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 산책 - 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7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고 정운영 경제학 교수의 생전 글을 묶은 '자본주의 경제 산책'은 엄밀히 말해 21세기 대한민국형 자본주의의 앞날을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는 글이다.

  이 책에서 그는 21세기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세계화'와 '투기자본'을 꼽았다. 세계화는 자본의 전방위적 진출을 가장 전략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촌 공동체'로 대표되는 지구화, 국제화와는 대비된다. 또한 정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투기자본은 초국적 거대 자본의 양도 차익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근대적, 반봉건적 투기 형태와 구분된다.

   세계화는 1970년대 전세계적 - 사실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먼저 나타난- 불황의 타개책으로 나온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언어 레토릭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혹은 세계화는 자본의 무한정한 확장을 위해 국가의 역할을 축소, 나아가 폐지시키려 하는 데 운용의 핵심이 숨어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세계화가 "조지 소로스 마저 지적하듯이...(중략) 대다수 주민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불안정과 불안전을 초래하고, 마침내 체제의 재생산 능력을 파괴한다"(p.75)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세계화 시대의 시장 분할과 통합은 그 대상이 기존의 상품과 자본은 물론, 용역, 기술, 노동, 환경, 거래 규칙으로 대거 확대될 뿐만 아니라 외세 개입을 규제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존재하지 않"(p.73)기 때문이다.

   투기자본 역시 실물 거래를 매개로 하는 생산적 활동이 아닌, 도박 플레이에 가깝다는 점에서 21세기 자본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고 본다. "통화, 주식, 채권, 파생 상품까지 양도 차익을 노리는 금융 투기가 외환 수요의 98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카지노 자본주의'의 야유를 그대로 수긍하게 만든다."(p.83)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거 유입된 국제적 투기 자본이 국내의 금융 자본은 물론, 국내의 저평가된 기업들을 잠식하고 있다. 국내 은행의 대부분이 80% 이상의 자본을 국제 자본에 기대고 있다는 점, 또한 칼 아이칸의 KT&G 인수 시도 등에서 보듯, 국가 경제가 국제 투기자본에 휘둘리기 십상인 게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현실이다.

   정 교수는 "과거의 제국주의와 자유주의가 각각 오늘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대체"(p.149)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대체는 기존의 것과는 달리, 가시적인 폭력을 배제하고 더욱 교묘한 '착취' 메커니즘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할만 하다.

   정 교수는 이러한 자본의 무차별적 난동에 저항하기 위해 '문화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는 이미 신자유주의적 구호 아래 정리돼 있으며, 정치 또한 아무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창조를 향한 저항, 저항을 통한 창조는 세계화 시대의 문화가 담당할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고 본다. 보다 구체적으로 문화를 위시한 지역적 통합에 주목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관련해서는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동아시아적 가치를 새롭게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 말고도, 지난 20세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회고, 우리나라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성장했던 여러 대항 논리들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 안에 있는 모든 글들이 정 교수가 생전에 두서없이 집필해 놓은 '초고'인 까닭에 정리가 덜 된 문장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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