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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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에 남아있는 한 조각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대하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지키는 마지막 존엄성에 대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나쁘거나 추해질 수 있다는 자각에 대하여.

 이것조차 잃고 나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재판할 수 있겠는가." (p311)


   최근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우리의 눈을, 우리의 귀를 의심케 하는 국정농단 사태를 겪었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로 인해 많은 일반 국민들이 우리나라 '헌법'에 관심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평소에 법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아니며 법원이라고는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법이란 것에 대해 알고싶은 욕구가 생겼으니 국정농단이 가져온 드문 바람직한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현직 부장판사가 쓴 소설이다. 재미없는 법문과 사건기록만 볼 것 같은 20년차 판사가 책벌레 기질을 살려 자신의 직업인 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면 재미있을까?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자신의 직업인만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사실에 충실할 수 있어 개연성과 보편성이 보증된다. 반대로 너무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사실에 충실하려다 보면 재미가 떨어지고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제목인 미스 함무라비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나서야 하는 주인공 박차오름 판사의 기질을 빗대어 지은 별명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의 한 구절에서 비롯된 것인데, 사실 함무라비 법전의 이 문장은 자신이 지은 죄와 똑같은 벌을 받아야한다고 해석하기 쉬우나, 우리의 미스 함무라비, 박차오름 판사의 생각은 다르다. "평민이나 노예가 귀족이나 힘있는 사람의 털끝 하나만 실수로 건드려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던" 시대에 "피해와 동일한 만큼의 처벌만 허용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복수를 엄청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호..그러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이 말은 오히려 귀족들의 힘자랑을 막기 위한 법이었다는 것이다. 함무라비와 같은 정의의 사도 박차오름 신출 판사와 까칠하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한세상 부장판사 그리고 시니컬하지만 박차오름 판사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임바른 판사가 속해있는 제44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이지만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때마다 법조 용어와 그들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을 위한 설명이 덧붙여있어 이해를 돕는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긴 첫번째 에피소드와 마지막 에피소드의 연결과 제44부 세 판사의 인연을 밝혀주는 결말은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였다.


   그래서 이 소설이 재미있냐고? 이 판사님 소설 좀 더 쓰셔도 될 것 같다고 말하면 답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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