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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의 다이어리
리처드 폴 에번스 지음, 이현숙 옮김 / 씨큐브 / 2022년 3월
평점 :
마법사가 되게 무거운 주제를 로맨스로 둘둘 말아서 주문 한 번 외우고 펼치니 해피엔딩이 되어 있더라 - 이 소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 될 것 같다. 수많은 드라마나 소설에서 소재로 차용할만한 웬만한 트라우마가 이 소설 한 편에 다 들어있다.
남주인 제이콥 크리스천 처처(약자로 하자면 JC 처처인데, 이름부터 JC -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냄새가 듬뿍. 처처는 교회를 나타내는 Church와 발음도 비슷하다)는 지금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어렸을 때 형의 죽음을 목격하고 아빠는 집을 나가고 신경쇠약을 겪던 엄마와 살다가 결국 열여섯살에 집에서 쫓겨난 상처가 있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간 적도 없고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제이콥이 사랑 이야기를 써대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진정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주인 레이첼은 태어나자마자 엄격한 종교적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부부(유타주가 배경이고 몰몬교)에게 입양되는데 자유분방한 성격인 레이첼에게 이런 부모는 끊임없는 죄책감을 심어주는 원인이 된다. 레이첼 역시 성경에서 따온 이름인데 암컷 양이라는 뜻이다. 약혼자마저 양부모와 비슷한 성격이다.
이렇게 부모와 인연을 끊고 살던 제이콥이 엄마가 돌아가셨고 제이콥이 유산 상속인이라는 전화를 받고 어릴 적 살았던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열 여섯살 이후 외면했던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엄마가 호더(저장 강박증, 집안에 온갖 쓰레기를 쌓아놓고 사는 사람)였다라는 걸 알게 된다. 집안 가득 쌓여있는 쓰레기들에 아연실색. 집을 처분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우리의 여주인 레이첼은 생모를 찾고 있다. 남주와 여주가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는 제이콥의 엄마 집에서 만난다. 레이첼은 그 집에 왜 갔을까? 제목은 '노엘의 다이어리'인데 노엘은 도대체 누구?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 그건 그냥 꽁꽁 싸매서 무의식 어딘가로 밀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것들이 튀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 본질의 무언가를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 부모가 트라우마의 원인일 때는 더더 힘들다. 이게 현실의 이야기라면 아마 평생을 노력해도 이 모든 걸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치만 우리는 그런 현실에 질려 소설을 읽기도 한다.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 되는 그런 소망을 품으면서.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논할 수는 없지만 왠지 크리스마스마다 매번 보게 되는 영화 같은 그런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