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 - 그림 속 모델에서 그림 밖 화가로
문희영 지음 / 미술문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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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느와르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델이 있다. 바로 요 그림도 그 중 하나인데 모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르느와르의 다른 그림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르느와르의 '부지발의 무도회' 중 부분)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 비해 르느와르의 그림은 특히 부드러운 터치와 색감으로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라 모델 역시 마냥 아름답고 귀엽게만 보인다. 르느와르의 이 뮤즈가 바로 '수잔 발라동'이다. 수잔 발라동은 르느와르 이외에도 다른 화가들의 모델로도 활동했는데, 사실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 온 팍팍하고 비참하게 방치된 삶을 살아온 존재이다. 그래서 성격 역시 툭하면 분노를 표출하고 성질은 사납고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행동으로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녀의 이런 삶의 행적을 돌아보건대 아무리 젋고 미모가 아름다울지라도 르느와르의 그림 속 모델과 같은 부드러운 인상과 행복한 표정의 주인공이었을리는 만무하다.


   이렇듯 예술은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남성 위주의 시선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수잔 발라동은 생계를 위해 모델 일을 하기는 했으나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잊지 않았다. 많은 남성 화가들이 여자 모델이 화가의 영역을 넘보는 걸 못마땅해했으나 귀족이었지만 불구의 몸이라 파리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던 로트레크만이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가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격려했다. 마리 클레멘타인 발라동에게 '수잔 발라동'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도 로트레크였다. 다음은 로트레크가 그린 수잔 발라동이다. 르느와르 그림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더 이상 모델이 아니라 스스로 '화가'의 자리를 찾아낸 수잔은 사생아, 미혼모, 저주받은 삼위일체 등 비난과 편견이 가득한 꼬리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남자가 본 여자의 몸이 아닌 여성이 주체가 되어 바라본 여성의 몸은 미화되지 않았고 남성적 시선에서 해방된 모습이었다. 다음은 그녀가 그린 자화상 두 점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예술을 거침없이 만들어가던 수잔의 그림들이 서서히 인정을 받고 마침내 그녀는 여성 화가로 최초로 국립예술학회에 작품을 전시하고 국립예술원 회원이 되는 쾌거를 올린다. 그녀는 일흔 셋에 뇌졸증으로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278점의 유화, 231점의 드로잉, 31점의 에칭 작품을 남겼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그녀의 사후 오히려 이름이 잊혀진다. 여전히 예술이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페미니즘이 예술계에도 대두되면서 재조명되었는데, 그녀가 여성을 예술의 대상으로 바라본 시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림 속 모델에서 그림 밖 화가로' 주체적 삶을 살았던 수잔 발라동의 이야기가 이렇게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온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들이 진가를 인정받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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