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 식민지 조선이 만난 모던의 풍경
김기철 지음 / 시공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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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을 볼 때면 등장하는 풍경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표현하는 시대를 상징하는 사물들이나 장소, 옷차림 등이 그것인데 비단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근대는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 역시 한 발 성장하고 깨우침을 얻는 시대이기도 했다. 일본이 흔히 일제 강점기를 옹호하면서 하는 말이 자기네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다고 하는데, 웃기는 말이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지 않아도 시대는 변하고 발전하기 마련이며 누구에 의해 강제로 심겨진 근대화 의식은 편향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당시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중심으로 경성의 풍경을 재현해 낸 작품이다. 일상의 풍경부터 시작하여 모던 걸, 모던 보이라 불리우던 사람들의 모습, 유행하던 핫템들, 마구 쏟아져 들어오던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사상에 대한 엇갈린 반응, 근대화가 드리운 그림자, 그리고 '모던과 식민의 경계'에서 자신의 운명을 넘어선 도전까지 시대의 다양한 모습들을 책 한 권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어느 때보다 음식배달이 성행하고 있는 지금인데 1920년대 경성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물론 당시에는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였지만 주로 배달했던 음식은 설렁탕, 국밥, 냉면, 중국음식이었다니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 게다가 날이 안좋아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모든 걸 배달하는 이들이 책임져야 했다는 점, 그래서 경성의 라이더들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동맹파업까지 했다니 100년 전 사람들도 그렇게 시대를 살아냈구나라는 생각에 뭔가 뭉클했다.


   당시 신문에 새로운 유행어를 소개하기도 했다는데 재미있었다. 모뽀(모던 뽀이)처럼 줄임말을 쓰기도 했고 태업을 뜻하는 사보타쥬 같은 단어를 나쁜 버릇을 가진 남편을 길들이기 위해 아침에 깨워주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을 빗대어서도 쓰인 것도 재치있게 생각되었다. 한가지 씁쓸한 점은 외래어의 대부분이 일본을 통해서 소개되다 보니 일본어 발음에 준하여 만들어졌다는 것. 단순한 용어 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학작품 역시 일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다 보니 심지어 오역된 부분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가벼운 풍경부터 여성해방이나 노동운동 같은 의식의 근대화가 가져온 시대적 반응도 알 수 있다. 심지어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일부 지식인들조차도 여성해방이나 노동운동의 영역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이기도 했고 여성의 정체성을 여전히 남성의 필요에 따른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다는 점이 서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근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이를 이용하는 형태도 모두 달랐다. 어떤 이들은 단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울 뿐이었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배우고 알게 된 것을 다른 이들을 위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다. 굳이 독립운동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함에 항의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의지였다. 변화된 시대를 살아가고자 했던 의지. 앞으로 100년 뒤를 살아가는 후손들이 우리 시대를 되돌아 볼 때, 그런 의지를 보게 될까.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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