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였던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녀를 프랑스로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보낸 후 편지를 통해 당부 또 당부를 했던 건 엄마로서의 직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걱정이 결국은 현실이 되었다는 걸 못보고 죽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솔직히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어떤 말로도 스스로를 변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과 압제 그리고 지독한 가난으로 고통받을 때 과도한 사치와 개인의 향락을 위해서 국고를 탕진하고 왕비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백성에 대한 관심을 외면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을 핑계삼아 그녀를 희생양으로 기어이 단두대에 올린 이들 역시 용서받기 힘들다(그들 역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특히 아홉살짜리 아들에 대한 근친상간 죄목이라니, 혁명을 주도하던 로베스피에르조차 이 어이없는 죄목에 분노했다고 하니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던 혁명 정신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나라를 위한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낯선 나라에 보내졌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오스트리아는 끝내 모른체했다. 한 때는 프랑스 왕비였던 그녀를 프랑스는 단두대에 보내고 시신조차 묻어주지 않았다. 이 두 나라는 지금 그녀를 어떻게 기억할까. 저자가 아무리 고증을 철저히 하였다고 해도 저자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사견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적어도 그녀의 운명이 굳이 단두대에서 끝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예절에 따르면 서열이 낮은 부인은 자기보다 서열이 더 높은 여성에게 절대 먼저 말을 걸 수 없었다고 한다. 높은 지위의 여성이 말을 걸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당시 프랑스 여성 중 가장 서열이 높았던 이는 아직 왕세자비 신분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15세의 애첩인 뒤바리 부인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그렇게 기다렸건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계속 그녀를 무시했는데 이것이 시할아버지이던 루이15세를 화나게 해서 오스트리아가 폴란드 분할에 동의한 날강도 짓을 문제 삼아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엄마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기겁을 해서 '그저 안녕하세요 한마디 하는 게' 뭐 그리 불쾌한 일인지 물을 정도. 정월 초하루 국왕을 위한 신년 하례에서 서열에 따라 왕세자비 앞을 지나가는데 드디어 뒤바리 부인이 왕세자비 앞에 서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은 베르사유에 사람들이 많네요".. 프랑스어로 이 일곱단어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로부터 폴란드 분할에 대한 무언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위력을 가진 일곱단어가 아닐 수 없다. 허허..정작 마리 앙투아네트를 미워해야 할 사람들은 폴란드인일 듯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