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그의 일기를 끌어 안고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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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6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6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문학적인 글쓰기는 기, 승, 전,결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남의 글을 읽고 그것을 평론하는 서평은 어느정도의 서론과 본론, 결론이라는 짜임새를 지니고 있지만 반드시 절대적으로 기, 승, 전,결이라는 글의 원칙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이런면에서 볼 때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타인의 글에 대한 서평을 전개하는 방식은 작가 고유의 표현이다. 결론에 이르러 하나의 질문을 던지거나 독자 스스로 답을 얻으라는 모호한 끝맺음을 할 수도 있다. 서평의 형식이 자유로움은 마지막 귀결점에 이르러서 조바심을 내며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서평집을 읽는다는 일은 확실히 책을 읽는 방식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정일의 여섯번째 독서일기도 그의 독특한 책읽기 방식과 쓰기 방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서평집으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의 여섯번째의 독서일기를 읽으며 나는 다섯권까지 읽는동안 엄청나게 산만한 문자로 활성화되어 왔던 에너지를 이전만큼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그가 변했나? 아니면 독설가 장정일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던 글 읽기가 변심했나? 한동안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서도 이전의 독서일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삭제되고 일괄적인 변화의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의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글쓰기 방식이 변한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책에서도 그는 여전히 독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혀는 여전히 꼿꼿하고 엉겅퀴처럼 독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섯번째의 독서일기가 이토록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일까.
우선, 이번의 독서일기에서 그는 책속의 예시문을 삽입하면서 책의 쪽수를 밝히지 않았다. 몇 페이지에 나왔다는 그런 구체적인 증거를 삽입하지 않았으며, 또한 사회과학분야의 책이 상당히 많이 소개되었고 그리고 음악서적류가 꽤 자세하게 소개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2002년도에는 중국에 관한 서적을 집중적으로 읽은것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삼국지 출간을 앞선 의도적인 중국공부가 아니었나 싶다. 중국관련 서적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집중적이고 치밀한 서평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그는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삼국지 열 권을 썼을 것으로 추측한다. 당나라, 명나라의 정치, 역사, 문화를 읽으면서 저자는 중국의 역사와 더불어 그들만의 정서에까지 접근하는 시도를 충분히 노렸을 터, 그러므로 그가 집중적으로 습득한 중국의 불교관련 지식은 이번의 독서일기에서도 상당한 논리를 갖추고 등장한다. 그가 중국에 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하기 위하여 얼마나 대단한 책을 읽어 왔는가 일례로 불교학 공부를 하고 있는 지인에게 장정일이 읽었다는 <중국사와 불교-신서원, 1994>와 <피와 전율의 중국사-마니아 북스-1999><반문화 지향의 중국인-이채,1999>에 관하여 물었더니 이런류의 책은 전문가도 여러 날 숙고의 뜻을 깊이 갖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전한다. 그는 삼국지 준비작업을 하면서 책으로나마 어느정도 중국을 섭렵하려 했던 것일까. 스스로도 경전보다는 '별 책'이라는 책 읽기를 더 즐긴다는 저자는 <만들어진 제 3의 性>이라는 부제가 붙은 미타무라 다이스케의<환관-나루,1992>까지 읽으며 명과 청나라의 환관제도와 정인갑의 <중국문화.com-다락원-2002>을 읽으며 "요 며칠 사이에 읽었던 책들은 <삼국지>를 쓰면서 중국에 대한 잡상식을 얻고 또 메마른 전문 서적과 자료를 읽는 사이에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읽었던 책들로, 재미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날학파적이라고 해야 할 이런 류의 역사서가 갖고 있는 '지식의 포켓북화'와 '지식의 시리즈화'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47쪽)라고 고백을 한다. 그의 삼국지가 이렇게 탄생되어짐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장정일은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의 주장을 한 컷의 카피화로 보여주는 대단한 컨셉을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대목은 기존에 나왔던 독서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의 독서일기에서도 다시 맞닥뜨릴 수가 있는데, 그가 황간의 <주자행장>을 읽으며 지리함과 밋밋함에 괴로워하다가 몇 번이고 곱씹어 읽는다면 "한 개인의 인격에 백성의 행복과 생사마저 좌지우지되던 절대 왕정시대에, '예법'과 '학문'을 앞세워 황제를 타박하고 가르치려했던 주자의 삶은 '마차를 막으려는 사마귀'처럼 무모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중략.......주자에게 그런 '무모함'의 용기를 주었던 유학의 이념이란 대체 어떤 것이었으며 그것이 무엇이었던 것인가에...."-(99쪽)라는 대목에서 '마차를 막으려는 사마귀'로 주자의 용감무쌍하고 무모하다 싶은 도전정신을 단 한문장으로 일갈하고 있다. 장정일다운 짧고 명징한 표현기법이다.
그런 그가 이번 독서일기에서는 음악서적을 여러 권 소개하면서 여섯번째의 독서일기가 기존의 독서일기와는 차별화 되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장정일이 째즈와 클랙식 음반의 열혈팬이라는 것은 세간에 유명한 일이다. 그가 예전의 독서일기에서 밝힌 음악에 대한 집착은 병적일만큼 이번의 독서일기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향수>를 읽으면서 "록, 재즈, 오페라의 토막난 부분을 음악의 더러운 물"이라고 두번이나 쿤데라가 분노하는 모습에 '더러운 물'이라는 부분을 "오페라의 전곡을 마구 난도질하여 편집,방송하는 라디오를 비난했다고 믿는다."-(127쪽)며 "대구에서 듣는 KBS-FM은 한 10여 년 전과 비교해, 완전히 <더러운 물>이 되었다."고 손바닥에 벌겋게 핏발이 설 정도로 강도 쎈 맞장구를 친다. 내가 장정일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이러한 직설화법과 지나치게 솔직하다 싶은 강렬한 정직함때문이다. 최소한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일에 우회적인 은유법이나 간접 표현으로 한 꺼풀 덮어서 얄미운 위장수법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정일은 촌철살인의 한 컷의 명문 카핏을 주류로 삼았던가 하는 의구심은 버리자. 책 말미에 쓴 2003년도에 읽었다는 서중석의 <비극의 현대 지도자-성균관 대학교 출판부, 2002>-장장 열 장의 분량으로 쓰여진 한 편의 논문과 같은 긴 서평을 읽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온다. 장정일의 서평 한 가지로 마치 서중석의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하다. 그는 이승만과 김구와 박정희에 대하여 서중석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니, 상처로 얼룩진 이 나라의 근, 현대사에 아껴둔 말이 많았던 것이리라. 이번의 독서일기에서 많이 등장한 사회과학서적의 서평이 이를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장정일이이라는 작가가 인간적으로 귀여웠던 부분,
윤광준의 <소리의 황홀,효형출판-2001>을 읽고는 최고의 오디오를 소장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으로 인하여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다시 읽었던 날 밤, 나는 내가 커다란 JBL 스피커 속에 잠들어 있는 꿈을 꾸었다."-(222쪽)
부기)지난 해 아영엄마님이 주신 장정일 독서일기 6권을 읽고 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