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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평점 :
코비드19가 전세계를 강타한 지 이제 만 2년이 넘었다. 처음에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언론에서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야? 사스나 메르스, 에볼라바이러스처럼 일부 지역만 창궐하다가 끝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발표가 되고 회사는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이 되었으며 국경이 봉쇄되고 일상생활마저 제한을 받았다. 마스크와 각종 소독제의 품절 대란, 생활 필수품 사재기, 각종 가짜 뉴스의 범람과 전세계에서 실려나가는 시신들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2년이 지난 지금, 코비드19는 오미크론이라는 한번의 변이를 한 뒤 계절성 독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정말이지 많은 변화가 있었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인류가 멸종되지는 않았으나 대홍수나 소행성 충돌이 지구에 일으키는 지각변동처럼 우리의 생활은 팬데믹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가지 변화를 수용했다.
이 책은 팬데믹 당시 9살이던 한 아이가 2080년이 되어 그 시대를 기억하며 쓴 글이다. 특히 이탈리아는 상황이 심각해서 한 도시 전체가 록다운이 되어 서로 오고가기 위해 통행증이 필요할 정도였으며 경찰들이 사람들의 일상을 통제했을 정도였던 지라 아마도 격리와 봉쇄가 가져오는 체감온도가 확실히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결국엔 다 지나가고 적응하고 우리들은 살아남는다. 기억들은 순화되고 왜곡되고 심지어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게다가 팬데믹이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했으므로.
밀라노의 한 아파트먼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변화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남이야기같지 않다. 이야기의 화자인 아홉살 마티아는 엄마와 누나랑 같이 살고 외할머니는 윗층에 산다. 별거 중인 아빠와는 가끔 만나지만 아빠는 없는 게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생일에 오지도 않고 자신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아빠가 자기를 보러 오는 날, 밀라노가 록다운이 되어 아빠는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티아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집안에 격리되어 버렸다! 이야기의 중심은 마티아네 가족이지만 이태리 아파트먼트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전염 가능성이 높은 병원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혐오하기도 하고 방역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고발하기도 한다. 편집증적 성향으로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기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작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2080년(물론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만)에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엄청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지난 2년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다. 앞으로도 팬데믹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계속 나오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