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 처음 만나는 페미니스트 지리학
레슬리 컨 지음, 황가한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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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거나 조성할 때 대상이 되는 기준이 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표준'이라는 올바르지 않은 단어로 부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을 그 '표준'이라는 것 아래 구겨넣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표준에 들어맞지 않은 이들에 대한 잘못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 현대 글로벌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는 미국을 예로 들자면 '신체 건강한 이성애자인 백인 남성'이 그 표준에 속한다. 다른 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백인' 같은 특정 인종을 지칭하는 부분만 달라질 뿐.


   저자는 '도시'를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해부한다. 도시라는 것이 어떻게 완벽하게 남성 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고발한다. 사실 거창하게 페미니스트 관점까지 가지 않아도 여성들에게 더 안전하지 않은 도시의 치안이나 남녀공용으로 설계된 건물의 공용 화장실, 유모차에 적합하지 않은 도보 조건, 기저귀를 갈만한 공간이 전혀 없는 공공화장실 등만 보아도 그로 인해 불편을 느낄 이들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건 바람직하다. 더 많은 시설들이 장애인과 아이들의 편의를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의 특성의 많은 부분을 고려하고 참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저자의 관심은 단순히 도시의 인프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 상황에 대해 남녀를 다르게 보는 시선들, 여성을 통제하는 사회적기능으로 작용하는 공포감 등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공감할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아무래도 저자가 캐나다 국적이고 지리적 활동 반경이 그 쪽이다 보니 문화적 환경이 다른 공간에 사는 내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는 했다. 반면 저자가 다루지 않은 다른 문화권에서 발생하는 차별 역시 존재할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그저 분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반성하게 만든다. 나 역시 신체 건강한 사회 중산층이라는 제한된 시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시설이나 복지에 대해 불평을 쏟아내기 전에 이런 것들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좁은 음식점이나 카페 복도에 놓아둔 유모차가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하기 전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이들도 나와 똑같이 맛있는 음식이나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즐길 권리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로 한다. 모두를 위한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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