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한 작가분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분들이 많길래, 거기에 호평까지! 그래서 나도 대열에 동참해보았다. 서점의 분류에 따르면 과학서라고 되어있지만 과학서라기보다는 저자의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성장과 식물의 성장이 번갈아가며 박자를 맞추듯 펼쳐진다. 과학 교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실험도구를 장난감 삼아 놀면서 과학자의 꿈을 갖게 되지만 당시 과학자들의 세계란 여성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꽤나 높았던 모양인지 (지금은 어떤지 철저한 문과생인 나로서는 여전히 모를 일이지만) 자런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마주쳐야 했던 '유리천장'에 관한 부분은 비단 과학계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성들이 전문분야에서 자신의 경력을 계속하고자 할 때 어떤 단계에서든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숙명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하는 나무와 식물에 관한 연구는 대단한 발견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엄청난 물질적 이익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저자는 그런 과학을 '호기심에 이끌려서 하는 연구'라고도 부르는데, 그런 연구들에 대한 국가의 투자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 역시 순수과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를 꺾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좋아서 하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자런은 자신의 삶을 미화시키지도 않고 더 불행하게 보이게끔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고 솔직하게 일기를 써내려가듯 들려준다. 발아하기 위해 수백년을 기다리기도 하는 씨앗처럼 과학자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했던 일들을 풀어놓는다. 아르바이트로 수액을 만들던 경험부터 인생의 소울메이트가 된 빌의 이야기, 연구비를 타내기 어려워 빌에게 충분한 월급을 주지 못했던 시절을 비롯 우울증으로 괴로웠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사랑하는 클린트를 만나고 아들이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탈탈 털어놓는다. 식물의 이야기와 그녀의 이야기가 교차로 반복되면서 식물의 삶과 그녀의 삶이 마치 칡 넝쿨처럼 얽혀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녀는 식물과 나무의 미래를 걱정한다. '식물들이 4억년 전에 고생 끝에 푸르게 만들었던 곳에서 식물의 흔적을 없애'고 이 모든 과정을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걱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날마다 들여다보고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인간을 상상한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씨앗처럼 그녀 역시 결국은 인간이 식물을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 같은 과학서라니..아름다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