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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애너벨 앱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4월
평점 :
영국 음식은 맛없다라는 누군가에게는 사실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편견일 수도 있는 말이 있다. 영국 음식하면 피시 앤 칩스 정도나 떠오를까 도대체 뭐가 영국 전통 음식이지? 라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외국인들의 생각만은 아니었나보다. 이 소설은 실존 인물에 바탕을 둔 작품인데, 현대 영국 가정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이라는 인물의 삶에 허구를 더한 것이다. 시대적 배경이 19세기인데, 이 때부터 이미 영국 음식은 별로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로 내세운 가설(혹은 진실)이 흥미롭다. 과거 언젠가는 영국 음식이 훌륭했지만 요리나 주방 일이 하인의 일로 치부되고 프랑스인 요리사들을 주방으로 들이고 나서부터 영국 요리의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것.
일라이저 액턴은 한마디로 좀 있는 집안의 자제였는데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한마디로 야반도주를 하게 되면서 어머니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게 된다. 하지만 일라이저는 그저 그런 흔하디 흔한 영국 숙녀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시집도 출판한 여성이었는데, 두번째 시집 출간을 위해 찾아간 출판사에서 요리책을 출간해 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굉장히 모멸감을 느끼지만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제대로 된 요리책이 없음을 개탄하게 되고 영국 가정식 요리의 모든 것을 시적인 감성을 담아 써보기로 결심한다. 지금 우리가 참고하는 요리 레시피의 형식이 그녀 덕분이라는 사실.
이야기는 일라이저와 일라이저의 집에 하녀로 들어오게 되는 앤 커비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데 일라이저와 앤의 개인적인 비밀스런 부분이 이야기의 진행에 잘 섞이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리에 대한 부분과 사생활에 대한 부분이 그냥 서로 평행선을 달릴 뿐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아쉬운 느낌. 그리고 그렇게 출간된 요리책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마무리 역시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생각해보면 실존했던 인물을 허구로 그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영국음식이나 영국주방에 대해 좀 더 방점이 찍혀있을 줄 알았던 나로서는 좀 싱거운 기분이었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일라이저 액턴의 진짜 삶에 관한 내용을 부록에서 언급했는데, 놀랍게도 그녀가 시인이었다는 점, 희곡을 쓰기도 했다는 점은 정말 팩트였고 그녀의 연애사에 얽힌 사생활 역시 어느 정도는 그녀의 전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녀의 요리책이 형식만 살짝 바꾸어 도용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심지어 그녀가 살아있을 때도)은 그녀의 요리책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말해준다. 이 소설은 뭔가 시각적인 영상물로 만들어진다면 훨씬 매력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