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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정유경 지음 / 시공사 / 2017년 10월
평점 :
나는 처음 들어보지만 저자가 역사 특히 왕가들의 이야기로 유명한 블로거라고 한다. 평소에 그녀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이 바탕이 되어 탄생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학교다닐 때 세계사 선생님이 아이들의 눈에 촛점이 흐려질 때쯤 비장의 무기로 꺼내드는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기분이었다.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저자가 선택한 방식은 왕, 즉 권력의 이동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럽의 왕들이 주인공이다. 물론 책의 뒷부분에 유럽의 식민지였던 브라질과 멕시코, 그리고 인도 무굴제국과 오스만 제국도 등장하지만 모두 유럽의 역사와 연계되어 있다. 당시 세계가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세계사라는 시각은 다소 과장된 듯 하고 중세에서 근대까지 유럽 왕가들의 권력 다툼에 관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인간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늘 자신이 현재 서 있는 위치보다 높게 올라가고자 하는 본능이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탐하게 되고 설령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는 주위 사람은 물론이고 친족 혹은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 버리는 일이 발생하는데 유독 유럽의 중세사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였다. 특히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동맹결혼이 흔했던데다가 근친으로 인한 복잡한 가계도는 결국 왕위 계승의 시기가 다가왔을 때 엄청난 권력암투가 벌어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능력없는 군주이든, 백성들에게 사랑받고 칭송받는 군주이든 유한한 인간이기에 언젠가는 가직 권력을 재분배해야하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고 그 막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기회를 엿보는 자는 역사 속 새로운 등장인물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역사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을 중심으로 역사가 재편되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므로 단기간에 시대의 지도를 그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적당한 방식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자는 이야기를 수직으로 배열한다. 즉, 한 나라 혹은 지역의 권력의 이동경로를 시대 순으로 설명한 후 다시 거슬러 올라가 다른 지역의 권력 이동 경로를 설명하는 방식이라 시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수평적 배열을 머릿속으로 그려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너무 많은 생각을 하려하지 말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시 유럽 전체의 권력 가계도가 점차 눈에 들어오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있는 왕가들의 가계도는 저자가 이 책에 들인 엄청난 노고를 짐작하게 한다. 역사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처음 접하는 역사서로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