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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8월
평점 :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을 읽을 때마다 읽게 되는 요 멘트. 그리고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요 멘트.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물을 계속 쓰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소설 <메롱>은 시치베에 할아버지의 권유로 우미베다이쿠초라는 동네의 망한 요릿집을 인수해 '후네야'라는 요릿집을 시작하게 된 오린네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오린과 후네야에 사는 다섯 귀신의 이야기이다. 미미여사의 다른 에도 시대물은 에도 시대라는 특정 시대에 관한 배경 지식이나 당시의 계급 구조 등의 선행 지식이 없으면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운게 보통인데, 이번 소설은 그런 배경 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귀신들이라니, 어쩐지 우리집에도 두고 싶다는 그런 생각? 특히 안마 할아버지 와라이보..^^;
그런데 책의 제목은 왜 메롱일까? 후네야에 사는 귀신 중 오린만 보면 여지없이 '메롱'을 하는 꼬마 귀신 오우메가 있다. 오린은 오우메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아이인 히네가쓰에게는 메롱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만 보면 메롱을 해대는 오우메가 짜증난다. 그런 오우메에게 잘 생긴 귀신 겐노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복잡하거든. 좋아하는 상대, 마음을 끌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는 오히려 솔직해지지 못할 때가 있어. 오우메가 네 앞에 나타나서 메롱을 하는 이유도 똑같은 게 아닐까." (p341)
오우메는, 고아이면서도 엄마,아빠를 갖게 된 걸로도 모자라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오린이 부러웠다. 세상에는 그런 아이도 있는데 어째서 자신은 친아버지에게 살해되어 우물에 던져졌어야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물 안에서 수십번의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우물 안의 차가운 물이 자신의 몸을 씻고 뼈를 씻는 동안에도, 자신을 죽이고 버린 아버지가 결국에는 자신한테 와 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었다면 이승을 떠돌며 오린에게 고작 메롱이나 하는 원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에는 여러명의 귀신이 등장하는데, 굳이 몇번 나오지도 않는 오우메의 '메롱'을 제목으로 정한 것에는 인간의 속마음 즉 본성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이번에도 미미여사는 '절대 악'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이유없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원령이 되어서까지 살생을 하는 고간지 절의 주지마저 부처의 존재에 대한 왜곡된 믿음과 집념이 낳은 비극으로 그리고 있다. 결국 귀신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응어리를 투영한 존재인 것이다. 그 응어리를 어떻게 풀어내는냐에 따라 주지가 될 수도, 긴지가 될 수도, 아니면 오린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