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이 말했다 - 2021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 영어덜트 부문 대상 수상작 스토리잉크 1
제레미 모로 지음, 이나무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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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노블을 가볍게 생각하면 된통 당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요즘 출간되는 그래픽노블의 경우 창의적인 내용과 아름다운 그림에 빠져들어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표범이 말했다> 역시 제목만으로는 그 의미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을 듯 했다. 표지만 보아도 그림이 매혹적일 거라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그런데 상상과 짐작 이상이었다. 이 책은 그래픽노블의 형식을 빌어 쓴 한 편의 심오한 철학서이다.


   수록되어 있는 6편의 단편은 독립적인 이야기이지만 마지막장에 실린 표범의 연설과 더불어 하나로 결합되는 듯 보인다. 사실 그 부분을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지라 각각의 독립적인 단편이 주는 울림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이 책에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이 발을 들여놓기에는 너무 고결한 세상이다. 혜성이 섬에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섬을 밀어 옮기려는 물소와 그런 물소를 먹기 위해 독이 있는 이빨로 물었다가 물소가 하려는 일을 듣고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며 죽어가는 물소를 돕는 도마뱀. 도마뱀은 물소가 죽자 아무도 물소의 시체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고 물소를 묻는다. 주변의 평판에 신경 쓴 나머지 낮에는 자신의 얼굴을 땅에 묻고 살던 타조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회복하는 장면이나 아름다운 집에만 집착하다 평생을 떠돌이로 외롭게 살아가는 소라게가 자신을 '과거의 삶을 짊어지고 헤매는 저주받은 방랑자'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뜨끔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까.


   섬의 모든 동물들이 현자인 표범 소피아의 말을 듣기 위해 모인다. 도마뱀이 죽은 물소를 묻어버린 덕분에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 동물들이 표범의 의견을 기다린다. 살아있을 때는 평등하게 살아가던 동물들이 죽음으로써 위계질서가 생기는 것을 표범은 경계한다. 죽음은 특별하지 않고 그저 상태의 변화일 뿐이며 사자의 죽음도 개미의 죽음도 똑같다고 강조한다.

죽은 자를 산 자들과의 연결 고리에서 제외하는 날,

죽은 자들의 영광을 위해 궁전을 세워 주는 날,

죽은 자를 위해 복수하는 날,

죽은 자의 위대함을 감추는 날,

세상은 사라질 겁니다.

여러분께 바랍니다. 가볍게 살아갑시다.

죽음을 탄생만큼이나 순수한 사건이 되게 합시다. (p101)


   역시, 철학은 어떤 탈을 쓰고 있던 어렵다! 세상의 모든 일을 옳고 그름으로만 나누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관점을 표범이 말한대로 그저 상태의 변화로만 인식하고 거기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위계가 사라질까. 지금 그걸 깨닫기엔 인간은 너무 멀리 온 듯 하다.


   * 그림 특히 색상에 감탄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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