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더 올바르지 못하게 되는 쪽으로 인도하게 될 삶은 더 나쁜 것이라 하는 반면에, 혼을 더 올바르게 되는 쪽으로 인도하게 될 삶일 경우에는 더 나은 것이라 하면서 말일세.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상관치도 않을 걸세.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게 최선의 선택임을 우리가 보았기 때문이네. 이 소신을 그야말로 금강석처럼 굳게 지니고서 저승(하데스)으로 가야 할 것이네. - 플라톤, 국가 p.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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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달여간을 지리하게 잡아온 플라톤의 '국가'를 다 읽은 후, 나는 잘짜여진 종교서적을 읽었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과 인간은 유기적으로 엮여 돌아가며, 따라서 자연의 원리 속에서 인간의 그것 역시 발견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구조는 800여 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을 통해 철저하게 유지되었다. 다른 것을 배제하더라도, 논리의 완결성만큼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깨기 어려울 듯 했다.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국가의 4가지 정체, 그 변화과정과 훗날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완결된 6정체론은 현재까지도 그 의의를 상실하지 않았다고 본다. 역사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평가받는 민주주의의 위험성, 그것으로 인해 참주정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그의 지적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의 히틀러체제를 완벽하게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요즘 유럽정치의 가장 위협적인 정치세력으로 주목받는 우파포퓰리즘의 대두까지도 예견하는 듯 하다.
또한, 플라톤이 이상시하고 있는 철인통치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교육'은 현재의 민주주의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혼합정치체에서 '중산계급의 원리'를 그 전제조건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한 이성의 확보는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1학년 시기 막연하게 품었던 이상정치체, 철인정치는 플라톤의 그 당시 생각으로도 실현불가능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플라톤 스스로도 이후 저작에서 그의 이론을 후퇴, 법치를 차선으로 선택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철인왕은 그의 천재적인 형이상학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한편, 철인왕의 가장 필수적인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이성(reason)의 지나친 강조는 훗날 인간우월주의, 유럽중심주의의 원흉이 되었다고 본다. 근대 이후 홉스에 의해 인간의 이성이 계산능력(capaciting avility)으로 평가절하되기는 하지만, 홉스 역시 자신의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의 이성에 의한 국가건설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플라톤의 과오는 재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1권부터 시작된 정의논쟁 중의 질문, "정의로운 사람이 실제로 잘 사는 것이냐?"의 대답을 '혼'의 문제 내지는 사후세계로 돌려버린 것은 끝끝내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혼', '사후세계'는 그의 철인통치론과 더불어 그대로 중세 '기독교사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현재의 기독교근본주의까지 문제삼을 수 있다고 본다. 나의 정의에 관한 생각이 여전히 '트라시마코스'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 전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이상주의'는 여전히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한달동안의 노력 끝에 얻은 소중한 결실이다. '현상은 현실주의로, 이념은 이상주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