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자 하나가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그런데 이건 진짜다. 그동안 숱하게 인류에게 영향을 준 식물들의 역사와 그것들이 어떻게 전 세계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것을 운반했던 상자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다.


   의사이자 아마추어 박물학자였던 너새니얼 워드는 식물 애호가이기도 했다. 산업혁명 시기의 런던은 대기오염이 최악이었는데 그러한 환경에서도 식물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실험하던 워드는 어느 날 밀폐된 유리병 안에서 양치류가 어떤 손길도 받지 않은 채 수년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실험을 시작으로 발명된 일명 '워디언 케이스' 즉 '워드의 상자'는 이후 100년동안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세계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19세기는 제국주의가 강성했던 시기이다. 새로 개척한 식민지에서 발견한 귀중한 식물들을 본국으로 가져오고 본국의 유용한 식물들을 식민지에 심고 싶어하던 열강들은 긴 항해를 견뎌내지 못하는 식물들의 운반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 워디언 케이스의 발명이 그들의 열망과 소원을 들어준 지니가 된다. 워디언 케이스는 모양은 다양했지만 그 원리는 같았는데, 상자에 흙을 깔고 식물을 심은 다음 유리를 끼워 밀폐시키는 것인데, 식물 스스로 호흡과 광합성을 하면서 외부와는 다른 대기 조건에서 살아갈 환경을 조성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즉, 다시 말해 하나의 환경이 이동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워디언 케이스는 새롭고 진기한 식물에 열광하던 이들에게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는데, 이로 인해 전 세계의 다양한 식물들이 이동하게 되어 식물학의 발전에 공헌하기도 했고 식물 열풍으로 인해 각지에서 식물원과 종묘원이 설립됨으로써 '아름다움의 이동'이라는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워디언 케이스의 역할이 여기까지였다면 아마도 세계사를 바꾸었다고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식물의 장거리 이동이 제국주의의 욕망과 맞물리면서 워디언 케이스는 의도치 않게 식민 통치의 도구가 되었다. 워디언 케이스를 통해 이동한 식물들은 식민지에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우는 기반이 되었고 현지 토착민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로 전락했다. 물론 워디언 케이스 하나로 제국주의가 흥하지는 않았겠지만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영국의 한 아마추어 박물학자가 발명한 워디언 케이스 하나가 전 세계에서 사용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워디언 케이스는 극소수이다. 왜일까? 이는 워디언 케이스가 가져온 또 하나의 재앙과 관련이 있다. 살아있는 식물을 운반하는 것은 환경 그러니까 생태계를 운반하는 것이다. 현재 나라들이 다른 곳에서 온 여행객들을 받아들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검역'이다. 식물이나 과일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엄격한 곳은 신발에 묻어있는 흙까지도 검역대상이다. 외래에서 들어오는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많은 것들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검역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워디언 케이스로 인한 자유로운 식물 이동은 토종 생태계의 교란을 야기했고 병균과 해충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검역'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한번 사용된 워디언 케이스는 모두 소각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물들의 이동을 도운 워디언 케이스가 해충과 병균까지 옮겼는데 또 그들을 죽이기 위한 천적까지 실어날랐다고 하니 워디언 케이스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상자 하나로 무슨 이야기거리가 이리 많나 했는데, 단순한 상자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열망과 욕망이 담긴 세계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한 주인공이었다. 이런 관점에서도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니 놀랍다. 거의 남아있지도 않고 박물관에서야 겨우 한 두개 볼 수 있는 상자에 담긴 이야기를 추적하여 역사를 복원해 낸 저자의 집요함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세계의 유명 식물원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시각으로 워디언 케이스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