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6년 작품인지라 초반 작품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처럼 생각되는 작품이다. 드라마나 영화 제작도 많이 될만큼 탄탄한 플롯과 드라마적인 요소가 잘 조화되어있는 소설이라 그럴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이지만 이번에 번역도 좀 다듬고 해서 새로운 판본이 나와서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흔히 일본 추리소설하면 통상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잔혹, 엽기 등의 단어를 비껴가는 두 작가가 있는데, 한명은 미야베 미유키이요, 다른 한명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살인사건'이라는 범죄안에서도 순수와 사랑과 헌신 같은 용어를 떠올리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의 많은 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시작한다. 고전적인 추리 소설에서 보여주는 '누가 범인인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왜' 범인이 이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에 초첨을 둔다. 마치 수학 문제 같다고나 할까. 예전의 수학 시험이 풀이 과정은 생략한 채 정답만 맞추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정답보다 풀이과정을 중시하는 것처럼, 소설 역시 자신을 괴롭히는 전 남편을 죽인 야스코와 미사토 모녀를 도와 범죄를 은폐하는 옆집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공범임을 우리는 소설 첫 부분에서 이미 알게된다. 이시가미가 모녀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경찰들의 선입견을 이용해 수사에 혼선을 주는 행위는 '기하학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함수문제'라는 그의 말과 닮아있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약간 우쭐해진다. 범인이 누구인 줄 모르는데다가 이시가미가 곳곳에 완벽하게 펼쳐놓은 함정들에 걸려든 형사들보다 어쩐지 내가 더 나아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가 함수문제라는 걸 모르고 기하학의 공식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리포트의 과제를 물성론으로 풀어나간 학생에게 왜 그렇게 했냐는 유가와의 질문에 '그게 물성론 시험이라서'라고 말하는 그 선입견에 우리도 빠져있었던 것이다. 이시가미가 만든 알리바이는 허점이 있는 듯 하면서도 완벽해서 형사들이 알리바이의 깨질듯한 허점에만 집착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가 야스코와 미사토 대신 사체를 처리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행위가 그의 '헌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철통 같은 알리바이가 깨질 때 그의 진정한 헌신이 드러난다. 사건은 갈릴레오라고 알려진 '유가와'라는 물리학 교수가 개입하면서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데, 유가와 교수는 단순히 사건의 해결이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시가미의 대학 동창으로 등장함으로써 이 소설의 '헌신'이라는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 추리 소설의 특성상 다시 읽으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라는 편견을 제대로 깨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감사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