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후드의 모험 -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7
하워드 파일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로빈후드에 대한 환상을 확실하게 갖게 해준 작품을 꼽으라 하면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로빈훗>을 선택하겠다. 너무 오래전이라 다른 건 기억나지 않아도 활 시위를 당기고 있는 로빈훗을 담은 포스터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식으로 표현을 하자면 의적인데, 당시에는 Prince of Thieves라는 표현이 어찌나 입에 착 달라붙던지 언젠가 꼭 셔우드 숲에 가보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년 후 나는 셔우드 숲에서 가슴 뛰는 산책을 하게 되었다, 혹시 로빈훗의 만찬에 초대되지나 않을까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  잡담으로 시작했으나, 이만큼 로빈훗은 어렸을 때부터 상상 속 모험의 세계에 자주 빠지곤 했던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이야기였고 아마도 어른이 된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작품을 읽은 듯 하다. '태런 에저튼'이 캐스팅된 영화 <로빈후드:오리진>도 올해 하반기에 개봉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현대지성의 17번째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이번 작품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으로 쓰였다보니, 굉장히 쉬운 문체와 마치 BGM이 깔린 듯한 운율이 느껴지는 이야기 방식은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게 했는데, 현재까지 내려오는 로빈 후드의 이미지는 아마 하워드 파일이 오랜 전설 속에서 불러낸 로빈 후드의 그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삽화가였던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까지 그대로 담아 재미를 더한다.


   젊은 혈기가 낳은 실수로 삼림 감독관을 죽이게 된 명사수 로빈이 셔우드 숲에 둥지를 튼 후 어떻게 부정한 권력과 압제에 시달리던 사람들과 동지가 되어 전설이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혼자였던 로빈이 자신의 오른팔이 되는 리틀 존과 그 외 다른 충직한 부하들을 얻게 되는 과정, 부패한 권력의 대명사인 노팅엄 주장관과 헤리퍼드 주교를 대상으로 한 통쾌한 복수극, 그리고 각종 활쏘기 경기와 육척봉 겨루기에서 솜씨를 자랑하는 이야기 등은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묘사하는 부분은 너무 세밀하여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는 듯 하고, 기름이 살짝 도는 사슴고기나 거품 가득한 수제 맥주에 관한 묘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오늘날 먹방에 절대 뒤지지 않는 배고픔을 선사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이나 13세기 영국이나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이 민중을 착취하고 무시하는 행태는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로빈후드가 실존했다 하더라도, 로빈후드가 한명이 아니라 100명, 1000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세상이 변했을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시대를 거쳐 구전되거나 기록으로 남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날강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던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수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문학으로 남을 것이라 믿어본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 법.

   로빈후드의 묘비명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모험도 끝난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셔우드 숲을 그리워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