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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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한 일간지에 소개된 그의 책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읽은 후, 난 그를 당장에 내 오마주로 삼아버렸다. 이후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를 당장에 사 보았고, 한국일보에 하루에 한편씩 꾸준히 연재하고 있는 한토막짜리 글도 부러 챙길 정도로, 그에 대한 내 충성도는 꽤 깊은 편이다.


그는 결코 있을 법 하지 않은 캐릭터와 상황설정으로 이야기를 창조해 나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를 박민규 등과 더불어 ‘21세기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군’으로 분류하는 까닭 역시 여기에 있는 것으로 안다. ‘2차적’ 현실세계를 워낙 재미있게 그려내 그의 글은 매우 쉽게 읽힌다. ‘죽죽’


그러나 그의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은 중간 중간 ‘턱’ 하고 걸리게 만드는 대목에 있다. 이번 소설집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나쁜 소설 -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선뜻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바로 ‘형식의 파괴’다. 이 소설에서 그는 직접대화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자, 좋습니다. 이 소설은 저 위 부제처럼 누군가 누군가에게 직접 소리내어 읽어주도록 씌어진 소설입니다.”(p.9) 색다른 화법에 당황한 독자들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배려 또한 잊지 않는다. “소설을 읽어줄 사람은, 소설은 듣는 사람 머리맡에 바싹 붙어 앉는 것이 좋습니다.”(p.11) 이제 그의 소설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게 된다. 이제 그가 진행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죽죽’ 듣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가 ‘턱’ 하며 걸린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자,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이런....역시 그랬던 거군요....당신은 역시 거기, 도서관 자료실에 앉아 있었던 거군요. 당신 주위엔 마음 편히 소설을 읽어줄 만한,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거군요. 불쌍한 사람, 내 한 걸음에 달려가 소설을 읽어주고픈, 당신. 쓸쓸한.”


「갈팡질팡」의 두 번째 꼭지,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역시 그러하다. ‘흙’으로 만드는 가정식 야채볶음이라니… “오늘의 요리는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이 되겠습니다.”(p.47)하며 우리에게 있을 리 만무한 음식을 소개하는 화자. 그리고 화자의 야채볶음흙의 유일한 시식자 명희. 이런 말도 안 되는 캐릭터로 이야기를 ‘죽죽’ 끌고 나가는 작가는 중간 중간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저와 명희 사이에도 그 조미료 같은 사람들이 끼어들었죠. 저와 명희 사이에 조미료를 뿌리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 저와 명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세상 모든 것을 요리하려 드는 사람들 말입니다.”(p.81)


‘거의 연락이 없었던 사이였’(p.106)던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룸살롱 ‘토지’에서 친구의 꾐에 빠져 술을 먹은 후, 박경리 선생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원주통신」. 부잣집 딸이 운전하는 차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기로 작정한 진만과 시봉의 이야기, 「당신이 잠든 밤에」. 밤마다 국기게양대에 몰래 올라 국기를 떼어 자신의 생계수단으로 삼는 시봉과 국기게양대를 사랑해(국기가 아니다. 국가는 더더욱 아니다) 매일 게양대의 스테인리스 봉에 오르는 사내의 이야기, 「국기게양대 로망스 - 당신이 잠든 밤에2」. 세상과 두절한 채 소설을 쓰다가 지구가 방사능 사고에 노출됐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소설가의 이야기, 「수인」. 할머니가 들려주는 한국전쟁의 비극, 그 속에 감춰진 할머니의 상처입은 과거, 상처를 씻어주기로 작정한 손자의 이야기,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 “근대소설은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끝나는 장르라고, 그게 바로 논리라고.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쓰기 전 철저하게 설계도 먼저 그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공학적으로, 나사못, 하나 허투루 박지 말고, 꼼꼼하게, 제목도 마찬가지로”(p.268)하며, 소설의 ‘과학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근대’ 에게 ‘하이킥’을 날리는 이야기,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들 틈틈이 박혀 있는 이기호의 ‘턱’ 때리는 한 문장을 주목하자. 그의 글재주가 선사하는 ‘재미’를 왜 곧이곧대로 넘길 수 없는가를 쉬이 알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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