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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최근 다시 김훈을 들었다. 지난 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들었다. 이제 100쪽 정도를 읽고 있는데 예전과 사뭇 다르다. 문장이 눈에 들어오고 호흡이 읽힌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앞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 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길임을 안다."(17쪽)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5개월 남짓,최근에 날씨가 추워지면서 잘 못타고 있긴 하지만,<자전거 여행> 서문에 쓴 김훈의 자전거 타기에 대한 묘사가 몸으로 읽힌다. 참 적절하고 인상적인 묘사다.
"1단 기어의 힘은 어린애 팔목처럼 부드럽고 연약해서 바퀴를 굴리는 다리는 헛발질하는 것처럼 안쓰럽고, 동력은 풍문처럼 아득히 멀어져서 목마른 바퀴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데, 가장 완강한 가파름을 가장 연약한 힘으로 쓰다듬어가며 자전거는 굽이굽이 산맥 속을 돌아서 마루턱에 닿는다."(18쪽)
이전에 김훈의 문장을 처음 대했을 때 신경쇠약적인 집착아닌가 생각했다. 사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지나치게 불필요하게 화려한 수사 내지는 말장난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자전거에 대한 묘사를 접하며 야~~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맞다, 너무 맞고 그가 표현하는 문장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가 읽힌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나 느끼고 있었던, 경험하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를 우리의 언어로 이렇게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풀어내다니. 그렇구나. 그런거 구나.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19쪽)
옳소, 그렇지,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거지. 자전거를 타면서 바라는 건, 깨닫는 건, 체험하는 신비는 이 문장에 담긴 그래 바로 그거지. 김훈의 문장에서 느낀 낯설음은 내 각성되지 못하고 무뎌진 감수성때문이었다. 짧은 프롤로그 속에 담긴 문장의 울림이 크다. 이래서 김훈을 읽는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