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의 몸 - 몸을 통해 탐색한 중세의 삶과 죽음, 예술
잭 하트넬 지음, 장성주 옮김 / 시공아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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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암흑기', 실제 영어로도 Dark Ages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부흥과 르네상스 시대 사이에 꼽사리로 끼어서 거의 천년의 시간을 통틀어 암흑기라고 싸잡아 부른다는 사실을 중세에 살았던 이들이 들으면 뭐라고 할까. 학교 다닐 때 세계사 과목에서도 중세는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시험문제에도 전쟁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면 등장하지 않았던 듯 하다. 사실 그 때를 암흑기라고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특정 종교로 인해 인간의 이성과 자유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문화적 암흑기로 인해 중세를 읽어낼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문화적 암흑기에 살았던 이들의 삶을 재현해 내기가 어려워 더더욱 중세는 암흑기라는 단어 속에 묻혀버렸다.


   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을 파고들었다. 많지 않은 중세 시대의 유물과 자료 등을 통해 중세 시대를 살아냈던 이들이 자신들의 몸의 작동방식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통해 중세인들의 삶과 죽음의 일반적인 모습들을 그려보고자 했다. 중세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머리부터 시작해서 감각기관, 피부, 뼈, 심장, 피, 손, 배, 생식기 그리고 발까지 신체의 주요 부위별로 나누어 중세인들의 삶을 충실하게 구현해낸다. 이는 중세 시대 의학 저술가가 치료법을 기록할 때 사용했던 '아 카피테 아드칼켐(머리에서 발꿈치로)' 방식이다.


   책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게다가 재미있다. 중세 유럽인들이 몸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로 현대까지 언어의 어원 등을 통해 남아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기상천외한(정말 지극히 창의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몸을 치유하려고 했던,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자면 어린 아이들도 그런게 돌팔이짓이라고 생각할 법한 치료 방법 등도 난무하기는 했으나 인간의 몸과 그 작동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와 노력까지 폄하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우리가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하트의 모양새가 중세의 산물이었다니 깜놀!) 저자의 필력이 대단해서 글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고고학적 자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필사본에 담겨있는 삽화들이 글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저자의 말대로 중세의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르네상스'라는 말이 괜히 등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암흑시대에 좀 더 밝은 빛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에는 백번 공감한다. 그들도 천년 동안 삶을 이어갔으니 그들의 삶도 역사 속에서 당당하게 존재를 드러내야 할 명분이 있는 것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하나 - <손>에 있었던 내용인데, 중세에는 인쇄술이 없었으니 당연히 모든 책을 필사로 만들었다는 건 잘 아실거다. 10세기의 한 필경사가 책을 부주의하게 다룬 당대의 독자들에게 불만을 토로한 부분을 공유해본다. 보존가들이 책에서 가장 때가 많이 묻은 부분으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단락을 찾아내기도 한다니 말 다했다. 심지어 경전의 경우는 이러한 훼손을 막기 위해 손 모양으로 만든 지시봉으로 책을 읽도록 했다고 한다(선생님이 지시봉으로 칠판에 쓴 글씨를 짚어나갔던 게 생각나는군).


글쓰기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궁금하다면, 보라, 글을 쓰는 사람은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굽고, 배와 갈비뼈가 끊어질 듯이 쑤시고, 콩팥이 고통으로 가득 차며, 몸에 온갖 병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므로 독자여, 책장을 넘길 때에는 천천히 넘기고, 손은 책에서 먼 곳에 둘지어다. 우박 섞인 돌풍이 작물을 망치듯이, 부주의한 독자는 책과 글을 모두 망가뜨리나니.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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