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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죽음 1 (보급판 문고본) - 서양미술에 나타난 죽음의 미학
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결혼식은 혹 못가더라도 장례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는게 삶의 작은 원칙이다. 결혼식이야 내가 축하해주지 않아도 둘이 벌써 신이 나 있고 갈수록 천편일률적인 결혼식, 식당밥, 참 피곤하다. 결혼식장에 얼굴도 내밀지 않고 부조하고 식당으로 향하는 어른들이 예전엔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 심정을 헤아릴만하니 나도 다 되었나 보다...ㅋㅋ
장례식은 참석할 때 마다 상황이 다르고 분위기가 달라 참 곤혹스럽다. 불편하고 조심스럽고 어렵다. 그래도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을 함께 하고 그 자리에 잠시 혹은 하룻밤을 있어 주는 거 그게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이다.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지나온 시간과 살고 있는 현재를 성찰하게 하는 힘에 끌리나보다. 여하튼 장례식은 가야하고 가고 싶다. 장례식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떠나보낸) 이들에게서 곁에 둔 이들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얻고 오는 참 신비로운 시간이다.
어린시절 동네 어르신의 죽음은 마을 잔치였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의 죽음을 공감할 만한 능력이 없던 어린시절, 장례식은 평소에 먹지 못했던 음식을 먹는 명절과도 같은 날이었다. 사람들은 유순해지고 어린녀석들에게 갑자기 친절해지는 시간이었다. 그 때의 죽음은 모두의 죽음이었기에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고 울었다.
슬픔은 나누는 만큼 준다고 모두가 함께 슬퍼하는 죽음은 견딜만하고 울만했다. 죽음의 과정은 공유되고 소통되었다. 상여가 집집마다 돌고 마을 구비구비를 돌았고 모두가 죽은이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 그 퍼포먼스의 순간이 삶에 가져다주는 마법같은 성찰과 새로운 인식은 현재를 값지게 살아야 할 이유를 체험적으로 배우는 찰나였다. 죽음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삶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연장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죽음을 멀리 치워버렸다. 죽음은 병원이라는 공간의 구석에서 진행되는 아무도 볼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는 의료행위, 곧 의사의 진단이 되어버렸다. 슬픔은 사라졌고 눈물도 개인의 것이 되었다. 죽음의 공포와 슬픔은 멀리 치워버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죽음에 대한 우리의 어리석은 전략은 죽음이 삶으로 가져다주는 신비로움마저 제거해버렸다. 죽음을 삶에서 억지로 떼어내고 치워버리고 홀대하자 삶도 죽었다.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1,2>은 서양 미술에 나타난 '죽음'에 대해 추적한다. 고대로 부터 중세를 거쳐 낭만주의와 바로크시대를 넘어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죽음을 맞이하는 전략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죽음의 미학을 다룬 <춤추는 죽음>은 렘브란트, 로댕 뭉크, 고야 서양미술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천재 화가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삶의 유한성을 명상할 줄 아는 예술가들은 죽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공포를 창작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말한다."(YES24 북 리뷰)
인류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죽음의 역사, 죽음은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다르게 죽는다."(8쪽) <춤추는 죽음>은 시대마다 죽음을 맞이했던 이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저마다의 다른 방식과 전략'을 화폭에 담았던 예술가들의 눈을 통해 죽음을 성찰한다.
두 역사학자의 방법론을 빌어 미술작품 읽기를 통해 진중권이 들려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혹은 죽음을 다루기에 흥미진진하다. <춤추는 죽음>에 담겨있는 작품들은 한 달에 한 점 정도 하루를 떼어 깊이 현재를 성찰하는 학습의 도구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이 책에 담겨있는 죽음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는 1년에 한 번씩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충분하다. 오랜동안 곁에 두어도 좋을 참 착한 책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잔치하는 집에 있느니라"(전7:2,4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