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의 스케치북 - 발견과 모험의 예술
휴 루이스-존스.카리 허버트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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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는 막연한 꿈 같은 것을 지니고 산다. 모두들 그러지 않나? 난 그 꿈이 바로 고고학자였다. 고고학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탐험가들의 전형적인 복장(트위드나 카키색 사파리에 망원경을 목에 걸고 지도나 라이플총을 끼고 다니고 바지 위로 양말을 올려신은 그런 모습)을 하고 그 예전 잊혀진 유적들을 찾아 땅을 파헤치는 모습에 매료되었던 듯 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탐험가나 고고학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림을 못그려서인 듯 하다. ㅎㅎ <탐험가의 스케치북>이라는 놀라운 책을 출간해 준 미술문화, 정말 칭찬한다. 이 책은 진짜 보물이다.


   사실 내 시대의 탐험가의 이미지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굳어진 것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탐험'하면 투탕카멘의 무덤이나 마야의 유적지 같은 곳을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책 속에 실린 탐험가들의 상당수는 산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에베레스트 산과 아니면 남극이나 북극 같은 극지방을 개척하려했던 탐험가들이 다수다. 그 다음이 아마존 우림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인데, 아마도 이런 탐험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에 대한 그릇된 욕망이 시작된 출발점일 것이다. 하지만 탐험가들의 모험에 대한 열망과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알고자 했던 지적인 호기심을 모두 그릇된 욕망이라고 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의 피 속에는 탐험에 대한 충동 DNA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 욕망이 우주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아직 세계지도의 비어있던 부분을 향했을 뿐.


   책에는 70명의 탐험가들이 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들이 그들의 탐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실려있다. 정말이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만 탐험가를 할 수 있었던가 아니면 화가들이 탐험가가 되었던가 둘 중의 하나일 정도로 다들 빼어난 솜씨다. 영하 3,40도의 추위 속에서 손을 내놓기만 하면 꽁꽁 얼어버리는 와중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의지도 대단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피에는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다. 심지어는 죽는 순간까지 편지를 쓰고 일기를 남긴 이들도 있다. 70명의 탐험가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꽤 많다. 로알 아문센, 제임스 쿡, 찰스 다윈, 알렉산더 폰 훔볼트, 로버트 피어리(로버트 피어리라는 이름, 영어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나?), 로버트 팰컨 스콧, 어니스트 새클턴, 데이비드 리빙스턴, 하워드 카터, 에드 힐러리 등등. 반면 처음 들어본 탐험가들도 꽤 많았고 더 놀라웠던 건 여성 탐험가들도 생각보다 많은 수였다는 점이다. 사실 여성 탐험가들 대부분은 재력가들이었는데 (탐험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익숙한 곳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기꺼이 목숨을 담보로 내놓으면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던 것이다.


   그들이 남긴 유산(특히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마냥 부러웠다(하지만 난 그림을 못그리니까!).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최후는 불행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탐험이 늘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호주머니에 늘 기록을 위한 도구들을 가지고 다니며 자신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록만큼은 남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남극대륙을 탐험하던 스콧은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 '나의 미망인에게'라고 적었다..)


   나는 여전히 그림을 못그려 탐험가가 되기는 틀렸지만 70명의 탐험가가 남긴 보물을 소장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탐험가의 DNA가 갑자기 나를 자극할 때 자주 들여다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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