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강아지
케르스틴 에크만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9월에 강아지의 엄마가 되었다. 7월27일에 태어난 아가이니 아직 3개월이 안되었는데 집에서 태어난 아가라 그런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지금도 내가 앉아있는 의자 밑에서 내 발에 얼굴을 얹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한창 에너지가 넘칠 시기라 말썽을 부리기도 하지만 한없이 맑은 눈동자로 쳐다볼 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런 강아지가 밖에 나가 길을 잃어버린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런데 그렇게 길을 잃어버린 강아지가 있다. 아직 젖도 안뗀 강아지가 어느 겨울날 엄마가 주인이 사냥을 가는 줄 알고 따라 나가는 걸 보고 엄마를 쫓아가다가 엄마의 흔적을 잃어버린다. 눈보라로 인해 익숙한 모든 흔적이 없어지고 따스하고 안락한 집의 느낌과 엄마 젖의 고소한 냄새마저 점점 희미한 기억이 되가면서 길 잃은 강아지는 홀로 세상에 남겨진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고픔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눈을 먹어도 되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 책은 길 잃은 강아지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길 잃은 강아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본능에 따라 몸을 숨기고 먹이를 찾고 안전한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기는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삶의 기억이 하나하나 쌓여간다. 이야기는 대단히 시각적이고 리듬감있게 진행된다. 마치 내가 길 잃은 강아지가 되어 숲 속을 헤매고 얼어붙은 호수를 달리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새로운 소리를 감지하기 위해 귀를 쫑긋하는 것 같다. 계절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 사내가 길 잃은 강아지에게 다가온다. 사내는 서두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길 잃은 강아지의 기억 한 켠을 서서히 차지한다. 사내는 길 잃은 강아지에게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아련한 그 무언가를 일깨운다.


   길 잃은 강아지의 시선이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될 줄이야. 자극적인 장면이나 과한 장식이 없는 소설이지만 길 잃은 강아지의 마음이 나를 사로잡는다. 지금 내 발 밑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기의 마음을 듣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그래 계속 가렴, 안돼, 거긴 가지마! 얼른 너의 모습을 보여 줘. 그래 따라가도 돼..라고 응원하고 알려주고 토닥여주면서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따뜻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