓰러져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네줄 사람 말이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필요한가본데, 그렇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대신 그런 사람들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긴 할게.”
“사마리아 사람 같은 건 필요 없어.”
소년이 말했다.
“난 네가 필요해.”
이 말을 듣자 더스티는 슬슬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강하게 밀려들었다. 하지만 더스티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소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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