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 20세기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의 삶
산토 아리코 지음, 김승욱 옮김 / 아테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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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아나 팔라치 님께.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 지 이제 6개월이 돼 가네요. '전설의 여기자'라는 수식어가 달릴 정도로 화려한 활동을 하신 당신을 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명색이 기자를 소망하는 학생인데도 말이지요. 몇 달 전 당신의 삶을 소개하던 현직 기자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당신의 존재를 알았고, 서둘러 당신의 삶을 기록한 책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산토 L. 아리코, 아테네)를 구해 읽었습니다. 아둔하고 미련하다고 욕부터 하시겠군요. 당신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디킨스처럼 인정받기를 갈망한"(p.363) 분이었으니까요. 피안의 세계에서나마 당신의 불같은 성격이 유순해졌다면 다행이구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의 삶보다는 당신의 '방식'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이 가져야 할 태도 같은 것들 말이지요. 뭘 봤느냐고 물으신다면...글쎄요. 사실 철저한 학생의 입장에서 시작한 책 읽기가 종반에 가서 많이 무뎌졌습니다. '본보기'로 삼으려 했으나  '반면교사'가 될만한 모습도 보이시더군요. 

당신은 '명석'한 분이시더군요. 현대사회에서 '힘'( hegemony)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아는 분이었습니다. "힘을 부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품위다. 그[가난한 사람]는 자신이 세속적인 힘, 물질적인 힘, 금전적인 힘, 사회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문화와 힘이라는 개념을 결합시킨다."(p.408) 부르디외가 말했던가요. 구별짓기에 따른 '문화권력'의 창출 메커니즘에 대해 말이죠. 글쓰기에 관한 당신의 천부적인 기질을 어떻게 사용할 지를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은.

 

안타깝게도 전 당신의 '문학'을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글쓰기 수준을 운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 같은 게 결여돼 있음은 물론이구요. 그래서 당신이 도스토예프스키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은 '기자'이기 보다 '문학인'이길 바랐다는 점이지요.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 만큼 글쓰기에 대한 철학도 깊어보였습니다. 그 점은 한 수 단단히 배웠습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말들이죠.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난 아주 성실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따라서 글을 쓸 때 나는, 그 글이 덩샤오핑에 대한 것이든 호메이니에 대한 것이든, 항상 나 자신을 드러낸다."(p.16) 머리로만 풀어간 무미건조한 글이나 감정만 가득 실은 자기 투정식 글에 비하면 당신이 말하는 글쓰기는 '솔직'해 보였습니다. 당신의 글이 당신 전체를 말해주고 있을테니까요.

자신이 만든 글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려는 태도 또한 가슴에 새길 부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앞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네가 아니다. 이야기가 우리를 이끌고 스스로 나아가는 것이다. 책을 쓰기 전에 "나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 책을 이런 식으로 쓰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코! 그것은 마치 아이를 낳지 않고 계속 임신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 태어날 아들이 파란 눈과 검은 머리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과 같다. 태어날 아들이 파란 눈과 검은 머리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절대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눈이 파란색이 될지, 머리가 금발이 될지 흑발이 될지 결정하는 것은 아이 자신이다. 네가 결정해줄 수는 없다. 아이는 그 안에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나는 숨이 붙어 있는 한 이 말을 되풀이할 것이다. 책은 그 나름의 독자적인 생명을 갖고 있다."(p.372) 성석제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라는 소설을 쓴. 한 다큐먼테리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인터뷰어가 그렇더군요. "그래서 황만근이 어떻게 했을까요?"라고. 돌아온 대답이 걸작입니다. "글쎄요. 황만근씨가 어떻게 했을까요? 잘 모르겠는데..." 우문현답이었습니다.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자율성을 부여해 주는. 글을 쓰는 매순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황만근의 이야기를.

그러나 당신의 자부심은 지나쳐 보였습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었고, 때론 과격했습니다. 스스로 '신화'가 되겠다는 의지가 과도한 나머지 당신은 인터뷰이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언론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인터뷰를 무대로 이용하는 기자"(p.126)였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전부 종이에 옮겨 적은 다음, 영화 감독이 영화를 만들 듯이 기사를 작성" 하고 "일부 내용을 없애기도 하고, 잘라서 이어 붙이기도"(p.134) 했지요. 당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나는 배우이고, 이기주의자이다. 기사에 나 자신을 집어넣으면 좋은 기사가 나온다."(p.134) 그 결과 당신의 기사엔 당신만 존재했습니다.  그 결과 NASA 우주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은 우주인에 대한 당신의 편견만 부각되고, 아라파트를 인터뷰할 때는 빈약한 억측으로 그를 '동성애자'인 양 묘사했습니다. 아라파트에 관한 기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건 무엇일까요? 이슬람의 평화를 위한 그의 대안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문학'과 '기사'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는 당신의 문학론을 '신문지면'에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신문 기사의 주인공은 인터뷰이이지 인터뷰어가 아니며, 독자의 관심 영역이지 당신의 편견이 아닙니다. 당신이 쓴 기사들은 "픽션의 요소들을 이용하고 글쓰기를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논픽션 산문의 전형적인 예"이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글을 소설만큼 창조적인 장르인 '풍부한 상상력으로 쓴 진실(imaginative truth writing)(p.199)"로 끌어올렸다고 이 책의 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읽는 재미를 고려해 형식적인 부분에서 '문학'을 도입하는 것과 기사 자체를 논픽션으로 만들어 버리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당신의 지나친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당신은 지나치게 똑똑했는지 모릅니다. 무솔리니의 폭정에 저항한 부모님 밑에서 당신은 너무도 일찍 성숙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의 기억 때문에 당신은 '전체주의'에 대한 광적인 혐오감을 갖게 됐고, '개인주의'를 반사이익으로 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선천적 자산이 풍부했고, 그것을 극대화 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전설'이 될 자질을 갖고 있었지요. 그래서 더욱 매달렸다고 이해하겠습니다. 스스로 신화가 되겠다는 집착을 말이죠.

당신의 열정'만'은 꼭 따라하겠습니다. 샤론이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죠. "난 당신이 했던 인터뷰에 대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또 누군가를 굴복시켜 머릿가죽을 벗기고 싶어한다는 것도 잘 알아요. 당신은 혹독한 사람입니다. 아주 혹독해요. 하지만 당신과 폭풍우처럼 격렬한 대화를 나눈 모든 순간이 다 마음에 듭니다. 당신이 용기 있고, 성실하고, 유능한 여성이니까요. 당신처럼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고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신처럼 오로지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를 다녀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기를 영웅으로 만들겠다'는 잘못된 방향성을 제외한다면 완벽한 기사를 위한 당신의 열정은 기자가 가추어야 할 필수 미덕인 것 같습니다. 꼭 명심하겠습니다.

팔라치씨! 기자 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습니다. 당신은 '한국'에 대해 아나요? 지금 이 곳에서는 유례없는 취업난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구요. 번번이 낙방한 나머지 잔뜩 움츠렸지만 당신의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배운 지금, 어깨 좀 펴려고 합니다.

근데 이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막상 들어가고 난 후의 상황을 그려볼 때입니다. '시사저널 사태'에서 드러난 언론계의 '모순'을 생각하면 암울하기만 합니다. 자본 권력이 새로운 장애물로 등장한 지금은 눈에 보이는 폭력에 대처했던 과거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인 듯 보입니다. '공공의 진실'을 콘텐츠로 먹고 사는 '사기업'이라니요. 난마처럼 얽혀 있는 언론의 고민은 쉽사리 풀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신의 '문학적 저널리즘'이 한가지 해법으로 등장했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긴 어려울 듯 보입니다.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책 한 권 달랑 읽은 조잡한 지식으로 당신에 대해 너무 왈가왈부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당신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군요. 번역투의 문장을 싫어하는 까닭에 외국 소설을 꺼려하는 편입니다만, 당신의 소설은 꽤 괜찮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더군요. 찾아볼게요. 아참! 당신 역시 번역의 한계를 질책하셨더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책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는 제법 깔끔한 편입니다. 무리없이 읽히는 게 번역자의 노고가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배로 낳은 '자식' 대신으로 여겼다는 당신의 '책'을 들고 또 다시 찾아올게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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